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88)

5부 정묘호란 1장 다시 백척간두에서 (488)

살을 에는 듯한 강추위가 서북 지방에 매섭게 몰아닥치고 있었다. 이런 때 오랑캐의 침입이 잦다. 그들은 본래 추위에 강한 종족인데다, 늑대가죽, 사슴가죽, 표범털로 몸을 감싸고, 여우 목도리, 개털모자로 무장했으니 추위를 거뜬히 이겨냈다.

평안병사(平安兵使) 겸 영변대도호부사 정충신은 현지 부임하자마자 군졸들과 근처 백성들을 동원해 성을 축성하고 있었다. 적이 호시탐탐 노릴수록 군사들을 이끌어 만반의 방어대책을 세워야 했다. 군사와 백성들이 매서운 칼바람을 무릅쓰고 성을 축조하고 있는데 장수로서 따뜻한 온돌방에서 호령하는 것은 말도 안되었다. 현장주의자인 그로서는 당연히 현장을 지켜야 했다. 정충신은 군사들과 생사를 함께 하는 군막생활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마상에 올라 발밑을 보니 푸른 강물이 흐르고, 그 건너편 쪽에 오랑캐가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웅거하고 있었다. 다분히 축성하는 조선 군사들을 위협하는 행동들이었다. 눈어림으로 살펴보니 1초(硝)의 병력 쯤 되어보였다. 1초는 장갑군(長甲軍), 중갑군, 수은갑(水銀甲) 등 1백인씩 구성되어 300-400명을 하나로 묶은 후금군의 군사 조직이었다. 이들은 씩씩하고 용맹한 자들로 성을 공격할 때 역할을 하는 특수부대였다. 지금 그 성곽 공격을 위해 훈련에 나서고 있었다. 적들은 성이 축조되는 것을 한사코 막을 모양이었다.

“저 자들이 언제부터 발호했는가.”

오랑캐의 동태를 살피던 정충신이 물었다.

“간밤에 들어오더니 저렇게 기승을 부립니다.” 천총 백대발이 말했다.

“기죽지 말고 의연하게 그대로 진행하라.”

정충신이 기수병(旗手兵) 몇과 부대원 열을 이끌고 산 모퉁이를 돌았다. 기수병들의 붉고 푸르고 노란 깃발이 숲의 위에서 떠가는 듯이 보였다. 그것은 오랑캐들을 유인하는 전법이었다. 일제히 적의 화살이 빛살처럼 기를 향해 날아왔다. 정충신이 다시 기수병을 반대 방향으로 가도록 했다. 그것은 여러 군사가 이동하는 모습이었다. 이동 경로에 따라 화살이 날아왔다. 이때 정충신이 본진 부대에 명령했다.

“내가 화살을 날릴 때 일제히 공격하라.”

그는 성을 축조하는 부대를 지원하는 궁수부대와 포부대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가 적의 공격 신호로 적진을 향해 활을 쏘았다. 그런데 매서운 칼바람이 화살을 엉뚱한 방향으로 날려보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뺨이 칼바람을 맞아 갑작스럽게 마비가 왔다. 화살을 맞은 줄 알고 뺨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런데 전신이 굳어버렸다. 그가 마상에서 툭 떨어졌다.

“병사 어르신, 왜 이렇습니까.”

곁의 군졸들이 달려들었다. 군졸들은 정충신이 화살을 맞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장군을 후송하라!”

팽팽한 긴장감이 일시에 풀리고, 군사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궤멸되었다. 조정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화살 하나에 무너지다니, 그런 자가 큰 소리친단 말일세.”

상감이 보는 앞에서 대신들을 낯박살주던 정충신을 신료들은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러게 말이야. 지 혼자만 깨끗하다고 훈계하던 자가 화살 하나에 무너지다니, 그게 명색 장수라는 지체인가? 그런 신분으로 평안병사직을 수행할 수 있남? 평안병사는 아무나 하냐고? 하하하.”

정충신은 평안병사직을 사임하고, 한양으로 돌아왔다. 정충신의 후임으로 남이흥이 평안병사로 임명되었다. 서울로 온 정충신은 어떤 변명도 내놓지 않았다. 음모와 배신과 모략은 중앙 정치 무대의 찌질한 문화로 자리잡았으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1627년 정월 열나흘 날이다. 첫 닭이 울 무렵 후금군 사령관 아민이 이끄는 3만명의 주력 부대가 압록강을 건너 의주를 점령했다. 그는 정충신이 평안병사직에서 파직되었다는 것을 알고, 때는 이때다 하고 서둘러 압록강을 건넌 것이다. 강이 꽁꽁 얼어붙어 건너기엔 식은 죽먹기였다. 그가 남산에 올라 소리쳤다.

“나는 대금국(大金國)의 2왕(둘째 왕) 귀영개(貴永介)의 명을 받들어 조선을 정토(征討)하러 왔다!”

귀영개는 누르하치의 둘째 아들 따이샨(代善)이었다. 장남 추엔(猪英)이 부친 누르하치의 정부를 손댄 것이 화근이 되어 살해되고, 둘째 따이샨이 사실상 적장자였다. 조선왕조실록은 따이샨을 귀영개로 명명하고 있었다.

따이샨의 직속 부하 아민은 의주 점령의 첫 작업으로 의주부윤 이완을 붙잡아 죽였다. 이완은 이순신 장군의 조카였으며, 전라도 명량대첩에서 작은 아버지를 도와 전공을 세운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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