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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식 남도일보 상무의 섬 이야기-느림의 섬 '청산도'의 가을을 느끼다

남도 섬 이야기
느림의 섬 ‘청산도’의 가을을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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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범바위 - 좌측 수평선 위로 한라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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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왈츠 드라마세트장 가는길 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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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상서돌담마을.

애기단풍은 부끄러워 홍조를 띄우는데, 은행잎은 힘에 겨운 듯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어느새 가을이 너무 가까이에 와버린 11월 중순 ‘청산도’로 섬여행을 떠난다.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나 이미 떠났다고 대답하라.
기나긴 죽음의 시절
꿈도 없이 누웠다가
이 새벽 안개속에
떠났다고 대답하라.』

양성우 시인의 싯구를 ‘안치환(노찾사)’이 곡을 붙여 노래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던 80년대, 불행하고 어두운 현실을 벗어나야 한다는 결의로 목청껏 불렀었다. 그 당시 청산(靑山)은 밝음과 희망의 메시지였다.

‘살어리 살어리 랏다 청산에 살어리 랏다’(청산별곡)처럼 ‘청산’은 염증이 난 세상을 등지고 떠나고 싶은 삶의 피난처(안식처)로서 인식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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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항.

# 가을 청산도를 가다

‘산과 물이 푸르다’ 하여 붙여진 ‘청산도(靑山島) 이지만 내 마음속의 청산(靑山)은 언제나 떠나고 싶은 밝음과 희망의 세계다. 남도섬사랑 11월 섬 여행은 예로부터 신선이 산다하여 선산도(仙山島)라고 불려진 ‘청산도’의 가을이었다.

완도항에서 동남쪽으로 20Km 남짓 배편으로 50여분을 가다 보면 ‘느림의 섬 청산도’를 만날 수 있다. 배추가 얼지 않는 따뜻한 곳이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단풍이 가장 늦게 온다는 곳이다. 완도항에선 늦가을 싸늘한 찬기운 감돌더니 ‘퀸 청산호’ 갑판에선 따사로움이 가득하다. 가을엔 처음 찾는 청산도에 또 다른 기대감을 갖게 한다. ‘퀸 청산호’는 달팽이 상징석이 눈에 확 들어오는 청산항으로 곧바로 직행한다.

‘느림과 여유로움으로 삶의 쉼표가 되는 섬’. 2007년 신안증도, 장흥유치, 담양창평 등과 함께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에 지정되면서 붙여진 듯하다. 아마도 그때부터 유명세를 탔으리라.

이전의 청산도 여정에서는 1박을 했던 터라 여러 곳을 서서히 둘러볼 수 있었다. 청산도에서 제일 높다는 매봉산(384m)도 오르고 멋진 해안 경관과 몽돌의 장기미 해변도 힘들게 내려가 보았다. 영화 셋트장을 지나 화랑포 전망대로 돌아가는 멋들어진 해안사랑길 트레킹 코스도 서서히 걸어보았는데 오늘은 스쳐 지나가기도 힘들 듯하다.

비록 인구는 2천 350여명에 불과하지만 하루에 섬을 둘러보기엔 쉽지 않은 넓이, 여의도 5배정도로 큰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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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항과 독살 - 밀물에 들어 온 고기를 썰물에 나가지 못하도록 돌담으로 가두어 잡는 전통 고기잡이 방법이 독살이다.

# 맛보기 청산도 여행

섬사랑 회원 50여명이 함께 움직이는 당일 코스로 청산도 맛보기 여행을 즐길 수밖에 없다.섬에서 운영하는 버스에 분승하여 문화해설사의 청산도 사투리로 풀어내는 구수한 이야기와 함께 색다른 여행의 묘미를 즐기게 되었다. 어찌 보면 느림의 섬을 빠르게 움직이며 느껴야 하는 역설에 갇힌 듯 했다.


청산도항에서 출발한 버스는 지리해수욕장과 그 앞 대규모 아파트 단지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전복양식장, 수백년된 소나무 방풍림 숲을 지나서 42,195km 단풍길에 접어들었다. 청산도 여인네들이 가을이면 단풍 구경하러 육지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었다는 단풍길은 마라톤 코스에 맞춰 빼곡히 단풍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따뜻한 이곳의 단풍은 더 기다려야 제멋일 것 같다.

