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3부 3장 북청 유배<356>

광해는 백사 이항복의 관작을 삭탈하는 데 그쳤으나, 정홍익 김덕함은 유배소에 위리안치하라는 비답(批答:상소문에 대한 임금의 대답)을 내렸다. 이렇게 해서 정홍익은 전라도 진도로 유배를 갔고, 김덕함은 함경도 온성으로 유배되었다. 임금이 백사에게 북청 유배형을 내려놓고도 관작만 삭탈하고 관망한 것은 그 제자 정충신의 거동을 좀더 살펴보자는 데 있었다. 한때의 영상 영감은 땡감 꼭지보다 못할 뿐만 아니라 늙어서 은퇴한 대신은 끈 떨어진 갓 꼴이어서 볼품없고 귀찮기만 할 뿐이지만, 그를 내치면 그의 제자들이 반발할 수 있다. 주름진 쌍통을 보고 함부로 내치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실제로 백사의 제자 정충신과 최명길이 내놓고 반발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내칠 명분을 좀더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보고 백사의 유배형을 유보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그 시일이 한두 삭을 가랴.

다른 한편으로 무인으로서 무르익은 정충신을 내치는 것은 나라의 안위상 문제가 있었다. 스승의 일 하나로 정충신마저 용처(用處)를 쓸모없게 만든다면 국방 수호에 막대한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 명나라에 구원병을 보내야 하는 상황에다, 후금군의 위상을 재정립해야 할 처지에 놓여있는데 후금과의 관계망을 구축하고 있는 정충신을 내치면 후금과의 접선이 사실상 차단된다. 이는 병략(兵略) 중 하질의 수다. 그런 어느날 사헌부에 상소문이 하나 답지했다. 이항복의 귀양이 지지부진하자 지켜보다 못한 대북 세력들이 보낸 고약한 상소문이었다.

-대역죄인 이항복은 대비 편만을 두둔하는 기회주의자로서 호역(護逆:임금을 보좌하는 것을 거역)한 죄가 있사옵니다. 신 등이 이미 의견을 모아 말씀을 올린 바와 같이 이항복 무리들이 수의(收議:의견을 모음)한 내용을 들어본즉, 매우 위협적이며 임금을 능멸하고 거칠며 오만방자합니다. 저희와 같은 필력으로는 그 못된 것을 만분의 일로도 형용할 수 없나이다. 분하고 억울할 따름이옵니다. 정홍익과 김덕함은 이항복의 졸개로서 두목격인 이항복보다 죄지은 바가 적습니다. 그러하온데 어찌하여 이항복에게는 관작만 깎는데 그치옵니까. 대신이라 하여 죄를 사하여주는 것이옵니까? 정홍익과 김덕함은 직접 상감을 욕되게 한 바는 없습니다. 성상께서 이항복을 정홍익 김덕함보다 가볍게 벌한다면 정홍익과 김덕함이 반드시 불복할 것이옵니다. 그러하온즉 이항복에게 속히 위리안치를 명하십시오. 옥당(玉堂:홍문관의 별칭)에 보낸 글은 모두 기자헌·이항복·정홍익·김덕함들의 죄가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위리안치와 같은 중형을 아랫 사람에게만 적용하고, 벼슬이 높았던 귀한 사람에게는 행하지 않는다면 장차 나라를 어지럽히는 죄인들을 어찌 징계하시려 하시옵니까. 청하옵건대 공론을 좇아서 이항복에게 중벌을 내려주소서.

이이첨 무리들은 반대파의 근원을 뽑아버려야 후환을 막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 근원은 제자들을 많이 배출한 이항복이다. 그러나 어머니를 내치지 말라는 것, 그것은 왕권을 강화하는 것이지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죄목도 아닌 것을 죄목으로 덧씌워서 몰고 간 것은 무리수고 자충수였다. 명분이 약한 징벌은 필연코 새로운 보복을 낳는다. 편협한 권력의 이념에 따라 날조되고 왜곡된 처벌은 반작용을 가져오게 되어 있었다.

조선에는 십악죄(十惡罪)라는 형별이 있었다. 이 십악죄는 △모반죄(謀反罪) △모대역죄(謀大逆罪) △모반죄(謀叛罪) △악역죄(惡逆罪) △부도죄(不道罪) △대불경죄(大不敬罪) △불효죄(不孝罪) △불목죄(不睦罪) △불의죄(不義罪) △내란죄(內亂罪)다. 당쟁이 일상화되고, 그래서 붕당세력이 교체되고 왕이 바뀌는 사이, 사대부 중 제 명대로 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러니 조선사회는 징벌과 보복의 사회고, 서로 밀고하고 음해하고 배신하는 사회가 되었다. 결국 국가적 동력은 이런 것들로 인해 상실되고 말았다. 이런 폐단으로 사대부의 세계관과 인생관이 옹졸하고 꾀죄죄하다. 그래서 고구려 이후 1000년을 지나온 긴 세월동안 단 한치의 땅을 넓히지 못하고 구멍 속의 구더기들처럼 꾸물거리고 사는 왜소한 민족이 되고 말았다. 구멍 속에서만 군림하는 인생관이 밖으로 뻗어나가는 열본 열도의 무식한 섬놈들보다 못하게 되어버렸다. 서로 못잡아먹어서 안달복달하는 사이 외침을 허용하는 시간만 준 것이다.

당파를 초월해 일평생 중립을 지키며 유연한 정치가로서의 품성을 지녔던 백사 대감도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덫에 걸려들어 말년이 심히 고달프게 되었다. 험지로의 유배형은 병을 얻은 그에게 죽으러 가란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정충신은 이런 정치적 내막을 보고 입에서 쓴내가 났다. 그는 위로 차 백사대감의 농막인 망우리 동강정사를 찾았다.

“스승님을 따뜻한 남쪽도 아닌 날씨 험한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보내는 것은 누가 봐도 지나친 처사입니다. 사람을 못잡아 먹어서 환장한 새끼들을 가만두어야 할까요. 권력욕이 이렇게 야비할 수 있습니까? 한 판 엎어버릴까요?”

정충신이 분개하자 이항복이 말했다.

“그래, 불의에 대한 원초적 대응은 보복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불의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 보복으로는 결단코 불의를 교정할 수가 없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아닙니까. 상녀르 새끼들, 해를 입힌 만큼 돌려주어야지요. 복수주의가 조선조의 정치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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