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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가 만난 사람>김재명 전 나주 동강농협 조합장

<남도일보가 만난 사람>김재명 전 나주 동강농협 조합장

농협 평사원으로 시작해 37세 나이에 최연소로 조합장에 선출된 김재명(53) 전 동강농협 조합장이 최근 퇴임후 우리 농업 발전을 위한 제 2의 인생을 꿈꾸고 있다. 중·서부취재본부/정다움 기자 jdu@namdonews.com

남은 인생도 농업·농민 위해 분골쇄신 할 것”

동강농협 평사원으로 시작해 37세 조합장 당선
쌀가마 지고 나르는 모습에 농민들이 출마 권유

RPC상무 시절 브랜드쌀 ‘드림생미’ 개발·육성

13년 연속 전남 10대 브랜드쌀 선정 우수성 입증

“농민들 피땀 흘려 만든 쌀, 자판기 커피 값도 안돼
우리 생명과 같은 농업 지키는 농민들 대접 받기를”

우리나라 최대 곡창지대중 하나인 전남 나주에서 농협 평사원으로 출발한 뒤 우리 나이 37세에 최연소로 조합장에 선출돼 30여년간 농업 발전에 헌신해온 김재명(53) 전 나주 동강농협 조합장이 최근 퇴임후 농민과 농업을 위한 제 2의 삶을 꿈꾸고 있다. 퇴임 후에도 이 나라 농업, 농촌을 위해 일생을 바칠 각오가 돼있다는 김 전 조합장은 거북이 등껍질 처럼 갈라진 농민들의 손과 깊게 패인 주름을 보면 가슴이 저린다며 농민들이 제대로 대접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헌신하겠다고 밝혔다. 남도일보가 ‘쌀쟁이’를 자처한 김 전 조합장을 만나 그동안 농업현장에서 쌓인 그의 스토리와 우리 농민들을 위한 제언을 들어봤다.

◇이른 나이에 조합장에 선출된 것으로 유명한데, 조합장을 하게 된 계기는?=스물 세살에 동강농협 평직원으로 입사했다. 일을 하다 보니까 농협에는 상무라는 직책이 있더라. 평직원으로 9년을 근무하면 시험자격이 생기는데, 당시 입사 9년 2개월 만에 상무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우리 농협 RPC에서 상무로 근무했는데 가을이 되면 수매 때 한달 반은 집에도 못가고 일을 했다. 그때 볏가마를 직접 이고 나르고 했었다. 2000년 가을에도 그 일을 하고 있는데, 농민들이 나를 찾아와서는 느닷없이 다음해 조합장 선거에 나오라고 하더라. 현직 조합장이 또 출마하는데 그분은 또하면 안 된다고, 내가 조합장을 하면 잘할 것 같다고 출마를 적극 권유했다. 화물차를 가득 메운 쌀 가마를 홀로 나르는 모습이 농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다.
그러던중 조합장이 나를 인근 영산포농협으로 발령을 내버렸다. 그곳에서 일을 하려니까 동강농협 농민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찾아와 빨리 사표 내고 조합장 선거 나오라고 설득하더라. 도저히 일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런데 아들이 유치원 다닐 때라 선거에서 잘 못되면 가족들 생계도 그렇고, 쉽게 결정을 내릴수가 없었다. 고민 끝에 평소 따르던 당시 김병원 남평농협 조합장(현 농협중앙회장)에게 찾아가 이 사실을 털어놨다. 나에겐 인생멘토나 다름 없는 분인데, 그 형님이 한참 동안 내 얘기를 듣더니 “야 나와브러라”라고 하더라. 언젠가는 조합장 할 거 아니냐면서 도전해보라고 했다. 결국 2001년 7월 조합장 선거에 출마해 현직 조합장을 이기고 당선됐다. 당시 득표율이 내가 7이면 그분은 3 정도였다. 그때 내 나이가 서른 일곱이었다.

◇‘브랜드 쌀 달인’이라는 호칭이 따라다닌다, 나주 브랜드 쌀 ‘드림생미’를 육성한 이유는 =RPC상무 할 때 자체 브랜드를 처음 만들었다. 동강면은 간척지가 있어 쌀 생산량이 많았다. 그 당시 동강 청결미라고 해서 간척지 쌀 브랜드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브랜드 네이밍 자체가 소비자들에게 와닿지가 않았다. 그러던중 서울에서 전남 쌀 판촉활동 하는데 주부들이 쌀 고르는 모습을 유심히 보니 쌀 가마를 한참이나 들여다 보고 고르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사모님 어떤 기준으로 쌀을 고르십니까?”라고 했더니, “쌀알이 잘고, 깨끗한 쌀이 밥맛이 좋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게 바로 경기미(추청벼)였다. 당시 경기미는 품종이 소립종이라 쌀알이 잘고 깨끗한데 반해 전남의 대신벼와 동진벼는 씨알이 굵어 미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없다. 결국 농업기술원에 의뢰해 쌀알이 잘고 밥맛이 좋은 품종이 있냐 하니까 ‘일미벼’라는 품종이 새로 나왔다고 했다. 일미벼 종자 200가마를 구해가지고 농민들에게 보급한 게 ‘드림생미’의 시초가 됐다.
브랜드 네이밍은 미곡처리장 화장실에 앉아있는데 번뜩 떠올랐다. ‘드림’은 꿈이면서, 우리말로는 소비자에게 ‘드린다’는 의미도 있었다. ‘생’은 살아있는 쌀을 의미했다. 그렇게 드림생미가 탄생했다.
드림생미는 전남 브랜드 쌀 350개 중 13년 연속 전남쌀 10대 브랜드로 선정됐다. 특히 전국적으로는 쌀 브랜드가 2천500가지인데 이중 드림생미는 5차례에 걸쳐 12대 전국 브랜드에 선정되기도 했다. 맛과 품질을 모두 인정받은 셈이다.

