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새로운 100년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2부-대한민국임시정부와 전라도인 디아스포라
(1) 임시정부의 전라도사람들
(2)임시정부 의정원의 전라도 사람들
(3)임시정부의 광복군과 독립군들
(4)백범 김구와 전라도
★(5·끝)임시정부의 ‘비밀금고’ 전라도

독립자금 제공으로 3부자와 며느리·처남까지 옥고
김재기 전남대 교수 조선총독부 비밀문서 발굴·공개 첫 확인
이윤호·노석정, 2개조 나눠 광주·화순·담양 등서 모금 활동
감시 피하려 ‘농림회사’ 설립 회원 모집… 40여명 약 8천원 모아
장부·기록 없어 체포돼야 규모 드러나…실제 더 많은 사람 참여

1945년 11월 중국 중경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김구 주석을 비롯한 임정요인들의 환국기념사진. 동그라미 내 인물이 나주출신 김재호(건국훈장 애국장)다.

◇임시정부 출범과 재정 문제

1919년 3·1운동으로 표출된 한민족의 독립 염원은 이후 4월 11일 중국 상하이 (上海)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탄생시켰다. 상해에서 출범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공화정이자 대한민국 탄생으로 그 법통성이 이어지는 독립운동의 구심체였다.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는 비록 망명정부로서 중국에서 출범했지만 한국 독립운동의 최고 지도부로서 국내외 독립운동을 통할하고, 대외적으로는 한민족을 대표하는 정부로서 권위를 인정받고자 했다.

그러나 상해임시정부의 이러한 기대와 포부는 출범하자마자 현실적인 몇 가지 어려움에 직면했다. 국내와 만주, 시베리아, 하와이와 미주에서 독립운동 단체의 난립, 임시정부 내부의 노선갈등 등의 문제점들이 중첩되어 나타났다. 더욱 큰 문제는 임시정부의 운영에 필요한 재정적 어려움 이었다. 국가의 재정은 국민이 납부한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임시정부는 그러한 형편이 안 되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는 독립운동을 위한 안정적 재정원의 확보가 필수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임시정부 유지와 활동에 필요한 건물과 인건비, 운영비 등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상해임시정부 초기의 재정은 국내와 하와이 및 미주한인들이 지원하는 독립자금에 의존했다. 특히 하와이를 비롯한 캘리포니아주의 한인들이 낸 인구세, 의무금, 의연금 등의 성금이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부정기적인 수입원은 대부분 미국과 멕시코, 쿠바에서 한인들이 사탕수수 농장과 에네깬 농장에서 노동의 대가로 얻은 수입의 대부분을 송금한 결과이다. 임시정부는 독립자금 모금을 위해 독립공채를 발행했는데 미주와 중국 동포들에게 독립 후 연 5% 이자를 더해 5~30년 내 상환하겠다는 약속이 담긴 액면가 100원, 500원, 1000원짜리 공채이다. 동포들은 돈을 돌려받지 못할 걸 알면서도 독립공채를 기꺼이 사들였다.

대한민국 원년 독립공채 1000원권.

◇전라도는 임시정부 ‘비밀금고’

상해임시정부 출범초기 대한인국민회를 중심으로 북미지역 한인들의 모금운동이 크게 기여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3·1운동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재정에 전라도에서도 조직적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했다는 조선총독부 비밀문서가 공개되었다.

필자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찾은 이 비밀자료를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공개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비밀금고’ 전라도”라는 제목으로 3·1운동이후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 독립군 자금을 전라도를 중심으로 모금했다는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이 작성하여 일본 외무성에 보고한 16쪽짜리 비밀자료를 분석한 것이다.

1920년 12월 8일에 작성한(대정 9년) 조선총독부 경무국 비밀보고서는 “전라남도에서 假政府(임시정부)조선독립군자금모집원검거”라는 제목의 비밀보고서로 북간도 신흥무관학교 한문교사 신덕영이 최양옥 등과 함께 광주 3·1운동 주도자 이윤호, 노석정 등이 비밀리에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2개조로 나누어 전라도 광주, 화순, 곡성, 보성, 담양 등의 지역에서 30여명으로부터 독립군 군자금을 모금했다는 내용이다. 조선독립대동단 단원을 일제의 관헌을 피하기 위해 ‘농림주식회사’ 설립하여 회원을 모집하고 불입금을 독립운동자금으로 모금하였다. 전라도에서는 40여명이 참여했고 약 8천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조선총독부 경무국이 작성한 ‘전라도 독립운동 자금 모금 극비문서’(대정 9년, 1920년)

