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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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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3부 4장 광야에서<375>

김경서의 <미산집>에 수록된 <신도비명>에서 강홍립을 까는 글은 계속된다.

“공(김경서)이 옥에 갇혀 지내면서 생각해보니 이 마음을 천하후세(天下後世)에 드러내지 않으면 분통하여 살고 싶지 않고, 오랑캐의 세력이 나날이 강해져서 끝내 반드시 국가에 걱정(조선침략)이 될 것 같아서, 포로가 된 과정과 적의 사정을 몰래 쓴 상소와 일기를 신임하는 오랑캐(밀자)에게 줘서 본국에 보고하게 하였다.(중략) 오랑캐가 이미 우리나라와 우호 관계를 맺어서 공이 끝내 쓸모가 없어져서 장기간의 구류가 필요 없다는 것을 알고 돌려보낼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강홍립은 공이 귀국하면 자기 죄가 드러날 것이 두려워 몰래 고자질하자, 누르하치가 사람을 시켜 자루를 뒤져서 오랑캐의 군중(軍中)의 기밀사항을 조선에 몰래 보고하는 비밀 상소와 일기를 찾았고, 누르하치가 크게 분노하여 체포하여 동문 밖 옥에 가두어 죽이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신도비명에 따르면, 김경서는 철저히 명을 따르고, 강홍립은 후금을 따르는 현실주의자였음을 보여준다. 김경서는 동양 예법에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의리를 지키라는 가르침을 거역할 수 없었다. 반면 강홍립의 입장에서는 이제 와서 명을 따르면 좌영과 우영 8천을 잃은 데 이어 중영의 5천 병력마저 다 죽일 판이었다. 명분을 이유로 망해가는 명을 따르다가는 얻을 것이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김경서의 투옥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자 조정은 오뉴월 파리떼처럼 들끓었다. 친명파와 친금파간에 이론 투쟁이 벌어졌다. 대명파가 숫적으로 우세했으니 대세를 이루고, 이론상으로는 명분이 앞섰으니 이길 자가 없었다. 현실주의자는 기회주의자고, 상놈의 짓거리로 매도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중영의 5천 병사를 살릴 수 있는가.

장만이 고민 끝에 정충신을 불렀다. 장만은 몇 달 전 병조판서에 등극해 있었다. 정충신은 백사 대감 시묘지기를 마치고 그동안 산발해진 모발을 단속하고, 의관을 정제한 뒤 대처로 나갈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산소에서 나올 때가 되었겄다?”

장만 병판이 정충신을 마주하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만포진 첨사직을 맡기 바라는 바이다. 내가 정 장수를 중직인 만포진 첨사로 임명하는 이유를 알겠는가?”

“조금은 알 듯합니다만, 직접 하명해주십시오.”

“지금 당장 압록강으로 가주시게. 후금군 진영으로 들어가주어야겠네.”

“후금 진영에는 강홍립 군대가 들어가 있지 않습니까.”

“사세가 복잡하게 되었네. 심하(사르후)전투에서 일만의 인명을 상실한 뒤 5천 병사와 강홍립 도원수가 후금에 포로로 잡혔네. 부원수 김경서는 후금 감옥에 투옥되어 있고 말일세. 도원수와 부원수간에 견원지간이 되어서 내분이 격화되었네. 남의 나라에서 이 무슨 꼴인가.”

“두 장수가 대립하고 있다고요?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까.”

“상세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빤한 일 아닌가. 노선 싸움이지. 친명과 친금의 견해차 때문이란 말일세. 거기에서 지휘 통솔의 문제가 드러나고 있네. 승복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생기니 자중지란이지. 큰 문제가 생겼단 말일세.”

“강홍립 도원수는 현실주의적 대응 태세로 누르하치 편에 섰고, 김경서 부원수는 친명을 주장하고 있다고 보여지는데요?”

“그렇네. 강홍립이 후금국과 여사여사해서 후금에 투항했으니 반역이란 것이지. 하지만 현실은 몸이 후금국에 묶여 있으니 인신이 자유롭겠는가. 목숨이 경각에 달렸어. 그런데도 김경서는 선비의 지조를 버리지 않고 오로지 오랑캐를 비웃고 있네.”

