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73)

제4부 풍운의 길 4장 대수장군(473)

왕이 잠시 상을 찌푸렸다. 이것저것 생각하니 난감한 모양이다. 기익헌에 대해서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진 것이다. 기익헌은 한때 이괄의 오른팔이었지만 이괄의 목을 가져온 사람이다. 그것은 전쟁을 결정적으로 끝낸 역할을 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그는 이문빈(李文賓)의 사위다. 이문빈은 서얼 출신의 신분의 위계보다 능력에 따라 인물을 발탁한 광해군 시절 동지중추부사에 제수된 인물이고, 이때 인조는 왕자 시절 그와 그 사위 기익헌과 친하게 지냈다.

“기익헌의 공도 있지 않는가. 적장 목을 가져왔다면...”

정충신이 펄쩍 뛰었다.

“이괄의 반란 때 휘하 장수로 가담해놓고 관군에게 패하여 불리해지자 이수백과 함께 이괄·한명련의 목을 베어 가져왔다면 비겁한 자입니다. 그런 자를 막료장으로 두었으니 패했고요.”

정충신이 반대하자 왕은 벌써 그를 용서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난을 조기에 끝낸 공적이 기익헌에게도 분명 있다고 본 것이다.

조정에서는 이괄의 목을 가져온 자를 포상하자, 반란에 적극 참여했으므로 처형해야 한다는 논의로 시끄러웠으나 왕은 기익헌을 감쪽같이 전라도 진도군수로 발령을 냈다. 그에게는 정당성의 유무, 능력의 유무가 의미가 없었다. 오직 기준은 자신과의 친소 관계였다. 그러니 피아 구분도 없었다. 그저 적당히 유약하면서 적당히 무능한 것이다.

그는 화제를 돌릴 양으로 이렇게 말했다.

“진실로 이번 승리의 수훈갑은 누구인가. 정충신 장수가 직접 말해보게.”

“군사는 세력인지라 세를 잃게 되면 패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안현전투의 수훈갑은 막강한 군세를 보여준 전라도 군졸들입니다. 그들이 합류한 덕분에 승전에 힘이 되었나이다.”

왕이 영의정 이원익과 우의정 신흠, 좌찬성 이귀, 도원수 장만을 불렀다. 과연 정충신의 말이 맞는지 정충신 면전에서 살펴볼 요량이었다.

“이괄의 난을 평정한 군사가 전라도 군사라는데 맞는가?”

“전라도 응원군이 합세하여 마침내 한양을 수복하였으니 이는 행주성 싸움의 연속이며, 정충신의 계략이옵니다. 정 장수가 고향 군사들을 불러들여 십분 쓰임새있게 사용했습니다.”

“그렇다면 정충신이 안현전투의 원훈이라고 해도 이의가 없겠는가?”

이원익과 장만이 동시에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하고 동의했다. 그러나 정충신이 펄쩍 뛰었다.

“마마, 원훈은 도원수이옵니다. 신은 아닙니다. 또 굳이 공로라면 평산부의 백성들입니다. 행군 중에 평산의 능촌(陵村)에 이르렀을 때, 역적 이괄이 고을의 인사에게 콩 닷 섬과 미곡 스무 섬을 징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 인사는 역적을 도울 수 없다고 거부했는데 괄이 즉석에서 목을 베었다고 합니다. 반면에 신의 부하들이 이르자 고깃국을 끓이고, 쌀밥을 제공했나이다. 공으로 말하면 그들이 팔할이고, 신은 이할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녹훈을 내려야 한다는 것인가? 뭘로 내린다는 말인가.”

“선정을 내리면 됩니다. 그들은 어떤 무엇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이 피폐해해진 그들을 위로하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되고, 용기가 되고, 희망이 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그대의 말을 들으니 진정으로 원훈은 그대 같은데?”“제발 원훈이란 말씀은 거두어 주십시오. 내리신다면 도원수 어른께 드려야 합니다.”

“말도 안되는 발언이오이다. 정 공이오이다.”

도원수 장만이 펄쩍 뛰었다. 그러자 왕이 제지하듯 말했다.

“가만히들 있어요. 전에는 논공행상에서 서로 자리를 다투더니 이번에는 서로 양보하고 있군. 그게 나라의 홍복이지 무엇이겠는가. 허면 내 뜻이 있으니 따라주시오.”

왕은 장만 도원수를 원훈으로 해야 한다는 정충신의 간청을 물리치고, 장만 정충신 남이흥 세 사람을 일등공신으로 책봉한다고 발표했다. 왕은 일등공신 세 사람의 화상(?像)을 그려 기린각에 걸어놓고 공훈을 찬양하고 후세에 기념하라고 명했다.

1624년 3월 2일 정충신은 왕명과 공신도감의 결정에 따라 금남군에 봉해졌는데, 그해 7월 15일 왕이 친히 정헌대부 품수를 주며 교서를 내렸다. 그는 마침내 정헌대부 금남군에 봉해진 것이다. 이것이 지금의 광주 중심 도로인 금남로의 유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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