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3부 2장 변경의 북소리<343>

정충신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말을 달렸다. 그가 편성한 별동부대는 별도로 따르도록 하고 먼저 요하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누르하치를 만나든, 다이샨을 만나든 서둘러 만나야 했다. 상황은 다급하게 돌아가고 있다. 명과 후금의 격돌을 앞두고 조선은 결코 명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것을 후금에 전달해야 한다. 자칫 꾸물댔다가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터지는 꼴을 당할지 모른다.

명은 조선에 구원병 2만을 요청한 뒤 연일 닦달이고, 후금은 조선이 명에 병력을 지원하면 공동의 적으로 간주해 가만두지 않겠다는 위협을 공공연히 하고 있었다. 그래서 후금을 향해 조선의 진의를 전달해야 했다. 결코 명에 협조적이지 않다는 점을 주지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또 명에게 흘러들어가면 부모국을 배신했다고 명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이래저래 어려운 상황이라면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후금에 조선의 속사정을 알리기로 했다. 정충신은 소년병 시절, 이치·웅치전투의 승전보를 가지고 왕이 도망가 있는 의주땅을 단 스무닷새 만에 이천오백리 길을 달려 알리지 않았던가.

조정은 지금 명나라의 요청을 따르기 위해 도원수 강홍립 장군 휘하에 2만 병력을 두어 평안도에 대기시켜 놓고 있다. 싸움이 벌어지면 원군을 곧바로 투입해야 한다. 하지만 강력한 후금군에 발릴 것은 너무나 빤한 일, 자칫하면 개죽음을 당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전쟁을 지연시킬 필요가 있다. 그 사이 시간을 벌어 국면을 유리하게 이끌어야 한다. 그러기 위새서는 후금의 2인자 다이샨을 만나야 한다.

의주를 지나 나룻배를 잡아 압록강을 건너니 바로 새로 점령한 후금 땅이었다. 한양에서 사흘만에 왔다. 깐수성에서 기른 명마는 역시 이름 값을 했다. 이 말은 다이샨이 선물로 준 것이고, 하루 저녁에 삼백리를 달릴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었다. 랴오닝성의 벌판과 산의 협곡을 달리자 이틀만에 푸순에 도착했다.

후금은 요하의 지류인 훈허 평야지대에 있는 혁도아랍(赫圖阿拉)에 도읍을 정했다. 오늘날의 푸순(撫順)이다. 장백산 일대의 건주여진을 지배한 누르하치가 송화강 유역의 해서여진과 연해주 일대의 야인여진 큰 부족집단을 통일한 뒤 대병력을 이끌고 1616년 푸순에 당도해 도읍을 정한 것이다.

이 땅은 본래 고구려, 발해의 땅이었다. 푸순 일대는 고구려가 요동지역을 차지한 후 1차방어선으로 배치한 요충성(要衝城)인 개모성이 있는 곳이다. 고구려 이후 발해 땅이 되었으나 거란의 침략에 926년 멸망한 뒤 영영 중국 땅으로 귀속되었다. 이 땅을 지금 누르하치가 장악하고 중원을 제압하려는 야망을 품고 있는 것이다.

푸순은 신흥 수도답게 흥청거리고 있었다. 밤에도 거리마다 불빛이 환했다. 가게에는 비단이 쌓였고, 모피, 진주가 진열되어 있었다. 군인들이 술집에 모여들어 왁자하게 술을 마시거나 여자를 희롱하는 자유분방한 모습도 보였다.

정충신은 객관에 여장을 풀었다. 다음날 일어나보니 사람들이 더욱 바글거리며 활기를 띠었다. 신생 수도다웠다. 귀족이 사는 내성과 백성들이 사는 외성이 축성되었고, 거리에는 병졸들이 절도있게 구보를 하고 있었다. 정치 군사 문화의 중심지라른 것을 알게 해주었다.

정충신은 사람을 놓아 다이샨과의 면회를 요청했다. 곧바로 전령이 오더니 고했다.

“다이샨 패륵께서 당장 들어오시랍니다. 저를 따르십시오.”

내성의 궁에 이르자 다이샨이 그를 맞았다.

“야, 이거 얼마만인가. 미리 연락을 넣지 않고 오다니, 무슨 일이 있었소?”

“그럴 일이 있었소이다. 사적 용무로 온 것이오.”

“사적으로 와? 아하, 나와의 우정만을 보고 온 것이라? 자, 들어갑시다.”

그는 자신의 게르로 정충신을 안내했다. 유목민이자 기마민족답게 궁궐 대신 그는 이동막사를 침소 겸 사무실로 쓰고 있었다. 자리에 앉자 정충신이 말했다.

“언제 이렇게 궁성을 화려하게 축조습니까?”

“축조라니? 우리가 언제 건축물 축조할 시간이라도 있간디? 빼앗는 거지, 하하하. 혁도아랍성은 사방 길이가 이십리요. 내성은 우리가 입성하기 수십년 전에 완성되었고, 외성은 그 몇 년 후 완성되었더군. 현우궁 지장사 금란전 소충사 유공사 계운서원 등 고건축물은 개수해 쓰고 있는데, 그중 정예부대가 거주하면서 병마를 조련하고 군량을 저장하며 무기를 만든 외성의 군기시를 최고의 요새로 쓰고 있지. 군사조직도 팔기군 제도를 두어서 새롭게 공격법을 개발했소이다. 그뿐인가. 군병을 평시에는 조세원, 행정원, 공장(工匠)으로 일하도록 하고, 전시에는 군대로 편성하는 유목민 특유의 기동력있는 군사조직으로 개편했지. 명나라 접수하려면 이런 인력이 필요하지 않겠소?. 명나라는 이제 가루가 되는 기라.”

“왜 내가 다애샨 패륵을 찾는 이유를 묻지 않소?”

“그야 찾아온 사람이 이유를 대야지, 내가 묻나, 하하하. 그래, 무슨 일로 왔소? 조선은 명나라에 구원병을 보낸다고 하던데? 적군이 적의 소굴에 온 셈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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