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들
박상훈(사단법인 정치발전소 학교장·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이를 인정하지 않은 정치철학자는 없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정체(政體)의 분류 안에 민주주의를 넣지 않았다. 장 자크 루소는 민주주의가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다고 보았다. 그래서 고대 아테네보다는 스파르타와 로마의 경험에서 새로운 공화정의 원리를 찾고자 했다. 알렉시 드 토크빌은 민주주의의 도래를 불가피한 섭리로 이해했지만, 그 귀결은 편견과 비이성이 지배하는 여론 정치일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했다.

고대 정치철학자들은 민주주의의 단점을 ‘독선적 의견’과 ‘과도한 확신’에서 찾았다. 사실성과 타당성의 기초 없이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 대안으로 그들은 참된 지식을 아는 철인(哲人)의 지배와 중용의 미덕을 권했다. 덧붙여 근대 정치철학자들은 ‘두려움’과 ‘나약함’ 같은 인간적 단점에 대해서도 주목을 했다. 과학과 합리적 사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신이 아닌 인간이 ‘무지의 문제’를 회피할 수는 없으며, 전쟁과 전염병, 빈곤과 재난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회는 있을 수 없다.

누군가로부터 자신의 자유와 생명, 재산을 위협당할 범죄의 가능성도 상존한다. ‘두려움의 동원(mobilization of fear)’은 정치적 승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즐겨 활용하는 전략이 되며, 나와 다른 집단을 악마화해 그 탓으로 돌리고 이들을 제거해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의 나약함은 그 희생양이 되곤 한다. 대중이 두려움과 나약함에 희생될 가능성은 민주주의라고 해서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더 쉽게 대중적 전염병이 될 수 있고, 그로 인해 시민사회가 혐오와 적대로 더 깊이 분열될 수 있다. 20세기 초 인간이 경험했던 것처럼 나치나 파시즘을 불러올 수도 있다.

민주주의가 영어권 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16세기였다. 그때의 민주주의는 아테네를 붕괴로 몰고 간 중우정치, 선동정치에 가까운 의미였다. 세계 최초로 민중 정부의 원리를 헌법에 담았던 1787년의 미국에서도, 전제정의 잔재를 혁명적으로 제거하려 했던 1789년의 프랑스에서도 민주주의는 바람직한 정치체제로 인정되지 않았다. 민주주의를 내건 최초의 정치 집단이 민주공화당(Democratic Republican Party)의 이름으로 1792년 미국에서 등장한 것을 기준으로 본다면 현대 민주주의는 200년 조금 넘는 역사를 갖는다.

하지만 의회에서 매질로 잘못을 처벌하고 사적 린치와 결투로 갈등을 해결하는 일이 빈번했으며, 노예 문제를 둘러싼 내전을 막을 수도 없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의심과 회의는 계속되었다. 전체주의의 물결이 유럽을 지배했던 20세기 전반기 상황을 고려하면, 민주주의가 평화롭고 평등하고 자유로운 정치체제로서 도덕적 효과를 갖는구나 하는 관념이 받아들여진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였다고 할 수 있다.

그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독선과 오만을 절제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가장 중심 집단인 노사가 서로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생산의 과정과 결과를 두고 협상하고 타협하는 협력 게임을 이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견을 달리하는 좌우의 여러 정당이 자유롭게 경쟁하고 또 합리적으로 통치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적대시하고 악마화한 게 아니라 연합하고 공존하는 정치의 규범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갈등과 논쟁을 통해서도 해소되지 않는, ‘오해’가 아닌 ‘차이’가 발견하면 합의를 모색하는 정치 문화가 자리 잡았고, 권력 독점이 아니라 권력 공유(power-sharing)의 원리가 제도화되었기 때문이다. 서로를 자극하거나 모욕하는 언어가 줄고, 서로에게 위협적인 표정을 짓지 않는 ‘시민적 정중함(civility)’이 자연스러운 정치 예절이 되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자가 늘어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유지되지 못한다. 민주주의자들은 표정이 밝은 사람들이다. 차이와 갈등 속에서도 협력의 가능성을 찾고자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틀릴 수 있음을 자각하고 타인으로부터도 배우려 하며 공존의 미덕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이들과 일하면 웃음이 많아지고, 그야말로 일이 된다. 민주주의를 나쁘게 만드는 사람들의 표정은 어둡고 비열하다. 자신의 옳음을 앞세우고, 타인의 다름을 용인하지 못한다. 과도한 확신과 고집, 독선, 야유, 경멸, 냉소 때문에, 없던 갈등도 만들어지고 있던 가능성도 사라지게 만든다.

지금 우리는 어떨까. 민주주의자들이 늘고 웃음이 많아지는 세상이 되고 있을까, 차이를 좁히고 함께 할 수 있는 협력의 공간을 넓히기 위한 노력이 충분히 기울여지고 있는 것일까. 정말로 돌아봐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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