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4부 풍운의 길 1장 인조반정<414>

이괄은 본래 한양에 뿌리박은 양반집 자제였다. 고관대작의 인척과 족척(族戚)이 많은데 반해 정충신은 외로운 무인으로서, 그것도 수천 리 타향에 부모와 친인척을 두고 있는 외로운 사람이다. 홀로서기로 간신히 여기까지 온 몸이다.

그런 그가 이괄과 척을 지면 또하나의 인맥을 잃게 된다. 특히 그를 고변하면 나라의 방위를 위해 군사훈련과 군비확충을 하는 사람을 근거없이 모함했다 하여 친인척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반면에 그를 대변할 사람은 시실상 없다. 그의 버팀목 백사 이항복도 벌써 저 세상 사람이 된 지 오래다. 이러니 자칫 잘못 처신하면 한 순간에 골로 가는 수가 있다. 그가 고민하고 있는데 부인이 나섰다.

“왜 그리 걱정하십니까. 영변 병방에겐 곧 뒤따라 가겠다고 하고 샛길로 군사를 끌고 순천(順川)에 당도해서 매복했다가 그 자가 지나가는 뒤를 밟아 영감은 평양으로 가서 성 밖에 군사를 머무르게 한 다음 장만 도원수를 만나면 되지 않습니까. 말린 사슴고기 두어 궤짝 있으니 이것을 가지고 장만 도원수에게 인사를 올리면 반가워할지언정 의심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래도 근무지를 이탈해 이괄 부원수 문제로 왔다고 할 적시면 좋아하실까?”

“영감, 안만나주면 그만이고, 사슴 육포는 군사들에게 나눠주면 인심좋은 지휘관이란 칭송을 받지 않겠습니까. 고기는 혼자 먹으려고 장만한 것이 아니라 다함께 나누자고 장만한 것이옵니다. 이런 때 요긴하게 쓰십시오. 장만 도원수의 병 구완에 이것처럼 좋은 것이 없습니다. 녹용도 두어궤짝 있나이다. 이것도 가지고 가시오. 지금 온 영변 좌병방은 무예가 출중합니까?”

“장사요. 힘으로 발신(發身)한 사람을 좌병방으로 쓰는 법이오.”

“그러면 더 좋지요. 장사의 힘을 빼는 데는 여인의 몸이 최고지요. 기방에 데려다가 며칠 묵혀두면 몸이 식초처럼 흐느적거릴 것입니다. 잘 대접해서 보내시오. 대접해서 보내면 사나이가 고마워하지 나쁜 짓은 안합니다.”

정충신은 갑주(甲?:갑옷과 투구)를 갖춰 입고, 좌우에 우후와 비장을 세우고, 등촉(燈燭: 호롱에 싸인 등불과 촛불)을 밝힌 동헌으로 나갔다. 그 사이 병방이 영변 좌병방에게 가서 병부를 맞추었다.

영변 좌병방이 엄숙한 절차와 군율이 시퍼런 휘하 장령(將領)이 도열한 광경을 보고 쫄더니 목을 움추렸다. 그로서는 일만이천 여 군사들과 함께 한 이괄의 최측근 고급 군교로서 안주 방어군 정도는 우습게 보았는데, 군율과 절도에서 오히려 영변 군사들을 압도하는 것이다. 그는 이괄 부원수로부터 정충신을 만나거든 반란 참가 여부를 묻고, 거부하면 그 자리에서 때려죽이든지 척살(刺殺)하라는 명을 받았는데, 너무도 당차고 엄하게 군사를 지휘하니 쫄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장수로다!”

영변 좌병방은 헷갈렸다. 정충신의 한 점 흐트러짐 없는 늠름한 자세가 좌충우돌 성격인 이괄 장수보다 인물이 훨씬 뛰어나보였다. 두 사람이 뒤바뀌었다면? 그러면 혁명이 물샐틈없이 진행될텐데... 그는 아쉬운 마음으로 정충신에게 허리를 구부려 최대한 군례를 다했다.

“먼 길을 오시느라 수고하셨소. 군령장이 무엇이오?”

“네. 군령장에 관해서는 별도로 긴히 조용히 말씀 올리겠습니다.”

“밀령(密令)이오?”

영변 좌병방이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워낙 비밀을 요하는지라...”

“그러면 자리를 따로 마련하겠소.”

군례를 마친 다음 정충신은 기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칼을 찬 장사 둘을 병풍 뒤에 배치했다. 잔치상이 근사하게 차려졌다.

“어서 드시오.”

“장군, 밀령부터 전하겠습니다. 군 작전상 급한 일이 발생했으니 속히 군사를 이끌고 영변에 대령하랍신다는 분부이옵니다.”

그리고 영변 좌병방이 이괄의 수결(手決)과 목침만한 붉은 도장, 그리고 검은 관자(關子)가 찍혀있는 군령장을 정충신 앞에 내밀었다.

“고생하셨소. 우선 노고를 풀어야 하지요.”

정충신은 기생 둘을 불러 좌병방에게 붙였다. 그는 곤죽이 되도록 술을 마시고 기방에 갇혀 며칠 뻗어 지냈다.

하루면 돌아와야 할 좌병방이 돌아오지 않자 이괄은 당장 탈이 났다고 여기고 직접 정예병을 이끌고 안주로 말을 달렸다. 어떤 누구보다 정충신을 끌어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는 도중 아들 전(銓)도 만날 요량이었다. 전은 박천 군기지에 주둔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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