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3부 광해시대 1장 역사 청산 <327>

정충신이 나섰다.

“일본의 신분제 역시 우리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더하고 덜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을 되돌아보게 하는 시간을 주어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신분제에 대해 성찰할 시간을 주셨으니까요. 그러면 끌려온 우리 포로들은 당연히 노예 취급받지 않았겠지요?”

그들이 조선의 신분제를 놓고 야지놓고 비웃었으니 당연히 그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포로들에게 못된 짓을 했다면 당장 자기모순이 된다.

“우리는 대접할 건 대접하오이다. 식사가 끝나면 녹차와 엽연초를 주고 휴식을 즐기도록 하지요. 이 모든 것이 이에야스 합하의 배려입니다.”

“엽연초라니요?”

“조선에서는 안 핍니까? 양반들이 장죽에 엽연초를 말아 재어서 피우는 것이 좋아보여서 우리도 배운 것이오.”

그러나 광해는 담배 냄새를 몹시 싫어했다. 그는 대단히 결벽증이 심했다. 문무백관 중에 몸에서 담배 냄새가 나면 맨 구석자리로 좌석 배치하거나, 구실을 찾아 쫓아버렸다. 이로 인해 흡연으로 고위직을 잃은 자도 몇 명 있었다. 그런데 왜국은 이런 것까지 간파하고 있다. 간자(間者)들이 조정에 깊숙이 들어와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다른 자가 물었다.

“광해는 미신을 매우 신봉한다지요? 풍수지리가나 점쟁이들을 가까이 두고, 나랏일을 이들의 말을 듣고 행한다는데, 사실이오?”

“반은 맞고, 반은 틀렸소만, 이떻게 그런 걸 다 알았소?”

“어떻게 알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사실이냐 아니냐를 묻는 것이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하지 않았소?”

“좋자고 하는 말이오. 담배는 지체높은 사람들이 피는 것, 우리가 엽연초를 염가로 보내드릴 생각이오. 그렇게 상거래를 트자는 것이오.”

그러자 다른 자가 말했다.

“왕이 그리하면 조선 백성들도 모두 미신을 좋아하겠지요?‘

“그건 사람 나름 아니겠소?”

그들이 이것저것 염탐하는 것이 불쾌했다.

광해는 어렵게 외줄타듯이 보위에 올랐다. 그래서 그 역시 아비를 닮아 의심병이 많았다. 그 의심병을 풀기 위해 미신에 의존했다. 광해는 합리적 사고와 논리적 관점으로 사물을 관찰했지만, 어느 순간 불안감이 엄습해올 때는 이렇게 헤까닥 머리가 돌아버렸다.

풍수지리에 능한 이의신이 한양의 지기(地氣)가 다했으니 경기도 교하로 천도하자고 했을 때, 광해는 천도하려고 했다. 그런데 오윤겸이 반대해 좌절되었다. 왜의 백관들은 오윤겸의 이런 것을 꿰고 있었다. 대단한 정보력이었다. 그들이 신생 대국으로 이행해가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계축옥사(광해군 5년, 대북파가 영창대군 및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래 일으킨 옥사. 七庶之獄이라고도 함) 때는 사기를 치다가 감옥에 쳐박힌 점쟁이가 용하다 하여 관례를 무시하고 데려다 점을 쳤다지요?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자를 데려다 점을 봐서 뭘하게? 하하하.“

완전 엿먹이는 수작이었다. 정충신은 굴욕감음 느꼈지만 조선과는 딴판의 세상을 살고 있는 그들을 보고 놀랐다. 그들 역시 미신을 따르지만 벌써 다른 세계관을 갖고 있는 것이다. 포르투갈, 영국, 네덜란드와 수교를 맺거나 준비중이었고, 하멜이 다녀갔다는 소식도 있었다.

“상소문, 칙서를 받는 일도 날짜를 택해서 받고, 그래서 우리 칙서도 점쟁이에 의존해서 받겠구려? 완전 견초채식성(犬草採食聲)일세, 하하하.”

‘견초채식성’은 ‘개 풀 뜯어먹는 소리’라는 뜻이다. 허튼 말을 하는 사람에게 사용하는 말이다. 그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으니, 지금은 이에야스 시대인 것이다.

이에야스가 조선통신사를 초청한 것도 나라의 개방정책 때문이었다. 그는 네덜란드와 영국 상인들이 일본과 무역을 하는 것을 승인하고, 조선과의 국교를 재개하려고 문을 열어놓았다. 이때 하멜도 일본에 가다가 폭풍우를 만나 조선에 왔다. 이에야스는 필리핀에 진출해있던 스페인과도 무역을 해보려고 시도했다. 이에야스는 아들 히데타다와 함께 에도(도쿄)를 나라의 기반이 되도록 건설 중이었는데, 근본은 실용주의 노선이었다. 피를 흘리고 개국을 완성했지만 외교와 상업의 힘으로 나라를 세우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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