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3부 광해시대 1장 역사 청산 <328>

오윤겸과 정충신은 귀국 보고차 어전으로 나아갔다. 광해 임금이 이들을 보고 반겼다.

“포로 200을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 무사히 데리고 왔으니 큰 일을 했다. 어느 사절단보다 성과를 올린 것이다.”

“힘이 들었지만 상감마마의 분부를 잘 이행하고 왔나이다. 저희 공은 작고, 대신 상감마마의 공은 지대하옵니다.”

오윤겸이 의례적인 아첨의 말을 했으나 정충신은 다르게 말했다.

“왜국은 지금 변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포로를 조건없이 풀어준 것은 전쟁으로 나라를 이끌겠다는 것이 아니라 인접국가와 우호와 선린으로 가겠다는 증표입니다. 저희가 외교를 잘했다기보다 왜국의 정책전환이 가져온 결실입니다.”

“우호와 선린? 그놈들은 본디 칼로써 나라를 지탱하는 나라 아니냐.”

“그런데 지금은 다른 것 같습니다. 산업이라든가, 상공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가지고 나와서 나라를 세우겠다고 하드만요. 그들의 대응 문법이 달라서 한동안 혼란스러웠나이다. 이제는 다이묘끼리 칼로 겨루는 것을 거두고 화약(和約)을 맺고, 주변국을 침공하지 않겠다는 전략도 세우고 있습니다.”

“도둑놈이 도둑질을 안한다면 뭘로 먹고 살 것이냐. 대저 그자들이 나가겠다는 방향이 무엇이냐.”

“칼로써 이익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상거래로 이익을 보자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에게 엽연초도 가져다 팔겠다는 것입니다.”

“그놈들이 하필이면 내가 싫어하는 엽연초냐. 담배 냄새라면 지겹다. 상업을 한다면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와야 할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그러나 중독성이 있는 것은 대대로 판로가 열리니 자자손손 단골을 만든다는 전략인 것이지요. 그만큼 그자들은 장삿속이 훤합니다.”

“다른 것은 무엇이냐.”

“그자들 역시 수천개의 신을 믿고, 귀신을 부르고, 무당을 찾습니다. 하지만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위기를 돌파하려는 위안으로 삼을 뿐, 전적으로 매달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와는 다릅니다.”

“무슨 뜻이렸다?”

광해는 순간 불쾌했다. 자기 뜻과 배치되는 것이다. 광해는 왕궁 중창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궁을 위엄있게 갖추는 것이 왕의 법도와 권위를 상징하는 일이다. 그래서 점쟁이의 말을 믿고 인왕산 아래 새 궁궐을 지었다. 선조 말년부터 시작된 창덕궁 공사를 끝내고, 뒤이어 창경궁과 경운궁 수리를 마쳤다. 새 궁궐(인왕궁)은 풍수학자 시문용과 승려 성지, 점쟁이이자 당골의 주문을 받았다. 미신 신봉은 광해의 궁궐병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새문동에 왕기가 흐른다는 풍수쟁이 김일룡의 말을 듣고는 그곳 정원군(광해의 이복동생이자 인조의 아버지)의 집을 징발해 새 궁(경희궁)을 지었다. 정원군은 형에게 충성하고 있었으나 의심병이 많은 광해의 감시를 노상 받고 있었고, 게다가 정원군이 살던 집터가 왕기가 서린다는 말을 듣고 아예 숙소를 빼앗아버린 것이다. 광해는 ‘성품이 포악해 일을 저지를 것같다‘(선조실록)는 무당들의 간언에 정원군을 제압하려고 그의 집에 궁을 지은 것인데, 그러나 후일 광해군이 비참하게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대신 정원군의 아들 능양군(인조)이 반정을 일으켜 왕이 되었으니 그곳이 왕기가 서린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광해에게는 치명적인 궁궐이 되고 말았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왕권은 비틀거리게 되어있었다. 여러 궁을 한꺼번에 지으니 재정이 고갈되었다. 전쟁의 피폐상이 여전한데 궁궐 신축에만 매달렸으니 민심은 이반되었다. 정충신은 그 점을 우려했던 것이다. 점쟁이들의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나라를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이고, 그래서 변화하는 일본의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국의 신진 지도층이 어떤 자들이란 말이더냐.”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그 아들 히데타다가 민생혁명을 일으켜 나라를 새롭게 설계하고 있나이다. 무섭게 치고 나올 것 같습니다.”

“이에야스란 놈도 본시 싸움꾼 아니더냐.”

“맞습니다. 이에야스는 어린 시절부터 사무라이들의 싸움판에서 뼈가 굵은 자이옵니다. 그는 나중 두목 오다 노부나가의 막료장까지 올랐지요. 사무라이들은 배신의 명수들이기 때문에 노부나가는 어느날 이에야스의 충성도를 시험하기 위해 그의 아내와 장남을 죽이라고 명합니다. 이에야스는 거리낌없이 두 처자를 죽였습니다.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별 짓도 다한 것입니다. 노부나가가 측근에게 암살당하자 이에야스가 두목으로 등극하는데, 힘이 부족하니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투항하지요. 임질인지 매독인지에 걸려서 골골하는 히데요시는 조선침략 전쟁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죽습니다. 이때 이에야스가 천하를 접수하게 됩니다. 조용히 준비하면서 때를 기다리니 호박이 넝쿨째 들어온 것입니다.”

“인내의 달인이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어떤 수모도 감수하는 인간이되, 심장이 강인한 자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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