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48)

제4부 풍운의 길 3장 안현전투(448)

백성들이 궁궐 앞에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나라의 곳간을 푸니 백성들이 자루로 쌀을 퍼담아갔다. 모인 사람들에게 이괄이 “새 왕이 등극했다”고 알렸다. 새 왕이 쌀을 푸는 것이라고 했다. 경복궁 앞 영채에 포진한 군사들은 주먹밥과 따뜻한 국물을 끓여서 백성들에게 먹였다. 백성들은 새 세상이 왔다고 들떴다.

이괄이 영채 앞 대장대에 올라 긴 칼을 빼어 허공을 두어번 가른 뒤 바닥에 짚고 군사와 백성들을 향해 외쳤다.

“조선 천지의 백성들은 들으라. 금방 신왕께서 등극하시었다. 신왕께 충성을 맹세하라. 모든 관아의 벼슬아치는 제 자리에서 제 소임을 다할 것이며, 의금부나 포도청에 갇힌 수인(囚人)은 모두 석방 방면할 것이니, 새 나라에서 새 사람이 되어서 새로운 세상을 맛보기를 바라는 바이다.”

그는 즉시 군졸들을 의금부와 포도청으로 보냈다.

이괄은 새 왕의 이름을 말하지는 않았다. 인성군 공이 왕으로는 적임자인데, 그가 자취를 감춰버렸으니 꿩 대신 닭이라고 신성군을 내세우긴 했지만 공만 나타나면 재빨리 인물 교체를 할 생각이었던 이괄이 군중을 향해 다시 외쳤다.

“이번 의거와 신왕 등극은 만 백성의 원한과 핍박과 고통을 풀게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지, 누구누구의 사사로운 욕심에서 나서 저지를 일이 아님을 알기를 바라는 바이다. 금방 임명된 영상 이괄은 긴히 말하노니, 이괄은 신왕을 받들지만 백성의 기반 위에서 정사를 펴나갈 것인즉 군사들과 백성들은 한치의 오해가 없이 새 조정에 충성할 것을 명령한다!”

어느새 정의군이 된 반란군이 각기 무기를 하늘로 쳐올리며 “천세천세만천세”를 외치고, 와-, 함성으로 응답했다. 백성들도 주먹밥을 먹다 말고, 혹은 국물을 마시다 말고, 또 혹은 쌀자루를 등에 지다 말고 일제히 따라서 함성을 질렀다. 한양은 완전히 축제가 된 분위기였다.

막료장 이충길이 불같이 달려와 이괄의 앞에서 오른쪽 무릎을 세우고 왼쪽 무릎을 꿇은 채 두손으로 땅바닥을 짚으면서 우렁찬 목소리로 보고했다.

“합하,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는 영의정에게 쓰이는 칭호를 어느새 사용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정충신 도당이 안현고개와 백련산, 인왕산, 세검정에 쫙 깔렸습니다.”

“그래서?”

이괄이 껄껄껄 웃으면서 다시 물었다.

“그중 주력은 어디에 있느냐.”

“안현고개 있습니다.”

“무악재 방향이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것들, 한 볼테기 감이나 되겠느냐. 오합지졸이 모여서 비르적거리고 여기까지 온 놈들인데, 거지 밥 한술 떠서 보내는 심정으로 맞이하자꾸나.”

“아닙니다. 밥얻어 먹을 처지가 아닙니다. 벌써 그들은 군량을 한달 분 이상 확보했습니다. 국창에서 수레 스무 대를 동원해서 군량을 빼갔습니다.”

“왜 그것을 막지 못했느냐.”

이괄이 긴장했다. 적이 배불리 먹으면 용을 쓰게 되어있다. 그래서 적진을 쓸어버릴 때는 식량이 나올 근거지를 없애기 위해 집과 창고들을 모두 소각하지 않던가.

“모두둘 나라 세우는 일에 들떠있었습니다. 축제 분위기에 젖어서 모두 직무를 방기했나이다.”

그점 이괄이 더 즐겼던 처지였다. 중군장 하나가 나타났다.

“이괄 합하, 후속 인사를 언제 내리시겠습니까. 군사들의 동요가 있습니다.”

모두들 개국공신록에 올라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이괄은 그것으로 난을 일으킨 사람이다. 공훈을 줄 때 객관성과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아 사달이 난 것이다. 이것 때문에 난리가 난 것이 아닌가. 그런 전차로 이괄은 대신들의 임명을 일단 유보했던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불평과 불만, 잡음이 나고, 조정의 질서와 법도를 파괴하게 된다. “과거령을 발표할 것이다. 새 임금이 들어섰으니 새 정부에 봉사할 인재를 널리 구하겠다.”

이괄은 일단 이렇게 인사 문제를 유보했다. 바로 발밑에 호랑이가 들어와있는 것을 모르고 그는 한껏 늘어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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