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3부 광해시대 1장 역사 청산 <338>

머슴이 주인마님의 배앓이를 낫게 할 충성심의 일념으로 말했다.

“배가 아프신데 내외가 중요합니까요. 어떻게든 병을 낫게 해야지요.”

“그래도 남녀 간에는 내외의 구별이 있으니 나의 음호(陰戶)를 가리고서 배를 대는 것이 좋겠구나.“

“당연히 그래얍지요.”

여인은 나뭇잎으로 샅을 가리고 머슴더러 배를 마주대게 하였다. 서로 살을 대자 아닌 게 아니라 여인의 배가 따뜻해지기 시작하고, 숨소리마저 뜨거워졌다. 동시에 머슴의 양물이 터질 듯이 빵빵해졌다. 과연 그 크기가 말의 것과 같았다. 주인 마님이 헉, 숨을 몰아쉬는데 어느결에 그 큰 것이 나뭇잎을 뚫고 여인의 음호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여인이 자지러지면서

“나뭇잎이 어디로 갔느냐?”고 물었다.

“나도 모르겠습니다요.”

“그래그래, 강한 것이 약한 것을 뚫는다더니 그 짝이로구나.”

“마님. 굳센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비단을 뚫는다고 하였습니다.”

“화살의 힘, 아아 내가 죽겠다.”

여인이 거듭 뜨거운 입김을 뿜어내며 몸부림을 쳤다. 이런 백사의 재담 때문에 왕은 어지러운 정사를 떠나 잠시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세자 책봉 문제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최음제 역할도 해주는 것같았다. 선조는 넉살좋은 오성 대감을 이윽히 바라보다가 얼마전의 일도 떠올렸다.

어느날이었다. 이항복이 중대한 비변사 회의가 있던 날 지각을 하고 말았다. 변방에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병조 단독으로 군사 문제를 처결할 수 없어서 의정부와 육조 대신, 변방의 지변사(知邊司:경상·전라·평안·함경도의 관찰사와 兵使·水使를 지낸 종2품 이상의 관원)를 소집해 회의를 갖는데, 이날은 무능한 지변사 교체 안건이 상정되어 있었다.

“이 중대한 회의에 왜 이리 늦었는가. 대감이 임금보다 지체가 높은가?”

임금이 한참 늦게 들어온 백사를 향해 엄히 꾸짖었다. 백관들이 임금의 노여움을 사고 있는 이항복을 고소한 눈길로 바라보는데, 이항복이 머리를 조아리며 예를 취한 뒤 말했다.

“상감마마, 제가 일찍 집을 나섰지만 오다가 보니 사람들이 모여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환관과 중이 대판 싸우더군요. 환관이 중의 머리털을 잡아 흔들고, 중은 환관의 양물을 잡아 흔들며 싸우고 있었나이다. 그 싸움이 어찌나 요상하던지 정신없이 보고 오느라 늦었습니다. 널리 접어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 말에 재상들이 와크르 웃고, 임금도 결국 따라 웃었다. 이런 기지와 해학으로 사태를 모면했으나, 사실은 당쟁으로 상대 당을 숙청하려고 없는 죄목을 씌워 몰아붙이는 조정 세태를 꼬집는 뼈있는 농담이었다. 왕은 그런 그를 미워할 수 없었다.

“하여간에 못말리는 재상이야.”

이항복은 이렇게 어전회의를 주도하면서 통합과 화해를 모색했다. 그러니 당쟁이 끊이지 않은 분위기에서도 병조판서를 다섯 번, 좌의정 영의정, 도승지 직을 번갈아가며 수행했다.

어느날 왕이 무슨 마음이 동했는지 갑자기 세자 교체를 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그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었다. 왜란이 끝나고 국정을 안정시킬 처지에 광해를 세자 직에서 쫓아낸다는 것은 또다른 풍파를 불러올 것이 분명했다. 광해는 세자로서 역할을 다했다. 난을 겪었을 적에 군병을 기병하도록 전국을 돌며 독려하고, 세상의 기강을 잡았다. 형과 동생이 엽색행각으로 타락한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그는 엄격한 사생활로 모범이 되었다. 사람들은 광해가 세자로서 당연히 대통을 이을 적임자라고 믿었다. 그런데 내치려고 한다.

“전하, 최상의 선은 물처름 흐른다는 상선약수(上善若水) 정신이옵니다.”

물 흐르는대로 대세를 따르는 것이 최상의 덕목이란 뜻이다. 이 말을 듣고 선조는 돌아앉아버렸다. 세자 교체만은 양보 못하겠다는 태도였다. 그런데 그가 앓더니 어느날 죽고 말았다. 영창대군이 만 두 살 때였다. 그동안 어린 핏덩이를 두고 인목왕후 주변에서 세자 교체 세력이 등장했지만 승부는 끝났다. 이항복 이덕형의 노련한 정치적 수완으로 왕위는 군말없이 광해에게로 이양되었다.

그런데 왕위를 물려받은 광해가 표변했다. 친형 임해군부터 다잡기 시작했다. 역모를 꾸몄다는 이유로 임해군을 따르는 무장들을 모조리 체포해 직접 친국했다. 사간원·사헌부·홍문관 등 삼사(三司)의 아첨배들은 벌써 눈치를 때리고 임해를 극형에 처해야 한다고 상소문을 올렸다. 일종의 관제 데모였다. 이는 광해에게 명분을 강화해주는 수단이 되었다. 그들은 반대파나 정적을 제거하고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는 기회로 이용하고 있었다.

광해를 지지한 대북파는 임해군의 부하 고언백·백명현을 잡아들여 죽였다. 이이첨과 정인홍은 임해군까지 죽여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때 임해군의 가복(家僕)이 고문을 못이긴 끝에 임해군이 왕위에 오르기 위해 중국에 뇌물을 썼다고 자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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