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정 광주광역시의회 환경복지위원장의 남도일보 화요세평
‘돌봄 민주주의’를 위한 전제들
박미정(광주광역시의회 환경복지위원장)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복지’, 반갑지만 두렵고 설렌다. 새로운 복지국가의 비전을 ‘돌봄’에 초점을 두어서 반갑고, 필요하지만 완전하고 충분한 ‘돌봄’이 가능할까라는 점에서 두렵고 설렌다. 이는 그간 지극히 사적인 영역으로 간주되었던 ‘돌봄’영역을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선언이다. 달리 표현하면 ‘돌봄의 사회화’ 내지는 ‘돌봄의 정치화’로, 사적 영역과 시장에 맡겨 놓았던 ‘돌봄’을 공공재로 전환해 새로운 복지국가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맞다. 이제 돌봄은 더 이상 집안일이 아니다. ‘돌봄 복지국가’로의 이행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과정이다.
‘돌봄 복지국가’는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돌봄 욕구를 필요에 따라 시기적절하게, 저비용 고품질의 서비스를 국가차원에서 제공하고, 이를 자유롭게 선택·이용할 수 있도록 모든 사회 체계를 촘촘히 연계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는 사회적 자원의 총화이자 체계화이기에 마을과 골목에서 관계복지가 튼튼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즉, ‘돌봄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사회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존의 주류담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독립 담론’이다.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힘 있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독립과 자립’은 사회적 책임을 사적인 개인 책임의 문제로 환원시키거나 누군가의 자연스런 몫으로 간주해 ‘돌봄의 사각지대’에서 독립적 인간을 상정해 왔다. 이러한 제도는 차별과 배제를 일삼고 불평등과 부정의를 초래했고, 다시 불평등과 부정의는 심화된 차별과 배제를 재생산하는 악순환의 늪이었다. 일상화되고 정상화되는 시장과 경쟁체제에서는 누군가가 돌봄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들이 희생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장과 개인 책임의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의존성을 부인하고 돌봄의 필요성을 경시해 구조적 불평등을 생산하고 영구화하는 구조적 상황을 은폐해 왔다고 한다. 인간은 취약하고 의존적인 존재이며 필연적으로 돌봄이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합의할 때가 되었다.
돌봄의 주변화(marginalization of care)로부터 돌봄의 주류화(mainstreaming of care)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사회적 돌봄의 급격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돌봄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주변화(marginalizing)되어 있다. 돌봄의 영역은 사적이거나 여성, 저소득, 이주민들이 주로 하는 노동의 영역이라는 인식의 전환이다. 사회화가 실질적으로 ‘절반(折半)의 사회화’에 머물고 있는 것은 돌봄을 둘러싼 사회 부정의(不正義)의 결과이다. 따라서 돌봄의 문제를 정의(Justice)의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복지를 실현하려면 ‘돌봄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돌봄을 더 이상 경쟁과 시장 논리에 맡길 수 없다. 돌봄이 필요한 약자에게 극심한 차별과 불평등을 강요하는 분배가 계속되었던 것을 자유주의 시장에서 너무도 많이 겪었던 경험이 증명한다. 돌봄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할 때 경제적 부에 몰두하는 것을 완화시킬 수 있다. 돌봄 받을 권리, 돌볼 권리를 민주시민 누구나에게 부여하는 것은 정치의 몫이다. 정의로운 정치에 의해 돌봄의 민주주의가 펼쳐질 수 있다.
돌봄도 누구나 실천하는 권리이자 의무라고 인정하게 되면 돌봄의 사회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돌봄이 공공재가 되면 가능할 수 있다. 그간에는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을 주목하지 않았다. 이들도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모두가 돌봄을 주고받을 책임이 있다고 인정해야 새로운 복지시대가 다가올 수 있다. 민주주의 기본원리로서 ‘함께 돌봄’이 작동되어야 한다. 모든 시민의 돌봄 필요를 채우기 위한 국가 체계의 재구조화가 부드럽되 강력하게 추진되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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