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3부 3장 북청 유배<355>

“이런 상녀르 영감이 다 있나? 세상이 어떻게 변한지도 모르고, 어른이랍시고 감놔라 배놔라 설레발치고 있어! 한때 영상은 감 딱지만도 못해! 이 참에 아주 병신되게 조자버리자구.”

광해를 등에 업은 대북의 이이첨 세력은 백사 이항복 대감의 상소문에 대한 반박 상소문을 쓸 유생들을 모았다. 유학(幼學:권위있는 유생) 윤유겸, 정만, 이호, 이숙, 송영서, 이구 등을 모았다.

그러나 백사 대감을 옹호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았다. 대표적인 사람이 정홍익과 김덕함이었다. 정홍익은 예조좌랑·정언·형조좌랑을 지내고 이원익이 체찰사로 있을 때, 그의 종사관이 되어 함경도·평안도·황해도 어사를 지낸 꼬장꼬장한 사람이었다. 사헌부 지평으로 있을 때는 대북파의 영수 대사헌 정인홍이 성혼을 탄핵하자 정인홍에게 맞대거리하다가 단천 은 광산의 채은관(採銀官)으로 좌천되었다가 어부들의 감독관인 어천찰방(魚川察訪)으로까지 밀렸으며, 광해가 집권하자 간신히 성천부사로 복권, 영전했다. 그는 광해군으로부터 은혜를 입긴 했지만 폐모는 온당치 못하다고 여기고 다음과 같이 상소문을 올렸다. 그의 절개는 추상 같았다.

-신은 엎드려 아뢰옵니다. 성상께서 왕세자로 계실 때 어질고 효성이 지극하여 온 나라의 신하와 백성들이 훌륭한 인격자로 추앙했는데 불행하게도 지금 인륜의 변을 만나셨습니다. 신하들이 성상을 잘못 보필해서 성상으로 하여금 훌륭한 치적을 쌓도록 도와드리지 못했습니다. 지난날에도 없던 일을 가지고 논의하니 황당하옵니다. 엎드려 원하옵건대 성상께서는 엣날의 우나라 순을 본받아서 효성을 다하시고, 양궁(兩宮) 사이에 효로써 화목에 힘쓰시면 한 나라의 신민이 효도하는 아름다운 가풍이 조성될 것이며, 이렇게 되면 성상의 덕이 만세에 도달할 것입니다. 신이 성은에 힘입어 종2품까지 올랐음에도 어리석고 무지하지만, 임금을 사모하여 나라를 위해 순국할 각오가 항상 저의 마음 속에 간절합니다. 만약 조그만 목숨을 아끼고자 하여 하고 싶은 말씀을 다하지 않으면 성상의 큰 은혜를 저버리게 되고, 스스로 불충한 죄에 빠지게 되옵니다. 어리석은 신의 뜻을 진실하게 말씀 올리면, 혹 성상께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여러 가지 말로 아뢰더라도 어떤 사람의 말이 정말 옳은가를 분명히 가려서 채택해주셨으면 신은 만번 죽어도 한이 없겠나이다.(정충신의 저서 ‘백사북천일록(白沙北遷日錄)’ 중에서).

이런 상소문을 보고 폐모 세력들은 또다시 방방 떴다.

“이 새끼가 성상과 우리를 이간질하고 있다니까. 이걸 보라구. ‘신하들이 성상을 잘못 보필해서 성상으로 하여금 훌륭한 치적을 쌓도록 도와드리지 못했다’고 하고, ‘지난날에도 없던 일을 가지고 논의한다’고 시비를 거는군. 이렇게 우리를 싸잡아 조저대는데 참을 수 있나? 이런 새끼는 검으로 배때지를 갈라버려야 해.”

“아니지. 우리도 반박 상소문을 올려야지. 우리에게 문장이 없나, 논리가 없나? 그런 약체를 치면 그 놈만 키워주는 꼴이 된다니까. 나라의 어지러움을 사전에 예방하고, 근본 원인을 제거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인목대비를 서궁으로 유폐시키고, 존호를 폐하며, 대비로 하여금 상감마마께 아침인사를 아뢰도록 하자구. 그렇게 확실하게 밟아버려야 그 새끼들이 악 소리를 내고 숨을 죽이지. 이게 멋진 복수야! 안그래?”

이들은 백사와 정홍익을 싸잡아 비판하는 상소문을 다시 올렸다.

-신들은 엎드려 아뢰나이다. 이항복 정홍익 정충신 등이 말한 우나라 순임금이 인륜의 변을 당한 것을 인용하여 말씀을 올렸는데, 오늘의 일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나라 순이 변을 당할 시에는 한갓 필부에 불과하였나이다.(중략) 제왕은 종묘사직과 온 백성이 의지하고 있는 지존이십니다. 전하께서 당하고 계신 어려운 처지는 전하 뿐아니라 종묘사직과 온 백성에게 미치는 일이옵니다. 그러므로 전하께서 겪고 계신 인륜의 변은 한 필부의 일과 같지 않습니다.(중략). 이항복과 정홍익이 조정의 뜻을 무시하고 억지로 협박하는 말로써 성상을 욕되게 하였사오니 그 죄상을 헤아리기조차 어렵습니다. 의리가 막혀 정론이 오래 침체되었으나, 다행하게도 신하와 백성들이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쳐서 큰 의리를 밝히고, 큰 일을 결단하여 나라를 편안히 할 때가 왔습니다. 이항복과 정홍익은 현직에서 물러나 뜻을 잃은 사람으로서 역적의 무리와 손뼉을 마주치고, 그쪽 편만을 두둔하여 장황한 말로써 성상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여 성상으로 하여금 대역죄에 빠뜨리게 하고자 하옵니다. 이항복이 역적을 도와서 영달을 꾀하고, 임금을 저버리려는 죄는 기자헌(奇自獻:영의정에 있었으나 폐모론을 반대. 후에 일어난 인조반정 시 신하로서 왕을 폐할 수 없다고 반정 거부. 신하 등용 시 인조가 불렀으나 나가지 않는 등 인조를 거부해 투옥돼 처형됨)보다 더 하옵니다. 이항복의 상소문 중에 예기에서 말한 급의 아내와 백의 어머니라고 한 뜻은 더욱 불손하옵니다. 어찌 신하된 자로서 한 나라의 임금에게 고하는 말이 이토록 거칠고 오만할 수 있습니까. 임금이 욕되게 되면 신하가 목숨을 바쳐야 함은 예부터 전해내려오는 군신간의 예법인데, 하물며 임금님의 은혜를 입은 자가 욕되게 하고 그토록 뻔뻔스러울 수가 있습니까. 이항복 정홍익 김덕함은 모두 같은 무리입니다. 청하옵건대 이항복과 정홍익, 김덕함을 모두 절해고도로 위리안치하여 신하와 백성의 원통함을 풀어주소서.(정충신의 ‘백사북천일록(白沙北遷日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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