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3부 5장 만포진 첨사<396>

후금은 조선국을 일방적으로 동맹으로 여기며 우러르고 있었다. 그것은 명나라를 치는 데 뒷전에 적을 두어서는 안된다는 전략적 측면도 있었지만, 양국 사이에는 조그만 약탈 같은 것이 있었으나 국가 차원이 아니고 동네 패거리들이 도둑질하는 수준으로 그리 큰 문제가 아닌, 말 그대로 원한 살 일이 없었고, 누르하치와 그 자식들은 조선을 깨우친 조상국이라 하여 조선에 대한 흠모지정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조공도 바치고, 사신으로 간 정충신에게 값진 선물을 안겨주며 예우했다. 정충신이 쓴 ‘만운집’을 보면 조선에 대한 깎듯한 예우들을 그대로 살펴볼 수 있다. 정충신이 쓴 ‘만운집(?雲集)’을 몇 대목을 인용한다(번역출처는 정묘호란 병자호란).

-언가리(彦加里)가 또 묻기를 “사신은 언제쯤 다시 오는가? 사신의 왕래를 허락한다면 양국에 서로 좋을 것이다. 한(汗:누르하치)을 보지 못한 것을 섭섭하게 여기지 마라”고 하고, 백금 10냥과 호랑이 가죽 2장을 (선물로)주었으며, 데리고 간 하급관리에게도 은 1냥씩을 주어 노자에 쓰도록 했다(仍問曰: “差官幾時復來乎? 若許通差, 兩國之幸。勿以汗之不見爲憾也”, 以白金十兩、狐皮二令贈之, 所帶員役, 各給銀一兩, 以爲路資).

-(정충신이)떠나려 하자, 또 흰말 1필을 주면서 말하기를 “사신이 타고 온 말이 여기에 와서 죽었다고 들었는데, 좋지 않은 말이지만 걸어가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니, 타고 가도록 하라. 전에 소롱귀가 귀국에 갔을 때에 타고 갔던 말이 죽었는데, 귀국에서 특별히 준마 한 필을 준 후의를 지금까지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마침내 “신은 진강의 길을 경유하여 돌아왔다.(臨發,又送白馬一匹曰:“聞差官所乘之馬,到此斃損,故以劣騎代步,幸可騎去.前日小弄貴之去,亦有馬斃之患, 貴國特給駿馬一匹厚意, 至今不忘也。”忠信遂由鎭江路而還)

-이번 행차는 신이 왕복 1개월 남짓이고 2천여 리를 갔다. 오랑캐의 수도에 깊숙이 들어가서 그들의 정보를 자세히 탐지했는데, 누르하치의 아들은 20여 명이고 그중에서 군대를 거느린 자는 6명이었다. 장남은 일찍 죽고, 그 다음은 귀영가, 그 다음은 홍태주, 그 다음은 망가퇴, 그 다음은 탕고대, 그 다음은 가문내, 그 다음은 아지거다. 귀영가는 단지 평범한 보통 사람, 홍태주는 똑똑하고 용감함이 사람들보다 뛰어났으나 속으로 시기심이 많아 아비의 편애를 믿고 형을 죽이려는 계책을 몰래 품고 있었다. 나머지 네 아들은 칭찬할 것이 없고, 개괄하면, 누르하치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아두는 누르하치의 사촌 동생인데, 용감하고 매우 지혜로우며 여러 장수들보다 뛰어나서 전후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도 모두 그의 공이다.(是行, 忠信往返月餘, 行二千餘里。深入虜穴, 詳探虜中事情, 蓋老酋有子二十餘, 而將兵者六人。長早亡, 次貴盈哥, 次洪太主, 次亡可退, 次湯古台, 次加文乃, 次阿之巨也。貴盈哥, 特尋常一庸夫, 洪太主雖英勇超人, 內多猜忌, 恃其父之偏愛, 潛懷弑兄之計。其他四子, 無足稱者, 摠之非老酋之比也。有阿斗者, 酋之從弟也, 勇而多智, 超出諸將之右, 前後戰勝, 皆其功也)

-누르하치가 예전에 비밀리에 (동생)아두에게 묻기를 “여러 아들 가운데에서 누가 나를 대신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자, 아두가 아뢰기를 “아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아버지인데,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다시 누르하치가 말하기를 “우선 말해보라”고 하자, 아두가 아뢰기를 “용기와 지혜를 모두 갖추고, 모든 사람들이 칭송하는 자라야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누르하치가 말하기를 “내가 너의 뜻이 누구에 있는지 알겠다”라고 했는데, 홍태주(홍타이지)를 가리키는 것이다. 귀영가가 이 말을 듣고 아두에게 깊이 원한을 품었는데, 나중에 아두가 비밀리에 귀영가에게 말하기를 “홍태주가 망가퇴?아지거와 너를 해치려 한다. 그 시기가 임박했으니, 대비하도록 하라”라고 했다. 이 말을 들고 귀영가가 자기 아버지에게 가서 울자, 누르하치가 이상히 여겨 그 이유를 묻자, 아두가 말한 대로 대답했다. 누르하치가 세 아들을 불러 이를 묻자, 세 아들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누르하치가 아두를 꾸짖기를 “이는 둘 사이를 이간시킨다”라고 하고, 족쇄를 채워 밀실에 가두고 재산을 몰수해 버렸으니, 이는 스스로 만리장성을 무너뜨려버린 것과 같았다.(酋嘗密問曰: “諸子中, 誰可以代我者?” 阿斗曰: “知子莫如父, 誰敢有言?” 酋曰: “第言之。” 阿斗曰: “智勇俱全, 人皆稱道者, 可。”酋曰: “吾知汝意之所在也”, 蓋指洪太主也。貴盈哥聞此, 深銜之, 後阿斗密謂貴盈哥曰: “洪太主與亡可退、阿之巨將欲圖汝。事機在迫, 須備之。”貴盈哥見其父而泣, 酋怪問之, 答以阿斗之言酋, 卽招三子問之, 自言無此。酋責問阿斗以爲交構兩間, 鎖杻囚密室, 籍沒家?, 是自壞其長城也).

위의 기록을 통해 보면 후금의 지도부가 조선 조정에 예를 다한 성의를 보였다. 정충신의 정확한 정보 보고에 따라 외교 전략을 세웠더라면 조선에 악몽의 양대 호란이 있었을까. 정충신이 다리를 놓아 외교적 진척을 보인 그대로 후금과의 관계를 유지했더라면 나중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두고두고 남는다. 정충신은 후금의 군사제도와 군사력도 꿰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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