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3부 5장 만포진 첨사<377>

이질로 부대원 모두 물똥만을 갈기고 있으니 갱신할 리가 만무했다. 벌써 송장으로 나간 군졸만도 열댓 명이나 되었다. 이 지경까지 오도록 군관과 참모들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 정충신이 훈련장에 모인 부장들을 향해 큰 소리로 닦달했다.

“이놈의 새끼들! 부하들이 다 디지는디도 땅만 쳐다보고 있냐? 당장 솥을 걸어라.”

정충신은 삼십 리 밖 산방의 한약방으로 달려갔다. 영산이 근처에 있어서 한약재를 구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쑥이든 작약이든 마늘이든 이질에 좋은 것은 다 내놓으시오.”

“에끼 양반, 덮어놓고 내놓으라면 되겠소?”

한약방 주인이 큰소리로 받았다.

“한 겨울 이질이라는 것은 여름철 급성 세균성 장 감염으로 걸리는 것이 아니오. 추접스럽게 먹고 추접스럽게 사니까 병에 걸리오.”

“좌우지간 닥치는대로 내놓으시오.”

“그래도 병에 닿게 약초를 써야지. 우리 한의학에서는 이질을 증상에 따라 적리·혈리·적백리·농혈리·기리 등으로 말하는데, 발열·복통·하중·혈변·농점액·하리는 하루종일 물똥을 싸니 온 몸이 처져서 오래 진행되면 죽게 되는 고약한 병이오. 산밀탕이라는 것이 직방이요.”

“그럼 그걸 어서 내놓으시오.”

의원은 이질에 잘 듣는 백하오 백축 백작약 익모초 계지 인진 앵속각 생강 대추 대산 마늘을 내놓았다. 정충신은 산밀탕 재료를 몇 소쿠리 거둬와 가마솥에 넣어 끓였다. 더럽고 지저분한 병영의 숙소를 짚불로 태워 소독하고, 퀴퀴하게 냄새나는 젖은 이불들을 모조리 내다 빨아 널었다. 병사들을 장작불에 구운 구들장에 집어넣어 재웠다. 며칠 지나자 한두 놈씩 일어나는데, 일어나는 족족 압록강 물을 끌어와 솥에 끓인 뜨거울 물로 목욕을 시켰다. 그사이 미음을 먹이고 창자를 안심시킨 뒤, 또 열흘쯤 지나자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산에서 잡아온 사슴·멧돼지·산토끼를 잡아 삶아서 통째로 먹였다. 보름이 지나자 언제 앓았더냐 싶게 모두 일어나더니 창과 칼을 휘둘렀다. 열댓 근짜리 창검과 무거운 갑옷을 입고도 머리 위까지 뛰어올랐다. 이 정도면 홍타이지의 팔기군도 능히 대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것들 뛰는 것 보아라. 저런 종자들을 내버려 두었으니, 옛기 놈들. 군사는 일찍이 잘 먹여야 하고, 잘 재워야 한다.”

정충신이 통변사 하세국을 불렀다.

“하 통변도 다 나았는가?”

하세국은 군원들에 비해 나이가 많았고, 민간인이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정 첨사의 통솔력이야말로 하늘이 내린 지혜로소이다.”

하세국이 장깨들의 예법대로 두 손을 모아 쥐고 머리를 조아렸다.

“듣자하니 하 통변은 향통사(鄕通事)로서 여진어를 잘 안다는 얘기를 들었소. 몇 번 후금 진영에 들어갔소?”

“10여 차례 북방 오랑캐와 통교 혹은 선유(宣諭), 건주위 정황 탐문, 향도(香徒)로서의 임무를 수행했소.”

“그래, 지금 변경 상황이 어떻소?”

“나는 노추(奴酋:후금 건국자 누르하치의 별호)가 부하 수백 명을 시켜 배를 건조하고 있다는 정보에 따라 그들의 소굴을 정탐하러 들어갔습니다. 활동 중 부하 통변 기사대가 체포되어 인질로 잡혔나이다. 지금 몹시 고초를 겪고 있을 것이오이다.”

“노추가 배를 건조하는 이유는?”

“심양과 요양이 후금의 누르하치에게 함락되자 명의 장수로 파견된 모문룡이란 자가 압록강변의 진강으로 나갔다가 후금 병력이 공격해오자 진강을 탈출하여 조선에 상륙하여 철산·용천·의주 등 평안도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이미 요동에서 도망쳐와 조선에 머물고 있던 명나라의 패잔병들과 함께 그 고을을 분탕질하고, 때로는 압록강을 건너 진강의 후금군을 습격하여 작은 승리를 거두었소이다. 명에게는 반란군이 되고, 후금군에게는 비적이 되어버렸지요. 이에 후금의 아민(阿敏)이 모문룡을 치기 위하여 5천의 군사를 이끌고 압록강을 건넜소. 모문룡은 용천 관아에 있다가 조선인 복장을 하고 도망쳤소이다. 그리고 가도로 들어가 해상밀수 활동을 하는 한편, 후금 땅에도 들어가 약탈했습니다. 그래서 노추가 모문룡을 치기 위해 배를 건조하기 시작한 것이요.”

“모문룡은 명나라로부터도 배척되고, 후금에는 현상금이 붙었겠군?”

“그래서 그 자를 잡아 바치려다가 우리가 낭패를 당했습니다.”

“그 자를 때려잡을 수 있는 방법은?”

“강계미인이 직방입니다. 고 새끼는 미인이라면 머리가 돌아버리요. 사죽을 못씁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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