갯돌속에 비친 바닷물이 가슴속까지 시원한 느낌의 진산리 갯돌해변에서 온몸으로 따스한 햇살에 취해본다. 커다란 ‘해 뜨는 마을’ 표지석과 바로 앞 앙증맞은 노적섬이 인상 깊다. 물 빠진 모래밭이 환상적으로 보이는 신흥리 해수욕장, 1박2일 촬영지로 더 알려진 곳이지만 창밖으로나마 감상하며 지나갈 수밖에 없다.

청산도에서 가장먼저 사람이 정착했다는 매봉산 자락의 상서 돌담마을. 바람이 많은 섬지방의 환경에 적합한 축성형식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어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다.

담장 위의 넝쿨, 대문 안에 비친 마당의 풍경 등이 포근한 정취를 더하고 멋스럼을 주고 있다. 느린 섬 체험학교, 세계 중요 농업유산으로 지정된 구들장 논을 지나 범바위 가는 좁은 길을 버스는 곡예 하듯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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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초분.

# 한라산은 지척에, 서편제는 추억이...

자기장을 품어내서 나침반을 멈추게 한다는 범바위. 기(氣)를 받고 소원성취 위해 청산도를 찾는 대부분의 관광객이 방문한다. 범의 웅크린 모습 갖기도 하고, 바람이 불면 바위틈에서 범의 울음소리가 난다고 한다. 오늘은 바람 한 점 없고 쾌청하여 범의 울음소리는 듣지 못하지만 남쪽으로 눈 덮인 한라산 정상이 잡힐 듯 들어온다. 여서도를 눈앞에 두고 동쪽으로 멀리 거문도가 기다랗게 누워 반긴다. 잠시 휴게공간에서 완도 고금댁(?)이 준비한 삼치에 막걸리 한잔의 여유로움은 범바위에서 흘러나오는 자기장과 음이온이 주는 활력과 생기를 배가시켜 주기에 딱이었다. 예전엔 청산도가 삼치와 고등어가 워낙 많이 잡혀 지금도 안통길에는 ‘파시 문화’ 거리가 있다고 한다.

‘청산도’ 하면 서편제와 유채꽃이다. 임권택 감독의 떠돌이 소리꾼들의 이야기 ‘서편제’(1993년)에서 국악인 오정해의 ‘진도아리랑’과 북치며 노래하며 걸어가는 배경의 앙증맞은 청산도 돌담길은 한(恨)과 애잔함을 그대로 전달했다. 청산도의 상징처럼 언덕위에 서있는 ‘봄의 왈츠’ 세트장은 주변 유채꽃은 없지만 마을을 내려다보며 멋스럽게 서있다.

유채꽃밭은 이제 파종을 끝내고 가을햇살 받으며 내년 봄을 준비하고 있다. 들녘의 구절초, 산국, 백일홍, 천수국의 향기가 봄의 유채와 청보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 청산도는 쉼표다.

코스모스도, 유채도 없다. 가을 단풍도 아직 오지 않은 늦가을 청산여행이지만 가을걷이 후에 느끼는 여유와 ‘쉼표’였다. 비움을 통한 또 다른 채움의 여정이었다.

서편제 주막 할머니의 투박함에서, ‘청산수산’ 사장님의 후덕함에서, 문화해설사의 구수함에서, 고금댁의 수고로움까지 더하여 선상에서 맞이한 황홀한 일몰의 여운만큼이나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멀리 소안도에 걸린 해가 방긋 웃는다. 마음 따뜻한 가을 여행입니다.

“스트레스 근심 등이 있다면 이곳에서 청산(淸算)하고 가시라” 는 문화해설사의 마지막 인사말에 절로 박수가 보내진다. 멀리 있는 친구도 보고 싶고, 한껏 고독함에도 취해보고 싶은 가을인데 이젠 금방이라도 내 곁을 떠나버릴 것 같다.

글/정용식 상무 msk@namdonews.com 사진/남도섬사랑 김미정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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