조선총독부 경무국 비밀문서에 나오는 전라도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조명석(광주), 조하능(광주), 노석중(광주), 김정연(광주), 정인병(화순), 양사형(화순), 양재국(화순), 윤영기(효천), 손동채(화순), 손여애(화순), 노상영(광주, 노석중 장남), 조병렬(화순), 윤영기(화순), 채상철(광주), 노기준(일곡), 민치도(화순), 주창업(화순), 노석신(일곡), 이윤호(일곡), 이창호(일곡), 유덕례(일곡), 유계윤(광주), 유상규(광주), 고려위(광주), 정용택(군산), 박문용(보성), 최면식(면암 최익현의 손자), 유한선(광주), 박현택(화순), 신유선(곡성), 정호필(곡성), 정원래(곡성), 고인식(곡성), 심유택(곡성), 신대선(곡성), 정호필(곡성), 박종호(담양), 송원근(화순) 등이다.

이 사건이 얼마나 엄중한 지는 내각총리 및 장관, 척식국장, 경찰국장, 검사국장, 관동장관 관동군사령관, 조선군사령관, 조선헌병대장, 진해항사령부, 각 법원장 및 검사장, 상해, 봉천, 길림, 연해주 총영사관 등과 공유했다는 점에서 알 있다. 그리고 당시 독립운동자금을 내다 검거되면 모진 고문과 중형을 선고 받기 때문에 비밀스럽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독립운동 자금을 낸 기록이나 장부가 거의 없다. 그래서 발각되지 않으면 누가 얼마나 많은 돈을 내고 모금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전라도는 임시정부의 ‘비밀금고’라고 하고 싶다.
 

극비문서에 전라도의 노기준(노석정), 노형규, 민치도 등에 대한 정보가 적혀있다.

◇ 3부자와 며느리 처남까지 옥고

비밀문서에 나오는 분중 건국훈포장을 받은 사람은 이윤호(애국장), 이창호(건국포장), 유한선(애국장), 노석정(애국장), 노석중(애국장), 민치도(애국장) 등이다. 광주3·1운동에 참여하여 옥고를 치른 이윤호와 이창호는 형제이고, 유덕례는 이윤호의 부인, 유계윤은 장인으로 나온다. 노석중, 노석정, 노석신, 노형규, 노상영 등도 일곡마을 광주노씨 일가들이다.

일곡출신 광산이씨 이주상, 이윤호, 이창호 3부자와 며느리 유덕례 처남 유계문의 광주3·1만세운동에 대해서는 남도일보 2019년 4월 4일자에 ‘광산이씨 3부자’라는 제목으로 이미 다룬바 있다. 이들은 3·1운동이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자금 모금에 깊이 간여했다. 동아일보 1922년 6월 19일자에는 이윤호가 임시정부 군제특파원과 접촉하여 독립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된 기사가 나온다.
 

한집이 독립운동을 한 이윤호 영광에서 체포. 부인 유덕례는 담양경찰서에 붙들려 무수한 고초를 당하였으나 자기 남편(이윤호)의 거취를 말하지 않았다.(동아일보 1922.5.24)

◇전남 화순에서 독립자금 모금한 민치도

민치도

독립운동 자금으로 모금하다가 체포되어 재판을 받은 민치도에 대한 소식도 동아일보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동아일보 1921년 5월 16일자에 민치도는 3·1운동을 전후해서는 정재면·주창업 등과 국민당 및 결사대를 조직하는 한편 신덕영·최양옥·김정련 등 대동단(大同團)단원들과 연락하여 활동하다가 체포되었다.

민치도는 전라남도 화순군수와 능주·영광 등 각 면장에게 “천만의 천군(天軍)이 습래하면 왜노(倭奴)의 충신(忠臣)은 왜노와 함께 학살할 터이니, 생명을 보전하려거든 속히 사직을 하라”는 편지를 능주우편국에서 부치어 여러 사람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또 정인채·양사형·양회진·윤자삼·민영동 등 각 부호에게 “지금 광주에서 조선독립운동을 위하여 국민당을 조직하고 수십 명의 결사대를 각 지방에 파송하였으니 군자금을 제공하여 사형을 면하라.”는 편지를 발송하여 3천원, 5천원, 1만원씩의 군자금을 청구했다. 정인채에게 80원, 양회진에게 12원의 돈을 받아다가 숭일학교(崇一學校) 선생인 김정련과 협의하고 상해임시정부로 보낼 계획을 하다 검거되어 징역 5년을 선고 받았다./김재기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재기 교수는

김재기 교수는 한민족 독립운동과 디아스포라 연구, 광주학생독립운동 연구, 중국의 소수민족 분리독립운동 연구를 오랜기간 해 온 대한민국독립운동과 통일연구 전문가다. 현재 (사)재외한인학회 회장과 통일부 광주통일교육센터 사무처장으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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