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2부 5장 변경<307>

“다이샨과 가깝다면 건주여진의 동향을 잘 알렸다? 건주가 파죽지세라는데...”

압록강을 건너 내륙 깊숙이 들어가자 장만이 물었다. 사행(使行) 규모를 단촐하게 한다고 했지만 갖출 것은 갖추어야 해서 말이 수십 필의 행렬이었다. 그중에는 수레를 끄는 말도 있었다. 황제가 좋아하는 백두산 산삼, 백령도 앞바다에서 잡은 물개 좆을 말린 것, 칠산 앞바다의 조기꾸러미와 청해진의 전복 말린 것 등 주로 정력 강장용 해산물을 준비했는데, 선물도 이처럼 특색이 있어야 했다.

“그럴 것입니다. 제가 누르하치의 둘째 아들 다이샨과 친합니다. 성질이 온후하고 이해력이 있는 친구입니다. 그는 큰아들 추엥과 달리 조선과 친선을 염두에 두고 있고, 그래서 그런지 말을 백 필이나 주었습니다. 지금 타고 가는 이 말 행렬도 다이샨이 선물한 것입니다.”

“이유없이 선물하진 않았을 텐데?”

“그는 적을 많이 만들면 안된다고 보는 자입니다. 조선은 명과 군신 관계에다가 지금 왜와 싸우지만 언제 손잡을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질서라는 것이 늘 변화무쌍하니까요.”

“하긴 형제간끼리도 생각이 달라서 서로 죽이고 죽는 것이니 이해할만 하다. 어쨌거나 사람 사귀는 것은 언어가 중요하다. 대국 말을 능숙하게 할 수 있으렸다?”

“장군, 저는 사교 언어까지 익혔습니다. 역관 겸 참모 역할을 성실히 수행할 것입니다.”

장만은 말고삐를 조여잡고 가는 정충신을 듬직하게 바라보았다. 체구가 단소하나 빈틈없이 단정해서 언제 보아도 믿음직했다. 정충신 역시 장만의 깊은 지식과 후덕한 인품을 존경하고 있었다. 장만은 충청·전라·평안·경상도에 이어 함경도의 관찰사를 하면서 파괴된 성을 축성하는 등 전후복구를 대과없이 해냈다. 백성과 함께 하는 통솔력으로 민심을 안정시키고 무너진 고을을 복원했다. 그런 업적을 조정에서는 높이 사 왕후고명사신에 이어 이번에는 세자책봉 사신으로 그를 명나라에 파송한 것이다. 세자 책봉은 정충신에게도 중요했다. 나라의 미래로 볼 때 광해가 마땅히 군주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명을 다할 생각이었다.

“이성량과 누르하치를 만날 것인가?”

“누르하치 아들들만 만나면 될 것입니다. 누르하치를 만나면 명이 알게 될 것이고, 그러면 등거리 외교를 한다는 것이 드러나게 되는 것인즉, 사적으로 그 아들 추엥과 다이샨을 만날 생각입니다. 이성량 도독은 자리에서 밀려났습니다.”

요동 도독 이성량은 군비를 유용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한다는 점이 지적돼 해임되었다. 아들 이여송이 조선에 들어가 왜와 싸운 공적 때문에 목이 달아나는 것은 일단 막았지만, 대신 간쑤성 오지로 유배를 갔다. 이는 명의 결정적인 실책이었다. 그것이 명이 추후 여진족에 먹히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이성량의 군대는 막강한데다 그의 권위는 지대했다. 어려서부터 누르하치를 자식처럼 아끼고 지원한데다 장성해서는 용호장군 직책까지 주었다. 누르하치의 활동 폭을 넓혀준 은인이었다. 그래서 누르하치의 도발을 막을 수 있는 장수였다. 그런데 경험없는 자를 요동에 보내니 누르하치로서는 고소원불감청(固所願不敢請)이었다. 부숴버려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이성량의 분을 삭혀주는 일도 되었다. 새로 온 지도자는 누르하치 세력과 적대해 싸우기를 꺼리고 군사 비축도 없이 화평만을 주장했다. 이 틈을 노려서 누르하치는 힘을 길러 여유있게 여진 통합을 이루어나가고, 명에 대항할 태세를 갖추었다.

“장군,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가 천재일우의 기회를 잃었습니다. 누르하치는 두 차례나 우리에게 원군 지원을 제시했나이다. 조상의 나라 원병이라며 군사를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조선이 피골이 상접해진 틈을 타서 집어먹을 요량이었겠지.”

“아니지요. 그들은 여진 부족 통일도 못하고, 명나라와 싸우고 있는데 조선까지 공격하려고 하겠습니까. 조상의 나라라고 극존칭까지 써가며 돕겠다는 것인데, 우리가 차버렸습니다. 명만 붙잡고 있으니 될 일도 안되지요. 우리는 눈치보느라 미적거리다 한마디로 엿되어버린 것입니다.”

“오랑캐 놈들은 배신을 밥먹듯이 하는 무식한 놈들 아닌가. 믿지 말고 경계하라.”

“경계는 기본이지만, 남의 선의도 받아들이는 눈도 있어야 합니다. 제가 보건대 누르하치가 장차 중원을 장악할 것입니다. 그와 손을 잡는 것도 조선의 안위를 위해 좋을 것입니다.”

“쓸데없는 소리. 그런 불상놈들이 무슨 힘이 있다고! 약탈만 하는 놈들은 도둑놈일 뿐이야.”

“그 아들들 보십시오. 그중 둘째 아들 다이샨과 여덟째 아들 홍타이지가 물건입니다. 꿈이 원대합니다. 무슨 일이건 저지를 것입니다.”

“지금 둘째와 친구가 되었겠다?”

“그렇습니다. 지금 둘째를 만나러 가는 것입니다. 명으로 가는 길이 험난하니까 협조를 요청해야지요.”

그러나 다이샨은 후이파 부족을 치러 원정 나가고 진영에 없었다.

“며칠 기다리면 올 것입니다. 기다리겠소?”

막영을 지키고 있는 다이샨의 부관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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