“그놈의 명분 싸움.”

정충신이 속으로 탄식했다. 사대부의 나라, 선비의 나라, 문치의 나라는 명분이 최우선의 가치다. 그것은 붓의 나라라는 자긍심이다. 반면에 이웃나라 왜국은 칼의 나라다. 경험에서 보듯 붓은 태평성대를 약속하지 못한다. 태평성대마저 가차없이 베어버린다. 그런데도 사대부들은 변함없이 명분을 좇는다. 임진왜란·정유재란 두 전란을 뼈저리게 겪었으면서도 군신 논리에 매몰되어 선악을 따진다. 조선에는 왜 현실에 기반한 학자들이 존재하지 못할까. 현실의 문제를 파악해 실천 중심의 해결책을 강구하지 못할까.

그런데 장만은 다르다. 여진족의 발호에 방어전선을 구축하자고 제안했으면서도, 지금 여진이 후금을 건국해 세를 확장하자 누르하치를 지지하는 현실적 인식론을 가지고 있다. 따지자면 명이나 청이나 그게 그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의 이익이 담보되는 쪽으로 선택하면 된다. 장만은 광해의 내부 폭정을 비판하면서도 실리 외교노선을 적극 지지했다.

“임지로 떠나겠습니다.”

정충신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예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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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서의 <미산집>에 수록된 <신도비명>에서 강홍립을 까는 글은 계속된다.

“공(김경서)이 옥에 갇혀 지내면서 생각해보니 이 마음을 천하후세(天下後世)에 드러내지 않으면 분통하여 살고 싶지 않고, 오랑캐의 세력이 나날이 강해져서 끝내 반드시 국가에 걱정(조선침략)이 될 것 같아서, 포로가 된 과정과 적의 사정을 몰래 쓴 상소와 일기를 신임하는 오랑캐(밀자)에게 줘서 본국에 보고하게 하였다.(중략) 오랑캐가 이미 우리나라와 우호 관계를 맺어서 공이 끝내 쓸모가 없어져서 장기간의 구류가 필요 없다는 것을 알고 돌려보낼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강홍립은 공이 귀국하면 자기 죄가 드러날 것이 두려워 몰래 고자질하자, 누르하치가 사람을 시켜 자루를 뒤져서 오랑캐의 군중(軍中)의 기밀사항을 조선에 몰래 보고하는 비밀 상소와 일기를 찾았고, 누르하치가 크게 분노하여 체포하여 동문 밖 옥에 가두어 죽이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신도비명에 따르면, 김경서는 철저히 명을 따르고, 강홍립은 후금을 따르는 현실주의자였음을 보여준다. 김경서는 동양 예법에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의리를 지키라는 가르침을 거역할 수 없었다. 반면 강홍립의 입장에서는 이제 와서 명을 따르면 좌영과 우영 8천을 잃은 데 이어 중영의 5천 병력마저 다 죽일 판이었다. 명분을 이유로 망해가는 명을 따르다가는 얻을 것이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김경서의 투옥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자 조정은 오뉴월 파리떼처럼 들끓었다. 친명파와 친금파간에 이론 투쟁이 벌어졌다. 대명파가 숫적으로 우세했으니 대세를 이루고, 이론상으로는 명분이 앞섰으니 이길 자가 없었다. 현실주의자는 기회주의자고, 상놈의 짓거리로 매도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중영의 5천 병사를 살릴 수 있는가.

장만이 고민 끝에 정충신을 불렀다. 장만은 몇 달 전 병조판서에 등극해 있었다. 정충신은 백사 대감 시묘지기를 마치고 그동안 산발해진 모발을 단속하고, 의관을 정제한 뒤 대처로 나갈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산소에서 나올 때가 되었겄다?”

장만 병판이 정충신을 마주하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만포진 첨사직을 맡기 바라는 바이다. 내가 정 장수를 중직인 만포진 첨사로 임명하는 이유를 알겠는가?”

“조금은 알 듯합니다만, 직접 하명해주십시오.”

