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행복한 사회를 만든다.

양성관(동강대학교 교수)

얼마 전 우리나라를 온통 갈등의 도가니로 몰고 간 사건이 있었다. 전 법무부장관과 그의 가족관련 사건이 온통 뉴스 매체에 연일 화제였고, 온 국민이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자신들의 주장만을 강하게 내 세우며 장관을 지지하는 측과 반대 측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한 주장으로 대립했었다. 결국 이러한 갈등의 대립은 장관의 사표로 마무리되었지만 아직도 그 여진은 남아있다. 촛불로 세워진 문재인정부에서 왜 이 사건으로 온 국민이 다시 촛불을 들고 전 국민적 갈등이 되었을까? 여러 가지 관점에서 문제를 분석할 수 있겠지만 필자는 대립의 양측 모두에게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의 부족’이라고 진단하고 싶다.

최근 우리나라는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하는 마음’이 사회 전반의 기류에 흘러 도덕적 근간이 무너지고 빈부의 격차가 벌어지며 세대 간의 갈등이 심화되어 갈수록 살아가기 힘든 구조로 변화되고 있는 것 같다. 지금보다 훨씬 못 살았던 40~50년 전에는 이처럼 빈부의 격차가 크지 않아, 비록 경제적으로는 힘들더라도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열심히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미래가 보였기에 국민들은 희망을 갖고 피땀 흘려 땅을 파고, 밤 새워 공장에서 일했으며, 목이 쉬도록 거리에서 장사를 하며 꿈을 키워갔다.

그러나 지금은 땅을 파거나 공장에서 밤을 새워도, 목이 쉬도록 거리에서 장사를 해서 돈을 벌어도 평생 내 집 마련은 꿈을 꿀 수 없다. 온통 사회가 거꾸로 가고 있다. 나이 든 노인이 운전을 잘 못하면 외제차 몰고 나타난 20,30대 젊은이가 노인의 멱살을 잡고 ‘운전 조심하라’고 삿대질을 하기도 한다. 힘없는 일반 서민들은 죄가 없어도 20~30년간 옥살이를 하지만,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들은 수백억 원의 세금을 내지 않고도 잘 살고 있는 사회가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어찌하여 대한민국이 이 지경이 되었을까? 이 모든 것들이 나만 잘 살겠다는, 내 가족만 잘 되면 된다는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우리 사회는 곳곳에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하는 현상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나타나고 있다. 자가용 뒤에 ‘까칠한 내 새끼 타고 있다’는 문구에는 ‘내 새끼 보호해야 하니 운전 조심하시오’라는 의미로 느껴진다. 지하철이나 버스, 식당에서 뛰어 다니는 어린아이들을 통제하지 않는 젊은 부모들은 ‘내 자식 귀하니 뛰어놀게 놔두시오’라는 생각일까? 도로 모퉁이에 차를 세워놓는 사람들은 ‘내 차 치고 갈 테면 가보시오’하는 배짱일까? 아파트 화장실이나 베란다에서 담배피우는 사람들은 그 담배 냄새를 맡는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이처럼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하는 모습들이 사회 곳곳의 저변에 무감각한 상태로 무디어져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좀 더 큰,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배려하지 않는 두 가지 문제는 부동산 투기와, 정치인들의 대립이라고 생각한다. 현 정부 들어서 부동산 정책이 발표되기만 하면 곧바로 아파트 가격이 상승을 거듭하고 있다. ‘자고나면 1~2억 오르는 아파트 가격’이라는 신문기사는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신과 실패, 더 나아가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나만 잘 살겠다’는 부도덕적 사회의 최고조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가끔 장성 축령산으로 등산을 간다. 축령산에 편백나무를 심은 임종국님의 수목장이 있고 이를 지키는 2그루의 떡갈나무가 있는데, 두 나무는 상대방 나무에게는 가지를 벋지 않고 서로의 반대를 향해서 가지를 벋고 있다. 선거법,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법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묶여 20대 국회는 또다시 여야 간에 상대방 탓을 하며 역대 최소 법안 처리 기록을 세우고 있다.

배려는 공존의 법칙이다. 배려는 서로가 잘 살아가는 최고의 방법이다. 금년도 벌써 12월이다. 한 해의 끝자락을 배려하며 베풀며 보내자. 상대방을 배려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우리사회 곳곳에 흘러넘쳐 훈훈한 연말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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