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조선과 2019년 한국

1592년 전국을 통일한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20만 대군을 앞세워 조선을 침략했다. 조총으로 무장한 육군 정규병력 15만8천명과 수군 2만여 명이 9번대(番隊)로 나뉘어 조선 땅을 짓밟았다. 조선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부산진 첨사 정발(鄭撥)과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 이 고군분투했으나 부산포와 동래부는 몇 시간 만에 무너졌다.

일본군은 거침없이 북상했다. 신립장군이 8천 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쳤다. 급히 끌어 모은 군사들은 대부분 농민들이었다. 싸움에 능한 왜군을 당해낼 수 없었다. 신립은 물론이고 군사들이 전멸 당했다. 이후로는 속수무책이었다. 부산진에 상륙한 왜군은 조선 백성을 도륙하며 18일 만에 한양을 짓밟았다. 경복궁은 모두 불탔다.

2019년 7월 일본 아베 정부가 한국에 수출되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핵심 부품에 대해 규제 카드를 빼들었다. 한국경제의 핵심인 반도체 산업에 타격을 주기 위해서였다. 정교하고 치밀했다. 한국 수출액의 30~40%를 차지하는 삼성과 SK하이닉스를 때리면 한국경제가 거덜 날 것이고 결국 한국이 백기투항(白旗投降)할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아베총리는 지난해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이 ‘일본 (전범)기업들이 강제 징용자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는 판결을 내리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리고 한국정부가 정치적 협상을 외면하고 ‘반일(反日)프레임’으로 강공을 취하자 ‘실력행사’로 한국을 혼내주기로 결정했다. 임진왜란 때는 정명가도(征明假道)를, 지금은 ‘대북제재위반’을 명분으로 삼고 있다.

지난 해 부터 일본의 친한파 인사들은 아베정권이 경제전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알려왔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무시했다. 정부는 안일했고 정치인들은 당파에 따라 싸움만 하고 있었다. 일본의 경제전쟁에 대한 경고음은 없었다. 1590년 통신사 일행이 일본으로 건너가기는 했으나 ‘민심동요’를 이유로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결론지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일본의 경제전쟁에 대비하지 못한 한국정부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다. 임진왜란 때는 명(明)에 매달렸지만 지금은 미국에 읍소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상황이다. 기업총수들을 ‘의병장’으로 만들어 전면에 내세우고, 국민을 ‘의병’으로 삼아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벌이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이념보다 부국강병이 절실하다는 것을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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