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92)

5부 정묘호란 1장 다시 백척간두에서 (492)

조정이 갈팡질팡하는 사이 남이흥은 일단 구성에 진을 쳤다. 안주성 진입은 너무 늦었다. 즉시 입성했어도 대책을 세우는 데 시간이 촉박한데다 허물어진 성을 보수해야 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더군다나 적을 눈앞에 둔 다음에야 적을 방어하면서 수비 진영을 갖추려 하면 여러모로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이미 들어와있는 구성에 머물렀다.

조정은 계속 안주성을 지키라고 엄명했으나 현지 사정은 현장 지휘관이 가장 잘 안다. 일선의 총지휘관이 자율권을 가지고 군을 통솔하여 전투를 벌여야 하는데 조정에서는 현장 사정도 모르고 갑론을박, 감놔라 배놔라 했으니 지휘관의 사기가 떨어질 것은 당연했다.

장수도 싸우는 지휘관이기 이전에 인간인지라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조정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자기 뜻에 맞지 않더라도 따르는 것이 불가피한 조치지만 얼토당토 않은 지시라면 따를 수가 없다. 그런 중에 우의정 신흠은 사태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었다. 신흠은 이미 관서지방에 들어와있는 후금군이 언제 어디서 국토를 도륙할지 모르니, 주둔지 하나로 갈팡질팡할 것이 아니라 군사들이 불안에 떨지 않도록 방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하면 방책이 뭐요?” 이귀가 따지듯이 물었다.

“일선 지휘관들의 사기를 고려하여 통수권을 그에게 위임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것이 방책이오.”

그는 일찍이 좌의정 윤방이 후금군 토벌대장으로 정충신과 남이흥을 추천하자 “두 장수의 능력으로 보면 재기(才氣)로 볼 때는 정충신을 써야 하고, 용맹성으로 보면 남이흥을 써야 할 것”이라고 두 장수의 차이점을 평가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정충신은 싸우던 도중 혹한의 광풍에 중풍을 맞아 쓰러지고 말았다. 이때 전투현장을 지휘하던 장만의 치계(馳?:장계의 일종인 말을 타고 와서 전달하는 보고서)가 당도했다.

-신은 휘하에 병력이 없어서 달려가 구원하지 못하고 앉아서 수백 리 강토를 상실하여 오랑캐의 손아귀에 넘겨주게 되었습니다. 신의 휘하에 군졸이 없는 것을 알고 경기병사가 군사를 긁어보아 기보(畿輔:한양을 중심으로 오백리 이내의 지경)의 군병 1천을 보내왔습니다. 그러나 탄약이 없으며 오직 총 몇 자루로서 빈 손으로 앉아있습니다. 나라의 존망이 안주, 평양 두 성에 달려있는데 능한산성이 함락된 이후부터 민심이 흉흉합니다. 평양부의 품관 등 세 명이 처자를 데리고 몰래 빠져나왔기에 붙잡아 그날로 효시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급박한 상황인데도 조정은 별다른 대책없이 안주성이냐, 구성이냐로 갑론을박이었다. 후금군은 벌써 병력 8기군이 관서에 들어와 있었다. 병력은 깃발의 색깔로 이루어져있다. 1기군이 6000명이니 8기면 4만8000명이 들어와있는 셈이다. 이중 6개기군 3만6000명이 관서에 들어와 있었고, 나머지 2개기군은 모문룡이 머물러있는 가도를 제압하기 위해 별도로 편성해놓고 있었다.

1627년 정월 보름 능한산성을 점령한 후금군은 정주에 집결해 전열을 재정비하더니 19일 남쪽으로 진출하여 19일 안주 북방 사십리 지점에 위치한 박천을 박살내고 얼어붙은 청천강으로 진입했다. 강이 꽁꽁 얼었기 때문에 적군은 한명의 낙오자 없이 무사히 강을 건넜다. 그들은 동토의 계절을 침공하는 시점으로 선택하는 치밀성을 구사하고 있었다. 후금군을 5기군 3만명을 편성해 안주성 침공을 목표로 맹주에 진을 쳤다.

안주를 마주하자 아민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안주는 고구려시대부터 청천강 남안의 중요한 군사 거점이었다. 을지문덕이 612년 수나라 군대를 궤멸시킨 살수대첩의 요새로서 높이 12척(약 3.6m), 길이 4,300척(약 1,400m)의 석성으로 둘어싸여 있고, 성안에 18군대의 샘이 있고, 가운데 군창(軍倉)이 있어 식량만 비축하면 사계절을 버틸 수 있는 곳이었다.

드디어 후금군 3만명이 안주성을 포위했다. 아민은 정충신이 장수로 나서지 않을 것을 천행으로 여겼다. 그는 방어진으로 이런 야트막한 성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격전에 강한 산속으로 유인해 대적했을 것이다. 그가 없으니 누르하치 아들들과의 인연을 굳이 대지 않아도 된다. 뿐만 아니라 평야지대에 묏등처럼 솟은 안주성은 산보하는 기분으로 점령할 수 있다. 아민이 안주성으로 사자를 보내 항복을 요구했다.

-성안에 있는 백성들이 불쌍하니 빨리 항복하여 살 길을 찾도록 하라. 남쪽 지방의 군사들은 죄가 없으니 성문을 열고 내보내라. 성안에 있는 군사들도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면 시혜를 베풀 것이니 군말없이 응하라. 거부하면 작은 성 자체가 날아갈 것이다.

이 소식을 듣고 평안병사 남이흥이 부랴부랴 병력을 안주성으로 이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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