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광주’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며칠 후면, 5월의 그날이다. 3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날을 맞는 광주는 아직도 처연하다. 그때의 5월 금남로에는 정의를 외치는 시민들이 한 쪽에 있었고 그 반대쪽에는 총검으로 무장한 계엄군이 있었다. 곧 광주는 피로 물들었다. 수많은 이들이 계엄군에게 학살을 당했다. 모진 구타와 고문으로 불구가 된 이도 많다. 광주는 신음했고 통곡했다.

계엄군의 ‘잔혹한 학살극’은 ‘폭동을 일으킨 불순분자에 대한 정당한 진압’으로 둔갑됐다. 국민학살을 훈장으로 삼은 정치군인들이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됐고 그 추종자들은 광주를 ‘불온한 도시’로 몰아갔다. 광주는 정치적으로 고립됐다. 광주의 진실은 망월동에만 있을 뿐이었다. 외지사람들은 광주의 통곡을 외면했다. 그런 세월이 참으로 길게도 갔다.

해마다 5월이면 광주는 다시 또 통곡한다. 국민학살극의 주범들은 여전히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다닌다. 그 추종자들 역시 ‘폭동과 폭도’의 시각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 추종자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한 과거 정권 실세들은 5·18기념을 위해 광주에 왔으면서도 오히려 광주를 욕보이는 모습을 보였다. ‘임을 위한 행진곡’까지도 용공(容共)적이라 폄훼했다.

80년 광주는 이제야 그 숱한 누명과 덧씌우기에서 벗어나고 있다. 국방부는 38년이 지나서야 ‘계엄군의 과잉진압’에 대해 사과했다. 광주를 사시(斜視)로 바라보던 일부 국민들도 자신들의 생각이 왜곡과 조작에 의한 것임을 깨닫고 이제야 광주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도 자유한국당 의원 등 일부 정치인들은 미몽(迷夢)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인 만큼 광주는 어떤 모습을 보여야할까? 당장은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위해 더 담대하게 나가야만 한다. 그리고 달라져야 한다. ‘80년의 광주’와 ‘지금의 광주’가 생판 다른 광주여서는 곤란하다. 그해 5월, 광주를 가득 메웠던 정의와 보살핌의 정신을 회복해야만 한다. 구호 속의 5·18을 생활 속의 5·18로 가져와야 광주도 살고 5·18도 산다.

광주는 5·18의 전국화·세계화를 외치고 있다. 외견상 이는 단계적으로 실천되고 있는 듯싶다. 전국 11개 광역 시도에서 39주년 5·18 기념행사에 동참하고 있다.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5·18의 광주화’는 정작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안타깝게도 ‘80년 5·18’은 금남로 등 기념식장 근처에만 있다. 올바른 광주, 따뜻한 광주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5·18구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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