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칼럼>숫자로 가득 찬 대기

(김재영 광주지방기상청 기후서비스과장)

우주는 전체 질량 중에서 별이나 행성 등과 같이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으로 차지하고 있는 것이 4%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럼 나머지 공간은 그저 허공으로 보일 뿐인데 다른 96%의 질량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우주의 허공은 기체분자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진공상태인데 말이다. 과학자들은 우주의 진공 속에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로 가득 차 있고 이것들이 우주의 물질을 생성시키고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 암흑체들이 정확히 어떤 존재인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지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되는 진공 속에도 뭔가가 있다는 것은 우주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진지하게 만든다.
우주공간만 그렇지 않다. 우리가 살고 이 대기에도 생물체들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공기나 빛과 같이 손으로 만져지지 않는 뭔가로 그득하다. 기상청은 24시간 365일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허공과 같은 대기가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보고 있다. 보이지도 않는데 무엇이 움직인다는 것인가. 그 움직임은 숫자다. 실은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우리의 대기에는 현재라는 숫자로 가득 차 있다. 온도, 습도, 대기의 압력, 바람의 세기, 미세먼지 등 수많은 기상요소들이 숨은 숫자로 요동치고 있다. 기상관측장비들이 그 숫자를 포착해 낸다. 그제야 컴퓨터가 대기를 이해한다. 수많은 방정식으로 채워진 기상예측프로그램을 통해 슈퍼컴퓨터가 그 숫자를 초고속으로 처리하여 미래 대기의 모습을 수많은 숫자들로 채운다. 그리고 그 숫자들은 예보관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선으로 그려진 그림의 형태 즉 일기도라는 모습으로 변신한다. 아날로그처럼 보이는 기상예측의 영역은 이처럼 철저히 숫자에서 시작하여 숫자로 마무리된다.
그런데 가끔은 미래의 숫자대로 현실이 맞아떨어지지 못할 때가 있다. 시간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가 게릴라처럼 출몰하는 어떤 숫자들 때문이다. 변수라 불리는 바이러스성 숫자다. 기상청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측정하기 힘든 숫자가 변수인지도 모른다. 현대의 대기과학은 시간이라는 선 위에서 불규칙적으로 춤을 추는 듯 보이는 이 변수라는 존재를 아직도 파악 중에 있다.
숫자를 통해 우리에게 안심 또는 걱정을 안겨주는 오늘의 건강검진 결과가 영원할 것이라고 아무도 믿지 않는다. 의사조차도 알 수 없는 어떤 변수가 나의 건강을 무너뜨릴지 모른다는 심리가 항상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상예보관들도 언제 갑자기 변수가 튀어나와 자신의 기상예측을 무너뜨릴지 모른다는 걱정을 늘 하면서 날씨를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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