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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3부 2장 변경의 북소리<351>

“국경지대에 방위 병력을 증강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는데 과인은 받아들이고자 한다.”

광해는 어전회의를 소집했다. 정인홍 이이첨 등 조정 신료들이 입궐한 가운데 국경선 방위 전략이 안건으로 상정되었다. 그런데 신료들이 한결같이 반대하고 나섰다.

“전하, 지금은 때가 아니옵니다.”

“아니, 왜 때가 아니란 말인가.”

병판대감이 나섰다.

“어버이 나라 명국(明國)은 왜란 때 많은 병력을 파병해 우리를 도왔습니다. 그 결과 왜군이 패퇴하였나이다. 그러나 명이 골병이 들어 재정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많은 손실을 보고, 국력이 쇠약해져서 사방에서 지방 세력이 발호하고, 국경선 변방에서는 야인들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건주여진을 중심으로 건국한 후금은 명의 목을 쥐어잡고 흔들 정도로 막강해졌습니다. 이런 때 부모국을 돕지 않는다면 어찌 신하국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의리를 지킨다고 할 수 있겠나이까? 명국에 군사 파병부터 실시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왜란 때 우리를 도운 것을 생각하면 10만 병사를 파병해도 부족하다고 판단되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그러자 여기저기서 떼창 부르듯 소리쳤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광해의 생각은 달랐다. 정충신이 변경과 후금을 다녀온 이후 그의 생각은 관망하는 태도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실리를 택하자는 주의였다.

“파병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우리 군대를 정예군대로 단련시켜야 한다. 무기제조와 군사훈련을 강화해 강군으로 길러야 한다. 나아가 내외 정세가 불안할수록 변경의 국방을 튼튼하게 다져야 한다.”

광해의 입장에서는 노쇠하고 병든 호랑이 꼬리를 잡는 것보다 힘이 펄펄 나는 신룡(神龍)의 등을 올라타는 것이 훨씬 유용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냉엄한 국제 질서 속에서 의리보다 앞서는 것이 실리고, 그것은 무엇보다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다. 나의 약점을 살피지 않고 무모하게 상대 진영을 공격하다가 오히려 된통 당하는 수가 있다.

이 무렵 광해의 앞에는 두 개의 골 깊은 전선이 펼쳐져 있었다. 하나는 전후복구의 어려움 가운데 터져나온 명나라 파병 문제요, 다른 하나는 왕권의 위협이었다. 왕권을 다져놓지 않고는 어떤 무엇도 소신있게 펼쳐나갈 수 없었다. 정통성의 결여로 아버지 선조도 신권(臣權)에 휘둘려 정사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서로를 배척하고 부정하는 각 당의 파쟁으로 국가적 동력이 약화되고, 그래서 전쟁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내부의 세력을 제대로 다스리지 않으니 왕권이 행사되지 못했다. 광해 역시 그런 지경에 이르렀다. 벌써 그를 위협하는 내부의 적들이 도처에 잠복하고 있는 것이다.

왕권의 정통 승계권을 갖고 있는 영창대군이 있는 한 그의 자리는 언제나 불안정했다. 인목왕후의 손발을 제거한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일부 왕족과 신하들이 그쪽에 줄을 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인목왕후와 그 자식 영창대군의 목숨이 붙어있는 한 그것은 끊임없이 그를 노리고, 또 정쟁의 도구가 될 것이다.

어느날 광해는 예판대감 이이첨을 불렀다. 그는 광해가 절대적으로 신임하는 핵심 참모였다. 논지가 분명하고 배포와 용기가 있어서 저도 모르게 그를 핵심참모로 부리고 있었다. 광해와 특별한 관계도 없는데 이이첨은 광해를 위해 발벗고 나서다 목숨을 잃을 뻔했다. 선왕 선조가 만년(晩年)에 핏덩이 영창대군을 소북의 영의정 유영경을 이용해 후계 작업을 펴나가자 이이첨은 정인홍과 함께 부당성을 고변하다 원배령(遠配令) 처분을 받았다. 원배령이 떨어졌어도 그는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두세 살의 이런 영창대군이 세자로 책봉되면 수렴청정마저도 잘 안될 것이오이다. 왜냐하면 영창대군의 모후인 인목왕후의 나이가 이제 이십대의 나이인지라 핏덩이 대군을 앞세워서 정사를 이끌 경륜이 될 수 없기 때문이오이다. 결국은 외척들, 아첨배들이 정사를 좌지우지할 것이오이다. 이들의 권력욕 때문에 어린 핏덩이를 이용하는 것이 가당한 일이오이까? 반면에 광해 세자는 이미 16년간 세자로서 후계자 공부를 착실히 다졌고, 무엇보다 전란 시 백성들을 하나로 단합시키고, 그 힘으로 왜군을 몰아내는 데 큰 공을 세운 분이시오. 이런 준비된 세자가 있는데, 어린 핏덩이를 세자로 책봉한다는 것은 나라를 도륙내자는 것과 다름이 아니올시다. 엉망진창이 된 왜란의 후유증을 해결하려면 광해군과 같은 준비된 지도자가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해 나라를 이끌어야 하는 것이오!”

그것은 전혀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선조는 그를 내쳤다. 그런데 이이첨이 유배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던 날, 선조가 갑자기 죽었다. 광해군이 즉시 즉위하면서 이이첨의 원배령이 취소되고, 실권자인 예조판서로 기용되었다. 극적인 대반전이었다. 이때 복수의 광풍이 몰아닥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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