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3부 5장 만포진 첨사<391>

“장만 대감, 지금 뭐가 중한디?”

왕이 퉁명스럽게 묻자 장만 병조판서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왕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연했다.

“뭐가 중하냐고 물었소.”

“황공하옵니다.”

돌이켜보니 그도 뭔가 잘못한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아랫것들에 대한 관리 소홀이었다. 압록강 변경의 열악한 기후 환경을 극복하며 나라를 지키고 있는 북방의 장수를 불러들여 벌을 주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가 있었다. 고대광실에서 배불리 먹으며 거들먹거리면서 권력을 농하는 자들의 현실감각없는 횡포인 것이다. 탐악질을 일삼는 관향사를 재수없게시리 죽인것이긴 해도 병사들이 먹을 것을 몰래 빼돌려 주색잡기에 빠졌으니 그런 자를 일벌백계해도 탓할 일은 못되었다. 자고로 군사가 먹을 것을 빼돌리면 망국의 길로 들어선다고 했다. 병사들이 칼과 활을 먼저 거꾸로 돌려버리기 때문이다. 관향사란 자 역시 칼을 거꾸로 돌릴 짓을 했다. 병조의 책임있는 자와 나눠먹는 식으로 상납까지 했으니 그 죄는 가중처벌감이었다.

죽은 관향사의 복수를 위해 관리들이 과도하게 죄목을 씌워서 정충신을 체벌하려는 부하들의 수작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 장만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었다. 장만은 궁궐생활의 협잡과 부정에 넌덜머리를 냈다. 자신은 천상 무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어서 진중으로 떠날 생각을 했다. 병조판서 자리는 정무직인지라 무인인 자신이 깔고 앉아 있다는 것이 체질상 맞지 않았다.

“상감마마, 소신은 적성이 야인의 성격인지라 차제에 북방 변경으로 나가기를 원하옵니다.”

“본래는 문인이 아니었소?”

“문인으로 출발했지만 나라가 이러하니 무인의 길을 걸었습니다. 무인의 길을 걸으면서 젊은 군관들의 순수한 애국심을 보고 보람을 느꼈나이다.”

“그런 곳에 쥐새끼들이 기어들어가서 병사들의 먹이를 빼돌렸다는 것이오?”

“황공하옵니다.”

“장 병판은 회갑을 넘긴 나이잖소. 북방변경으로 간다는 것은 당치 않소. 내 나무라지 않을테니 과인의 곁을 지켜주시오. 정충신 첨사는 곧바로 귀임하도록 조치하겠소. 상을 못줄망정 치다니, 그런 못된 자들의 명단을 재출하시오. 사대부라는 것들은 다투지 않으면 남을 어떻게든 해코지해서 밟으려 하거든? 나는 그런 놈들 혀를 뽑아버리겠소.”

“그것은 당치 않사옵니다. 그러잖아도 도성에 민심이 흉흉합니다.”

“내 알고 있소. 대비를 유폐시키고 서인으로 강등시키고, 골육(骨肉)을 죽였다고 해서 원성이 자자하다는 것을 알고 있소.”

“전하, 옥체를 보전하소서. 소신 역시도 흉흉한 유언비어가 나도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일일이 거론하기도 민만한 소문들이 저자거리에 나돌고 있사옵니다.”

“그게 모두 자기 이익 때문이오. 음모를 꾸미고 다투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이익과 자파 세력 확장을 위한 것이오. 미친 듯이 명나라를 빠는 자들 보시오. 나라의 이익은 배제되고 당파적 정치적 득실로 그것을 이용하고 있소. 망해가는 명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이유가 고작 명분과 의리 때문이요? 후금과도 명분과 의리라는 것어 없소?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사물에 만고불변이라는 것은 없소. 청나라를 무시하지 말자는 사람을 반역자로 몰고, 쳐죽여야 한다고 난리춤을 추는 것 보면 어이상실이지 않소? 세상을 내다보는 눈이 왜 그렇게도 옹졸하단 말이오?”

“황공무지로소이다.“

“나는 사대에 얽매이지 않는 왕이 될 것이오. 그 바탕은 실리요.”

“소신 역시 같은 의견이옵니다.”

“나는 후금을 중국의 왕조를 가장 융성하게 이끌 나라라고 내다보고 있소. 누르하치와 그 열여섯 자식들만 가지고도 천세의 권력을 누릴 것이오. 그렇다면 우리가 어느쪽에 줄을 서야 하는지를 잘 알아야 할 것이오. 명 황제의 권력기반이 취약한 것은 그의 광포한 내치와 사치, 무능 때문이지만, 고질적인 파벌 싸움의 요인이 더 크오.”

우리도 그런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장만은 입밖에 내진 않았다. 왕이 말했다.

“고려 시기 여진족은 우리에게 납작 엎드렸소. 고려는 별무반을 편성하여 여진족을 물리치고, 함경도 땅이 고려 영토임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9성을 쌓았소. 여진이 조공을 바치면서 애원하여 동북 9성을 돌려주었는데, 그들은 그 힘으로 금나라를 세웠던 것이오. 금나라가 몽골에 멸망하자 여진족들은 사분오열되었는데 누르하치가 다시 통일해서 옛 금나라의 영광을 재현하겠다고 후금을 세우고, 고려를 물려받은 조선에게는 여전히 은인의 나라이자 조상의 나라라고 섬기고 있는데, 되도 않는 명분 따위로 친명 목소리만 내니 답답하오. 대체 그들의 세계관이 왜 이토록 옹졸하단 말이오?”

“황공하옵니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