“지금 당장 압록강으로 가주시게. 후금군 진영으로 들어가주어야겠네.”

“후금 진영에는 강홍립 군대가 들어가 있지 않습니까.”

“사세가 복잡하게 되었네. 심하(사르후)전투에서 일만의 인명을 상실한 뒤 5천 병사와 강홍립 도원수가 후금에 포로로 잡혔네. 부원수 김경서는 후금 감옥에 투옥되어 있고 말일세. 도원수와 부원수간에 견원지간이 되어서 내분이 격화되었네. 남의 나라에서 이 무슨 꼴인가.”

“두 장수가 대립하고 있다고요?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까.”

“상세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빤한 일 아닌가. 노선 싸움이지. 친명과 친금의 견해차 때문이란 말일세. 거기에서 지휘 통솔의 문제가 드러나고 있네. 승복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생기니 자중지란이지. 큰 문제가 생겼단 말일세.”

“강홍립 도원수는 현실주의적 대응 태세로 누르하치 편에 섰고, 김경서 부원수는 친명을 주장하고 있다고 보여지는데요?”

“그렇네. 강홍립이 후금국과 여사여사해서 후금에 투항했으니 반역이란 것이지. 하지만 현실은 몸이 후금국에 묶여 있으니 인신이 자유롭겠는가. 목숨이 경각에 달렸어. 그런데도 김경서는 선비의 지조를 버리지 않고 오로지 오랑캐를 비웃고 있네.”

“그놈의 명분 싸움.”

정충신이 속으로 탄식했다. 사대부의 나라, 선비의 나라, 문치의 나라는 명분이 최우선의 가치다. 그것은 붓의 나라라는 자긍심이다. 반면에 이웃나라 왜국은 칼의 나라다. 경험에서 보듯 붓은 태평성대를 약속하지 못한다. 태평성대마저 가차없이 베어버린다. 그런데도 사대부들은 변함없이 명분을 좇는다. 임진왜란·정유재란 두 전란을 뼈저리게 겪었으면서도 군신 논리에 매몰되어 선악을 따진다. 조선에는 왜 현실에 기반한 학자들이 존재하지 못할까. 현실의 문제를 파악해 실천 중심의 해결책을 강구하지 못할까.

그런데 장만은 다르다. 여진족의 발호에 방어전선을 구축하자고 제안했으면서도, 지금 여진이 후금을 건국해 세를 확장하자 누르하치를 지지하는 현실적 인식론을 가지고 있다. 따지자면 명이나 청이나 그게 그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의 이익이 담보되는 쪽으로 선택하면 된다. 장만은 광해의 내부 폭정을 비판하면서도 실리 외교노선을 적극 지지했다.

“임지로 떠나겠습니다.”

정충신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예를 취했다.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3부 4장 광야에서<375>

김경서의 <미산집>에 수록된 <신도비명>에서 강홍립을 까는 글은 계속된다.

“공(김경서)이 옥에 갇혀 지내면서 생각해보니 이 마음을 천하후세(天下後世)에 드러내지 않으면 분통하여 살고 싶지 않고, 오랑캐의 세력이 나날이 강해져서 끝내 반드시 국가에 걱정(조선침략)이 될 것 같아서, 포로가 된 과정과 적의 사정을 몰래 쓴 상소와 일기를 신임하는 오랑캐(밀자)에게 줘서 본국에 보고하게 하였다.(중략) 오랑캐가 이미 우리나라와 우호 관계를 맺어서 공이 끝내 쓸모가 없어져서 장기간의 구류가 필요 없다는 것을 알고 돌려보낼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강홍립은 공이 귀국하면 자기 죄가 드러날 것이 두려워 몰래 고자질하자, 누르하치가 사람을 시켜 자루를 뒤져서 오랑캐의 군중(軍中)의 기밀사항을 조선에 몰래 보고하는 비밀 상소와 일기를 찾았고, 누르하치가 크게 분노하여 체포하여 동문 밖 옥에 가두어 죽이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신도비명에 따르면, 김경서는 철저히 명을 따르고, 강홍립은 후금을 따르는 현실주의자였음을 보여준다. 김경서는 동양 예법에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의리를 지키라는 가르침을 거역할 수 없었다. 반면 강홍립의 입장에서는 이제 와서 명을 따르면 좌영과 우영 8천을 잃은 데 이어 중영의 5천 병력마저 다 죽일 판이었다. 명분을 이유로 망해가는 명을 따르다가는 얻을 것이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김경서의 투옥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자 조정은 오뉴월 파리떼처럼 들끓었다. 친명파와 친금파간에 이론 투쟁이 벌어졌다. 대명파가 숫적으로 우세했으니 대세를 이루고, 이론상으로는 명분이 앞섰으니 이길 자가 없었다. 현실주의자는 기회주의자고, 상놈의 짓거리로 매도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중영의 5천 병사를 살릴 수 있는가.