◇현재 전남 지역 곳곳에서도 브랜드 쌀을 육성·홍보하고 있다. 전남 쌀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그것이 우리 쌀 다루는 사람들에겐 하나의 숙제다. 전남 쌀을 살리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앞으로 전남 쌀이 살아 남으려면 먼저 품종 단일화가 이뤄져야 한다. 수 백가지 품종이 있는데 쌀이라는 것은 혼합이 되면 밥맛이 떨어진다. 품종 단일화가 중요한 이유다.
품종 단일화와 관련, 광주·전남RPC운영협의회장 당시 획기적인 일을 하나 하고 나왔다. 전남도농업기술원과 농협전남지역본부, RPC협의회, 생산자단체가 전남농업기술원에서 협약식을 했다.
벼 신품종 중 새청무벼라고 있다. 새누리벼하고 청무벼를 혼합해 만든 신품종이다. 앞으로 그 품종을 경기미 하면 추청벼, 충남하면 삼광벼, 전북하면 신동진벼 하듯이 전남 하면 신청무벼가 떠오르도록 품종을 단일화하기로 했다.
밥맛이 좋은 새청무벼로 품종을 단일화하면 전국 최대 곡창지대인 전남에서 생산되는 쌀이 다른 어느 지역 쌀 보다 더큰 브랜드 경쟁력을 갖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쌀 한 공기는 자판기 커피 한잔 값에도 못 미칠 정도다. 농민들이 쌀을 제값 받고 팔 수 있으려면 =지금 20㎏ 쌀 한 가마에 4만6~7천원 정도 한다. 밥 한공기로 따지면 177원이다. 말했다시피 요즘 커피 한잔에 못해도 3천원, 5천원 한다. 또 우리 국민들의 연간 쌀 소비량이 68kg 정도라고 한다. 평균 쌀 가격으로 보면 국민 1명이 1년에 밥값으로 13만원 정도를 쓰는 셈이다. 13만원이면 네 사람이 외식 한번 하면 나오는 금액이다. 역시 쌀 소비가 갈수록 줄어드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셈이다.
소비자들의 쌀에 대한 잘못된 인식 탓도 있다. 탄수화물을 많이 먹으면 건강이 나빠진다는 인식이 그중 하나인데. 나는 삼시 세끼 밥을 꼬박꼬박 먹는데도 살도 안찌고 오히려 건강하다.
쌀 소비량 늘리는 것이 첫째고, 소비자들 인식 변화도 절실하다고 본다.
또 하나 문제는 오르지 않는 쌀값이다. 지금 쌀값이 20년전 가격 그대로다.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정장 한벌이 20년 전에 21~22만원했는데, 지금은 100만원이 넘는다. 정장 한벌은 20년 동안 5배나 올랐다.
농민 입장에서 보면 그동안 비료값과 농약값, 인건비 등도 최소한 50% 이상이 올랐다. 그러면 농민이 생산한 쌀이 20년 전과 비교해 생산원가 측면에서 보면 최소한 50% 이상은 올랐어야 한다는 얘기다.
내가 농민들한테도 물어본다. “아재, 농사 짓고 있는데 쌀값이 얼마면 자식한테 농사 지어라 얘기할 수 있겠소?”그러면,“20㎏ 쌀 한가마에 6만원만 하면 농사 지으라 하겠다”고 한다. 최소한 그정도는 받아야 농민이 고생한 보람은 있다. 그래야 농가소득 5천만원도 가능할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생명창고를 지키는 농민들이 이 땅을 떠나지 않고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농민들이 대접받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향후 계획과 동강농협 조합원들에게도 한 말씀 부탁드린다 = 당분간은 쉴 생각이다. 하지만 마음 속에는 항상 이 나라 농업, 농촌, 농업인들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할 것이다. 또 그분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분골쇄신해서 이 한몸 바칠 각오도 돼있다.
아울러 직원생활 14년, 조합장 18년 하는 동안 농민 조합원들로부터 무한한 사랑을 받았다. 큰 탈 없이 조합장 임기를 마무리를 할 수 있게 돼서 정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마음속 깊이 평생 잊지 못할 은혜로 새기고 있다. 그 분들한테 뭘로 어떻게 보답해야 할 지를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더 앞으로 잘해야겠다는 마음이다.
농민들의 거북등 처럼 갈라진 손을 만지고 깊이 패인 주름을 볼때 마다 가슴이 저린다. 이분들이 대접받고 잘 사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그런 바램을 항상 가지고 있다.
중·서부취재본부/이은창 기자 lec@namdonews.com

◇김재명 전 동강농협 조합장이 걸어온 길
-석산고등학교 졸업
-조선대학교 회계학과 졸업
-농협경영대학원 수료
-서울대학교 최고농업정책과정 수료
-現 농협중앙회 감사위원
-前 11~14대 동강농협 조합장
-前 광주·전남 RPC운영협의회장
-前 전남도 정책자문위원
-양곡발전 유공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표창 6회
-양곡발전 유공 대통령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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