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89)

5부 정묘호란 1장 다시 백척간두에서 (489)

“나 아민이 조선을 정토하러 왔으니 성중(城中)의 장수와 군사들은 무장을 해제하고 나와서 항복하라. 남쪽 땅에서 온 군병들은 모두 지체없이 고향으로 돌아가라. 그렇지 않으면 내 부대의 말 발굽에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오랑캐 장수가 소리치자 군사들은 사기가 뚝 떨어졌다. 이완이 의주부윤으로 부임하면서부터 군심(軍心)을 잃어 백성들은 적을 따르고 있었다. 애초에 변경의 백성들은 그런 이중적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기회주의적으로 살지 않으면 목숨을 부지하기가 어려운 곳이니, 근본은 나라가 변경부터 잘 다스려야 하는 일이었다. 민심을 사고 사람 살만한 고장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렇더라도 이를 보고 중군장 지계체가 탄식했다.

“정충신이 장군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이렇게 당할 리는 없을 것이다. 백성들도 해이해지진 않을 것이다.”

며칠 후, 후금군에 투항한 한윤이 후금군의 군복으로 변복하고, 의주성으로 들어와 적을 성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는 군기고(軍器庫)부터 불에 꼬실라 태웠다. 무기없이 싸우는 적은 쉽게 섬멸할 수 있다는 전술에 따라 군기고부터 불싸질렀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고 해도 조국을 이렇게 그는 배신하고 있었다. 뒤이어 적의 본진이 성으로 치달아 오니 성안의 관민이 성문을 열고 후금군을 맞이했다. 이렇개 해서 의주성은 손쉽게 함락되었다. 아민 군대는 성루에 남아 군사를 독려하는 이완을 활로 쏘아 꺼꾸러뜨리고, 이를 본 이완의 사촌 아우 신은 불이 붙은 화약고에 뛰어들어 죽었다. 판관 최몽량과 관속들이 붙들려 포로가 되었다. 그를 무릎꿇린 아민이 명령했다.

“잔병들이 모이도록 하라. 그리고 남도 군사와 북도 군사를 각각 분리하라.”

남과 북의 군사를 좌우로 갈라치니 아민이 물었다.

“남도 병사는 첨방군인가?”

“그렇습니다,”

“이놈들부터 처단하라!”

첨방군이 강군인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남도 군사는 왜군과 싸우면서 무적 강군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이들을 부숴야 작전을 더 쉽게 펼 수 있었다.

첨방군을 물려받은 중군장 지계체가 첨방군을 향해 외쳤다.

“첨방군은 당장 북도(평안도) 군사 속으로 들어가라. 저것들이 너희를 골라내 죽이려 한다. 북도 군사는 노예로 써먹으려고 하고, 첨방군은 반발할까봐 목을 치려고 하는 것이다!”

그 말이 떨어지자 남도와 북도의 군사들이 한데 엉겼다. 군사를 구분하기가 어렵게 되자 자연 강군 대오를 갖추었다.

“흩어지면 죽는다. 저 새끼들이 갈라놓고 부수려 하는 계략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 나는 지금 한양으로 달려가 정충신 장군을 모셔올 것이다. 위기를 극복할 사람은 정 장군 뿐이다!”

그는 군졸들을 산골짜기 엄페물에 숨도록 조치하고 말을 달렸다. 지계체는 평안병사가 남이흥으로 교체된 것을 모르고 있었다. 알았더라도 방법이 없었다. 정충신은 그의 주군이었다.

아민이 캄캄한 밤, 관솔불이 타오르는 의주부 동헌 뜰에 최몽량을 불러내 문초했다.

“정충신이 고꾸라졌는데 우리는 아직 그의 머리를 찾지 못했다. 군사들이 숨은 그에게 간 것이 아니냐? 숨은 곳을 말하라.”

아민은 정충신이 화살을 맞고 쓰러진 것을 알고 쳐들어온 것이었다. 그러면 전쟁을 훨씬 수월하게 치를 수 있다. 이를 꿰뚫은 최몽량은 배짱을 부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알건대 정 장군은 귀국의 홍타이지 패륵과 친교가 두텁다. 그런 그를 해치려 하느냐?”

“내 알 바 아니다. 나는 따이샨의 전속 부관이다. 따이샨은 홍타이지를 경쟁자로 알지 동생으로 여기지 않는다.”

후금국에도 형제간의 권력 다툼이 거칠었다. 그래서 줄을 잘못 서면 생과 사가 갈릴 수 있었다.

“정충신의 머리를 가져오지 않으면 너는 물론이고 관속들이 모두 처형될 것이다.”

“이 짐승만도 못한 놈아, 어찌 문명국의 사람을 짐승 취급하느냐. 이것이 이웃나라의 도리이더냐. 저 못된 조선놈들이 조국을 배반한 것 보아라. 그렇게 인생을 살아서 무슨 가치가 있다는 것이냐. 너희놈들은 칼을 물고 죽어야 한다!”

후금군의 본진에 조선의 장수 강홍립, 박난영, 오신남, 한윤이 지휘관 무리 속에 섞여있었다. 그들이 조선 병사들을 머리를 깎고 오랑캐 군대에 편입시키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의 흉중에 무엇이 들어있을까를 생각나게 하는 장면이었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