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황영석(광주전남병무청장)

황영석 광주전남병무청장

우리나라 속담에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라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을 해야 할 때 어떤 어려움과 방해가 있어도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오죽하면 이런 속담이 생겼을까? 난관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마음먹은 일을 추진해 나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물며 법규에 근거를 두고 움직이는 행정에 있어서는 제 아무리 좋은 취지일 지라도 공무원이 법을 제쳐두고 소신에 따라서 일을 처리하는 것은 여러 관점에서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것도 개인의 자유를 일정 부분 제한하면서 의무를 부과하는 병무행정은 어느 행정보다 ‘법대로’의 원칙이 중요하다. 기속행정이라는 행정용어를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병역의무는 법규에 따라서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정확하게 적용되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있다. 행정환경이 급격히 변화하고 사회 곳곳에서 법제도와 현장 간의 간극이 커지는 형국이다 보니, 복잡하고 다양한 상황을 법규에만 짜 맞추기엔 뭔가 부족하다. 현장의 문제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공직자들의 마음가짐과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이런 관점에서 ‘적극행정’이 정부혁신의 새로운 문화로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적극행정이란 ‘공무원이 불합리한 규제의 개선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창의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렇다고 문제 해결만을 염두에 두고 무작정 창의성을 발휘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행정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행해져야하기 때문에 잘못된 결과에 대해서는 의사결정의 책임 부과와 업무과실에 따른 신분 상 조치가 불가피하다.
이런 부담을 덜어내기 위해 적극행정 면책제도를 운영한다. 공직자가 공익을 목적으로 하여 성실하고 적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했는데 그 결과가 잘못되었다면 고의나 중과실을 판단해서 책임을 면제하거나 감하는 제도이다. 적극행정의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한 도구로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여기에 덧붙여 사전컨설팅제도를 운영해서 적극행정을 지원한다. 불합리한 지침·절차 때문에 추진하기 곤란한 업무가 있다면 진행에 앞서 감사부서에 미리 검토를 요청한 다음 적정한 처리방향 등 공식 의견을 듣고 난 후에 업무를 추진하는 방식이다. 공무원이 법규에 얽매이지 않고 편안하게 일할 수 있는 보호 장치가 마련됐다.
반면에 소극행정은 매서운 잣대로 단속하고 엄정하게 처벌한다. 소극행정을 방지하기 위해 수시로 업무처리 실태를 점검하는 한편, 상시 신고센터를 운영해서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노력을 병행한다. 현장에서 뛰는 공직자가 적극행정에 동참하고 실천하게끔 유도하는 수단인 셈이다. 벌칙뿐만 아니라 격려정책도 함께 추진한다. 적극행정 경진대회를 열어 우수사례를 찾아 담당 공무원을 포상하는 행사를 실시한다. 국민으로부터 적극행정을 추천받기도 하고, 부서나 기관의 추천을 받아 우수 사례를 선정하는데 우수 공무원에게는 특별승급 등의 혜택을 부여한다.
멍석을 깔았으니 이제 제대로 장을 담그는 일만 남았다.
‘장을 담그면 벌레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벌레가 무섭다’고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장은 꼭 담가야하기 때문에 벌레가 나온다 한들 누가 뭐라 하겠는가. 걷어내면 그만이다. 그동안 규정이나 절차에 발목을 잡혀 어쩔 수 없이 움츠러드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제는 벌레가 생기면 어쩌나하는 두려움을 떨치고자 한다. 넓은 시야로 일할 수 있는 여건과 분위기를 당당하게 누리고자 한다. 설령 결과가 잘못된다 한들 믿는 구석이 있지 않은가.
앞으로 병무청은 행정편의를 경계하고 새로운 행정문화에 발맞춰 적극행정을 실천해 나갈 것이다. 법규가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을 찾아내어 최선의 해결방법을 고민하고, 과감하게 규제를 혁파해 나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적극행정은 명실공히 정부혁신을 향한 선순환의 출발점으로서 자리매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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