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아. 괜찮니?’

임성화(광주서구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장)

“언니가 네 몫까지 열심히 살게”

설리와 절친인 구하라가 설리를 추모는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고백했던 말이었다. 지켜보던 팬들도 남아있는 그녀를 응원했지만 그녀 역시 부풀어 오를대로 오른 ‘힘겨운 몫’을 덩그러니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 버렸다. 설리가 세상을 떠난지 딱 41일이 지난 날이다.

떨어지기에는 너무 이른 봄 벚꽃 같은 귀한 청년들의 비보가 청소년을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구하라는 광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어쩌면 한번쯤 스쳐지나 갔을지 모르는 우리 주변의 한 ‘이웃’이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일까? 2019년 11월 말의 찾아온 이른 겨울은 유난히 춥고, 유난히 허전하다. 무엇이 41일전 “네 몫까지 열심히 살게”라는 구하라의 결심을 꺽이게 만들고, 죽음까지 이르게 했는가?

구하라는 생전 해어진 남자친구 최종범과의 법적 다툼과 악플로 인해 괴로움을 호소해왔다.

전 남자친구인 최종범은 구하라의 신체 일부를 불법 촬영하고, 같은 해 9월 성관계 동영상을 언론에 제보 및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는 등 사이버 성폭력을 저질렀다. 이 과정에서 악플러들은 오히려 피해자인 구하라에게 모욕적인 악플을 쏟아내고 ‘구하라 불법촬영 동영상’을 충혈된 눈으로 수소문하는 무차별 2차 가해를 했다.

‘공정과 정의’로 상징되어지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 사법부의 판단은 폭행과 불법 촬영한 동영상을 통한 협박 혐의 재판에서 최종범에게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으로 실형을 면하게 했다. 그 중 불법 촬영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촬영에 동의했다고 할 수 없으나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찍은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재판부의 견해인데, ‘동의하지는 않았으나 불법은 아니다?’라는 재판부의 법리적인 해석은 개인적으로 모순이 있어 보인다.

그 때문일까? 구하라가 사망한 이후 가해자 중심적인 성범죄 양향기준을 재정비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서명자는 순식간에 238,000명을 넘어섰다. 대한민국은 공정한가? 대한민국은 공감하는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공평하고 올바름’이 ‘공정’이라면, 이러한 공정함 또한 양쪽에 대한 균형있는 공감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공감없는 공정은 날카롭고, 사나울 뿐만 아니라 자칫 방관자로 전락되기 쉽겠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연이은 두 청춘에 대한 작별을 경험하며 직접적인 가해자는 최종범과 악플러이지만, 심리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상황을 경기 관전하듯 하고, 스스로 이겨내게끔 방관한 공감없는 나와 당신, 우리 사회의 책임은 없는 것일까. 과연 자유로울 수 있는가.

여기저기 흩날리는 수분없는 가을 낙엽처럼 공감은 메말라가고, 소중한 생명은 추풍 낙엽과 같이 연일 떨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여전히 자살율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갖고 있다. 한참 꿈을 먹고 자라야 할 ‘아동청소년’의 경우는 어떠한가. 사망원인 1위가 교통사고가 아닌 바로 자살이다.

통계청에 보고된 광주광역시 연도별 자살관련 추이(2015-2018) 또한,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가 ‘15년 313명, ’16년 339명, ‘17년 329명, ’18년 373명으로 2015년 인구 10만명 기준 21.4% 였던 자살율이 2018년 25.7%로 증가하였다.

올해 11월 26일 개최되었던 국회자살예방포럼 조사 발표에 따르면, 이러한 자살율 증가에도 지방자치단체에서 자살 예방을 위해 꾸린 예산이 전체의 0.016%에 그친다고 하니, 자살을 사회적인 문제가 아닌 여전히 개인적인 문제로 터부시 되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자살 예방조직 또한 전체 지자체 중 겨우 54.6%(125곳)만 설치, 그나마 외부에 자살예방센터를 둔 지자체는 전체 229곳 중 30곳(12%)이다. 내부와 외부 모두 관련 조직이 없는 지자체는 5곳으로, 그 중 영암군도 포함되어 있다.

외부 센터 직원은 평균 5.6명이 근무, 그 마저도 정규직(2.83명)보다 비정규직(3.22명) 비율이 높아 경험이 축적된 역량있는 전문가가 오랫동안 일할 수 없는 구조여서 개선과 지원이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자살이 어떠한 경우도 미화되거나 정당화되어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죽음이 ‘자살인가? 사회적 타살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대답하고 또 응답해야 한다.

2019년 가을의 끝자락, 더 매서운 겨울이 우리에게 이르기 전 우리 주변의 마음들을 한번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남편의 마음, 아내의 마음, 자녀의 마음, 함께 일하는 직원의 마음, 타인과 나의 마음. 마음과 마음이 공감이라는 레일로 연결될 때 우리는 살아갈 희망을 선물로 얻는다. 문득, 당신의 마음이 궁금해진다.

“마음아. 괜찮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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