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3부 광해시대 1장 역사 청산 <331>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싸움을 싫어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광해가 물었다.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겠다는 것입니다. 싸움을 해본 자만이 그 참화를 누구보다 잘 아니까요. 그는 강항 선생의 시대정신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강항의 시대정신이 무엇이냐.”

정충신이 길게 설명했다.

“강항은 <건거록>에서 ‘왜인은 주장(主將)이 싸움에 폐하여 자결하면, 그의 부하들도 모두 자결한다. 삶을 원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사람이나 생물에게 있어서 모두 한 가지일 텐데, 왜인만이 죽음을 기꺼이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무슨 해괴망칙한 세계관인가. 왜의 쇼군(征夷大將軍)은 민중의 이권을 독점하여, 머리털 한 가닥도 민중에게 속한 것이 없다. 그래서 쇼군의 집에 몸을 의탁하지 않으면 입고 먹을 것이 없다. 일단 쇼군의 집에 몸을 의탁하게 되면 내 몸도 내 것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담력이 모자라는 것으로 간주되면 어디에 가더라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허리에 차고 있는 칼이 좋지 않으면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한다. 칼자국이 얼굴에 있으면 용기있는 남자라고 간주되어 후한 녹을 받는다. 칼자국이 귀 뒤에 있으면 도망만 다니는 비겁자라고 하여 배척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적과 대항하여 사력을 다하여 싸운다. 왜인이 뱀의 독, 호랑이와 늑대같은 탐욕, 태연하게 행하는 잔인함, 놀랄 정도로 호전적인 성격은 천성으로 몸에 익힌 것이라기보다 제도가 그렇게 하도록 속박하고, 상벌 제도도 그렇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싸워서 이긴들 무슨 이득이 있는가. 명예? 재산? 정복감? 한 꺼풀만 벗기면 모두가 허무행인 것을...’이라고 설파했습니다. 이에야스는 이 뜻을 터득하고 ‘우리들 자신을 돌아보는 바. 죽음의 미학이 삼라만상에 도움을 주는 것이라곤 없다’고 하면서 국가개조론을 선언했습니다.”

“왜놈 종자에게도 뜻을 가진 놈이 있었구나.”

“그렇습니다. 이에야스는 주장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공을 애초에 찬동하지 않았습니다. 침략으로 얻는 것은 고작 하나요, 잃는 것은 열이 되고, 스물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무장들의 불만을 제어하는 수단으로 조선 정벌을 나설 뿐, 챙길 전리품이 없다는 것이지요. 갈갈이 찢긴 내부를 외부로 돌리는 것이 안을 여미는 것보다 못하다고 했습니다. 마침 히데요시가 죽고 전쟁도 끝나고, 그러니 단절되었던 조선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우리에게 국서를 보내고, 그런 전차로 우리 사절단이 왜국에 들어가서 포로들을 조건없이 데려온 것입니다.”

“칼이 나라의 혼이라고 여기는 왜국도 정신을 바꾸는구나.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그것은 그들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쉽게 버릴 수 있겠는가.”

“여전히 약탈과 전쟁과 살인의 인자(因子)들이 혈관에 남아있겠지만, 싸움 이외의 길도 모색하는 것입니다. 대저 왜국은 지리적으로나 유전적으로 우리와 가장 가까운 종입니다. 같은 점이 많으면서도 양국의 관계가 너무나 흉악한 관계였습니다. 이에야스가 등장한 것을 계기로 근원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근원적인 방법? 그들이 마음을 고쳐먹으면 해결되는 것 아닌가.”

“강항 선생이 지적하신대로 칼은 칼로써 다스려야 합니다. 왜인들은 상대방이 강하면 눈알 내리깔았다가도 약하다 싶으면 언제 그랬더냐 싶게 덮치는 비열하고 야비한 종입니다. 상대방이 인격자라고 해도 힘이 없으면 짓밟아버리는 근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 칼은 칼로써 다스리되, 힘은 언제나 칼집에 넣어두어야 합니다.”

“상대방이 선의를 갖고 있다고 해도 우리가 단단히 방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렸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몰라서 그런 것도 아니잖나.”

“물론 이유가 있습니다. 뭉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작은 이익을 얻고자 크게 분열합니다. 사소한 차이로 목숨 걸고 싸웁니다. 경쟁자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극단적 행위들이 국력을 소모합니다. 그러면서 정작 대의를 위해서는 꼬리를 사립니다.”

광해가 길게 한숨을 내뿜었다. 그런 광해를 살피며 정충신이 다시 말했다.

“이러니 우리는 적을 셋이나 갖고 있습니다.”

“적이 셋이라고?”

“그렇습니다. 북변에는 오랑캐(여진족), 남쪽 바다에는 왜구가 있습니다. 거기다 조정 내부에는 동인과 서인, 또 소북과 대북이라는 붕당의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광해의 표정이 더욱 어두웠다. 붕당체제가 강화되면서 조정은 헐뜯고 모함하고 배신하는 일들이 일상사가 되었다. 어느새 그 자신 그 대립의 중심에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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