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을 부탁해
김홍식(광주 일동중 교장·문학박사)

하루키의 장편소설 ‘색채가 없는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과거의 상처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상황에서 주인공은 이를 회복하기 위해 낙관할 수 없는 자신의 순례를 시작한다. 사람에게 과거의 상처는 잊어야 할 것도 있지만 적극적으로 치유해야만 하는 것도 있으니까. 또한 상처는 덮어 놓을 수는 있어도 그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는 법 아닌가.

사실 열어놓고 보면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삶의 상처는 있기 마련이다. 이로 인해 드리워진 과거의 그늘이 삶의 어두운 바탕색이 되어 건강한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남들에게는 모두 잊혀진 과거일지라도 정작 본인에게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 상처와 굴레가 되어 벗어나려고 발버둥 칠수록 더욱 조여지는 올무가 되곤 한다.

주인공은 완벽한 공동체를 꿈꾸며 친하게 지낸 고교 시절 네 명의 친구들로부터 영문 모를 추방을 당한 뒤 죽음 문턱에서 헤맨다. 어쩌다 사람과의 만남으로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계기가 주어지기도 하지만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더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

이는 상대방의 배신 등으로 입게 될 상처를 두려워하는 주인공의 자기 방어기제가 자아를 위축시킴으로써 타인과의 원만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깨뜨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악순환은 문제 발생 16년이 지나 36세 성인이 된 주인공에게 사회적 성장을 멈춰 세운 치명적인 걸림돌이 되어 있다.

그러다가 사라와의 만남을 통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권유받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과거 문제에 정면으로 직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에리에게서 결정적인 문제 해결의 답을 찾았다.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은 조화만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처와 상처로 깊이 연결된 것이다. 아픔과 아픔으로 나약함과 나약함으로 이어진다. 비통한 절규를 내포하지 않은 고요는 없으며 땅 위에 피를 흘리지 않는 용서는 없고, 가슴 아픈 상실을 통과하지 않는 수용은 없다. 그것이 진정한 조화의 근저에 있는 것이다.”

번쩍, 주인공에게 깨달음을 준 내용이다. 비로소 지금까지 짓눌려 왔던 자신의 슬픈 영혼을 구제하고 그 질곡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용기를 얻는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힘들고 아파하는 구성원들이 적지 않다.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교직원들은 교직원들대로 관계의 불편함을 호소한다. ‘스님이 절 보기 싫으면 떠난다’는 말이 있는데 이게 어디 절이 문제겠는가. 늘 가까이에서 함께 하는 사람이 불편할 때 교실이든, 일터든 의욕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저마다 피할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생긴 아픔과 상처를 보듬고 지금 우리는 인생의 어떤 역(驛)에 와 있는 걸까? 끈질기게 괴롭혀 온 우울한 심리적 고통에서 벗어나 남들이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역을 만들고 소통하면서 행복한 일상을 가꿔가는 우리들의 모습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훈훈해진다.

학교는 곧 여름방학이다. 세월이 약이란 말도 있지만 상처 앞에 방치된 시간이 능사는 아니다. 자신의 상처를 회피하지 않고 정직하게 해결하려는 자기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학생과 교직원들에게는 방학이 치유와 회복을 위해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다. 해송이 지키는 남해 어느 낯선 바닷가에서, 해맑은 원추리꽃이 근심 없이 반기는 지리산 자락 그 어디에서, 그래도 잘 견뎌온 자신에게 ‘당신이 옳다’고 말을 건네 보자. 발밑의 여린 풀 하나하나에 의미 있는 눈길 나누며, 인연으로 스치는 바람결 속에서 ‘나 때문에 힘들었을 사람들’의 모습을 별빛으로 떠올려보자. 일상에서 조금 비켜 떠나왔을 뿐인데도 이렇게 허허롭고 너그러워지는 것을….

작은 순례로 처진 어깨가 다시 올라가고 바닥을 드러낸 메마른 감정도 넘치도록 채워지면 좋겠다. ‘사랑하는 자의 결점을 보고 웃을 때처럼’ 친구들과 동료를 좀 더 따뜻한 마음으로 껴안을 수 있는 넉넉함까지 충전된다면 더욱 좋겠다. 이인범 시인의 마음속 물살 같은 ‘풍경’ 시 한 대목이 우리 모두에게 웅숭깊은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슬픔의 덩이인 것처럼 목숨은/슬픔 같은 풍경 속에서는 외려 편안하고/우리들 꿈은/슬픔 같은 풍경 안에 머무르는 것//오직 내 가슴만 저리는 게 슬픔이라면/내겐 슬픔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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