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공간, 숨을 불어넣다 (하)
통폐합 학교 체육관을 책 문화공간으로
‘지혜의 바다’ 하루 5천명 방문 지역 ‘랜드마크’
추억·문화 공존 창동예술촌 “거리가 모두 예술”
폐공장 활용 부산 F1963, 도심 ‘핫플레이스’ 각광
폐교, 창고, 상업시설 등 인구감소로 없어지거나 버려진 지역 유휴시설이 해마다 늘어나면서 이를 낙후된 도심을 재활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한 사례가 주목을 받고 있다. 철거가 아닌 보존과 활용의 방식으로 잊혔던 공간을 지역의 주요 문화거점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8월 28일부터 30일까지 한국언론진흥재단 광주지사가 주관한 ‘오래된 공간, 지역 명소로 귀환하다’ 연수프로그램에 참가했다. 광주와 전북, 창원 부산 등의 현장을 방문해 살펴본 우수 사례와 운영 방향에 대해 두 차례 소개한다.

◇창원 지혜의 바다

지혜의 바다는 2016년 구암중과 구암여중이 통합되면서 구암중의 체육관을 리모델링해 도서관으로 조성됐다. 2,666㎡(806평)의 면적에 2층 규모의 건물에는 기증 도서 4만여 권을 포함해 약 10만 권의 도서가 비치돼 있다. 지혜의 바다는 복합문화시설임에도 도서관의 역할을 잃지 않는 다는 점에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1층 로비에 들어서면 바다의 물결의 형태를 띠는 책장이 자리한다. 중앙을 가로질러 왼편으로 가면 매월 테마 전시가 열리는 ‘전시서가’가 운영되고 있다. 현관과 마주 보는 구암홀은 주차장 입구의 경사를 그대로 살려 크고 작은 강연과 공연이 이뤄지는 시청각실로 꾸몄다. 양쪽에 위치한 7개의 테마별 체험공간은 동화방, 레고방, 보드방, 상상창작방, 웹툰방, 힐링방, 더채움방 등 독서는 물론 놀이를 즐기고, 직업 탐방까지 가능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창원 지혜의 바다는 구암중의 체육관을 리모델링해 도서관으로 조성해 2018년 4월 개관했다. 1층 로비의 물결형태를 띠고 있는 책장의 모습. /한아리 기자 har@namdonews.com
지헤의 바다 2층 전경

진정한 면모는 2층에서 드러난다.

계단을 올라 유리문을 지나치면 높은 층고의 벽면이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과 마주한다. 이곳 역시 공간마다 역할이 구분돼 있다. 벌집 형태의 가족 독서 공간인 꿈다락방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정중앙에 자리해 30인이 동시에 앉을 수 있는 열람 테이블은 물론 10여 개의 빈백이 놓여있는 지혜마루는 오롯이 책에 집중 할 수 있는 편안함을 준다.

주말에는 시민들의 발길이 오가고 평일에는 기관이나 어린이집의 단체방문이 주를 이룬다. 설립 초기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한 탓에 관람객 동원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개관 1년 만에 누적 방문객 176명을 달성했다. 일평균 5천500여 명이 꾸준히 찾는 등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으며 오는 11월 김해지역 지혜의 바다가 개관을 앞두고 있다.

 

창동예술촌은 지난 2012년 5월 창원시가 추진한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됐다. 사진은 창동예술촌의 입구.
◇창동예술촌

창동 예술촌은 ‘창동의 거리는 모두가 예술이다’라는 말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옛 마산 원도심(창동·오동동권역)의 잃어버린 상권기능 회복과 지역예술의 활성화를 위해 창원시가 추진한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2012년 5월에 조성됐다. 현재 60여 개의 점포가 예술촌으로 구성돼 있으며 현재 공모를 통해 선정된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입주한 55개소, 공용공간 5개소로 구분돼 있다.

창동예술촌 골목의 벽화

이곳은 크게 문신예술·마산예술 흔적·에꼴 드 창동의 3가지 테마로 구성됐다. 상상길 입구를 따라 걷다 보면 가장 먼저 에꼴 드 창동골목에 들어선다. 에꼴 드 창동은 입주작가들의 공방과 관련 상점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유리창 넘어 보이는 저마다 다른 개성을 지난 작품들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마산예술 흔적 골목을 만난다. 마산예술 흔적 골목은 골목 곳곳의 벽화와 오래된 점포가 예술가들의 공간과 조화를 이룬다. 과거 1960~70년대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던 마산의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문신예술 골목.

상상길 가장 끄트머리에는 마산의 대표조각가 문신을 재조명한 공간인 문신예술 골목이 조성됐다. 문신은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한 추상 조각의 거장이다. 문신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은 붉은색 아치형 조형물을 지나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문신 선생의 자화상이 자리한다. 골목 곳곳에 문신 선생을 재조명한 관련 체험과 아트 공간, 테마상가를 만나 볼 수 있다. 오랜 기간 이곳을 지킨 상가를 구경하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다. 문신예술 골목을 등지고 걸어 나오면 우리나라 최초의 서점인 학문당을 마주한다. 학문당은 1955년 개업해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창동의 중심을 지키며 만남의 장소로 사랑받아온 서점이다.

 

 

 

 

 

 

부산 F1963은 고려제강이 와이어로프 공장을 활용해 복합문화시설로 조성했다.

 

 

F1963 전경

◇부산 F1963

1963년 세워져 45년간 와이어로프를 생산하던 공장은 가동을 멈추고 설비가 이전되며 폐공장으로 전락했다. 이후 잊혔던 공장은 2016년 부산비엔날레 전시장으로 활용되면서 새롭게 변모했다. 고려제강은 9,900㎡(3천평) 면적의 공장 용지를 공장 형태나 골조 등을 그대로 살려 탈바꿈시켰다. 옛 공장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바닥은 자연과 어우러져 조경석과 디딤돌로 재탄생했다. 공장 지붕을 받치던 나무 트러스는 방문객이 편히 쉴 수 있는 벤치로 새롭게 태어났다.

폐공장은 Factory의 F, 설립연도인 1963을 합쳐 F1963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으며 복합문화시설로 자리 잡았다. 현재는 그야말로 부산의 ‘핫 플레이스’다.

맹종죽 숲, ‘소리길’

철로 된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도심의 숲이자 힐링 공간인 맹종죽 숲, ‘소리길’이 펼쳐진다. 숲 가운데 발을 내딛는 형형색색의 바닥부터 공장바닥의 콘크리트를 잘라 배치했다. 메인 전시관인 석촌홀은 천장의 목재와 공장 특유의 질감을 지닌 벽 등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전시장과 공연장으로 동시에 활용이 공간은 회화와 설치미술, 미디어 미술 등 굵직한 전시가 개최되며 공연이 열릴 때면 5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사랑받는 공간은 카페 ‘테라로사’다. 입구에 들어서면 손몽주 작가의 와이어를 이용한 설치 작품을 시작으로, 기존 공장의 오래된 철판으로 되살린 커피바와 테이블, 당시 사용하던 발전기와 와이어를 감던 보빈이 눈에 띈다.
/한아리 기자 har@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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