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3부 2장 변경의 북소리<346>

“모문룡 군대가 가도를 갈고 다니면서 식량을 모조리 쓸어갔습네다. 남녀노소 할 것없이 주민들을 잡아갔지요. 내 과년한 딸아이도 데려가더니 지금까지 행방을 알 수가 없소. 남은 사람들은 타처로 피난을 가서 마을이 비었습네다.”

여인은 울상을 짓고 있었다.

“아줌씨는 왜 도망가지 않았소?”

“내가 떠나면 딸아이를 어떻게 만날 수 있나요. 과년한 처니가 어미가 없으면 또 사방팔방 나를 찾아 헤맬 것이구, 그러면 이리떼같은 남정네들이 달려들겠지요.”

딴은 그럴 것 같았다.

“모문룡 군대가 어디에 있습니까?”

“관아에 가서 물어보면 알 것이오이다. 지금은 용천골에 진을 치고 있다고 합데다.”

“그자들 행패를 부리면 곧바로 관아로 연락하시오.”

“모문룡이란 놈을 잡아야 내 딸의 행처를 알 수 있는데, 꼭 좀 잡아주시오.”

모문룡은 후금군을 소탕하는 무장으로 요동에 파견되었지만 군무에 충실하기보다 일탈에 능한 자였다. 지상전 병력은 육지부에 두고 주력인 수군을 모아 발해만과 평안도 해안을 넘나들며 제해권을 장악했으나 내심으로는 노략질을 일삼고 있었다. 탐욕에 몰두하니 전공은 보잘 것이 없었다. 대신 조선 남자들을 생포해 머리를 잘라 명군사령부로 보내 중군장으로서의 체면치레를 하고 있었다. 이런 일탈행위를 하니 휘하에 있던 병사들이 탈출하거나 후금에 투항하는 사례가 많았다.

후금은 모문룡이 이끈 주력 육군과 수군을 거저 얻은 셈이었다. 그런 사정이야 명과 후금의 문제였기 때문에 조선으로서는 괘념할 필요가 없었지만, 압록강 하류와 평안도 해안선을 타고 약탈과 부녀자 납치가 일상적으로 벌어지니 문제가 심각했다.

모문룡은 출신이 불분명한 사람이었다. 항저우에서 태어났다는 설도 있고, 산시성에서 태어났다는 설도 있었으나 확실히 그의 신분이 알려진 것은 없었다. 그만큼 근본이 없는 인간이었다. 소싯적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명군 진영에 들어갔고, 산해관 수군 진영에서 굴러먹다가 상납으로 중군장 지위에까지 올랐다. 상납한 물건은 대부분 훔쳤거나 약탈한 것들이었다.

요양이 후금에 함락되자 그는 군사를 이끌고 압록강과 진강(심양에서 단둥으로 흐르는 강)으로 빠져나와 후금군과 대거리했으나 연전연패했다. 결국 소환 명령이 떨어지자 잔여 부대원을 이끌고 조선땅으로 숨어들었다.

“조선에서 군사와 식량을 징발해오겠다.”

조선으로 들어온 명분을 그는 이렇게 내세웠다. 징발 실적을 올리려고 무리한 약탈과 착취가 자행되었다. 정충신은 용천 관아에 모문룡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북쪽으로 말을 달렸다.

“모문룡이 나타났습니까.”

정충신이 용천에 이르러 관아를 지키고 있는 수비장에게 물었다.

“의주 관아로 갔습니다. 조선 복장으로 변복하고 다닙니다.”

“왜 관아만을 찾지요?”

“식량을 조달하기가 쉬우니까요. 호령 한마디면 군말없이 나오게 되어있죠. 할당량만 제시하면 원님들이 어떻게든 맞춰주니까요.”

“지방관들이 남의 장수 말을 따른다구요?”

“그것 뿐인가요. 백성들이 곡식을 가져오지 않으면 곤장을 때리지요. 지방관들도 때린답니다. 모두 굶어죽을 지경인데, 조정은 구원병을 도우라며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더 힘을 받지요.”

정충신은 의주로 향했다. 의주 땅은 선조 임금이 1년반 동안 행궁을 차렸던 곳이다. 그가 이천오백리길을 달려서 장계를 올린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십수 년의 세월이 흘렀다. 돌아볼수록 한서린 곳이었다. 관아에 이르니 모문룡의 부하들이 옥에 수감되어 있었다. 의주 부윤은 이순신 장군의 조카 이완이었다.

“어서 오시오. 익히 이름자는 알고 있었소이다.”

그들은 서로 수인사를 나누었다.

“모문룡이 이곳에 왔다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내가 그 부하들을 곤장으로 때리고 옥에 가두었지요.”

“원님도 맞는다는데 그들을 때렸다구요?”

“당연히 혼을 내야지요. 이자들이 에먼 조선인을 체포하러 다녔습니다. 그들의 머리를 잘라 적장의 두상이라고 황실로 보냈으니 이런 살인집단을 내버려 두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랬더니 모문룡이 분노하여 ‘상국(上國)의 장졸을 때리느냐’고 항의하고, 우리 조정에 알라겠다고 협박하고 있소.”

“협박을 해요?”

“그렇소이다. 조정은 대명국의 장수 심기를 건드렸다고 해서 나를 도리어 소환했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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