장만이 고민 끝에 정충신을 불렀다. 장만은 몇 달 전 병조판서에 등극해 있었다. 정충신은 백사 대감 시묘지기를 마치고 그동안 산발해진 모발을 단속하고, 의관을 정제한 뒤 대처로 나갈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산소에서 나올 때가 되었겄다?”

장만 병판이 정충신을 마주하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만포진 첨사직을 맡기 바라는 바이다. 내가 정 장수를 중직인 만포진 첨사로 임명하는 이유를 알겠는가?”

“조금은 알 듯합니다만, 직접 하명해주십시오.”

“지금 당장 압록강으로 가주시게. 후금군 진영으로 들어가주어야겠네.”

“후금 진영에는 강홍립 군대가 들어가 있지 않습니까.”

“사세가 복잡하게 되었네. 심하(사르후)전투에서 일만의 인명을 상실한 뒤 5천 병사와 강홍립 도원수가 후금에 포로로 잡혔네. 부원수 김경서는 후금 감옥에 투옥되어 있고 말일세. 도원수와 부원수간에 견원지간이 되어서 내분이 격화되었네. 남의 나라에서 이 무슨 꼴인가.”

“두 장수가 대립하고 있다고요?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까.”

“상세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빤한 일 아닌가. 노선 싸움이지. 친명과 친금의 견해차 때문이란 말일세. 거기에서 지휘 통솔의 문제가 드러나고 있네. 승복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생기니 자중지란이지. 큰 문제가 생겼단 말일세.”

“강홍립 도원수는 현실주의적 대응 태세로 누르하치 편에 섰고, 김경서 부원수는 친명을 주장하고 있다고 보여지는데요?”

“그렇네. 강홍립이 후금국과 여사여사해서 후금에 투항했으니 반역이란 것이지. 하지만 현실은 몸이 후금국에 묶여 있으니 인신이 자유롭겠는가. 목숨이 경각에 달렸어. 그런데도 김경서는 선비의 지조를 버리지 않고 오로지 오랑캐를 비웃고 있네.”

“그놈의 명분 싸움.”

정충신이 속으로 탄식했다. 사대부의 나라, 선비의 나라, 문치의 나라는 명분이 최우선의 가치다. 그것은 붓의 나라라는 자긍심이다. 반면에 이웃나라 왜국은 칼의 나라다. 경험에서 보듯 붓은 태평성대를 약속하지 못한다. 태평성대마저 가차없이 베어버린다. 그런데도 사대부들은 변함없이 명분을 좇는다. 임진왜란·정유재란 두 전란을 뼈저리게 겪었으면서도 군신 논리에 매몰되어 선악을 따진다. 조선에는 왜 현실에 기반한 학자들이 존재하지 못할까. 현실의 문제를 파악해 실천 중심의 해결책을 강구하지 못할까.

그런데 장만은 다르다. 여진족의 발호에 방어전선을 구축하자고 제안했으면서도, 지금 여진이 후금을 건국해 세를 확장하자 누르하치를 지지하는 현실적 인식론을 가지고 있다. 따지자면 명이나 청이나 그게 그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의 이익이 담보되는 쪽으로 선택하면 된다. 장만은 광해의 내부 폭정을 비판하면서도 실리 외교노선을 적극 지지했다.

“임지로 떠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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