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93)

5부 정묘호란 1장 다시 백척간두에서 (493)

남이흥의 휘하에는 우후(虞候) 박명룡, 구상부사 전상의, 군교 하상필이 있었다. 강계부사 이상안은 서울로부터 북상하다가 적군에 막혀 진퇴를 결정못하고 갇혀있었으나, 좌영장 겸 개천군수 장돈, 맹산현감 송덕영, 태천현감 김양인, 박천군수 윤혜, 영유현령 송도남이 민병을 꾸려 나와 안주성으로 들어왔다. 훈련병사 김인수 함응수 현덕문, 천총 임충서, 중군장 양진국 등이 다른 쪽에서 안주방어사 김준과 함께 안주성의 한쪽을 지켰다. 시간은 1627년 1월20일 묘시(오후 5시 무렵)였다. 적군은 날이 저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이흥은 평안감사 윤훤에게 장계를 올려 조정에 증원군을 요청했다. 부질없는 일이었지만 어떻게든 병력 수를 확보해야 했다. 적병들이 향교 앞을 거쳐 성밑으로 줄을 서니 성은 완전 포위되다시피 했다.

아군은 고을의 민병을 더 이상 지원받을 수 없는 상황으로 고립되었으나 남이흥이 이끈 병사 1500과 강계 개천 맹산 영유 박천에서 들어온 군사를 모두 모으고, 성중의 군사와 민간인, 노약자까지 모으니 겨우 3000이 되었다. 숫자가 그렇게 되어도 막대기 하나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자가 많았다. 그러나 그들로 하여금 방어태세를 갖추도록 명하고 적병과 대치했다.

아민은 평화적으로 안주성을 수중에 넣으려고 사자를 보내어 항복을 요구했다.

“너희 나라는 어찌하여 이웃나라인 우리(후금)와 신사(사절)를 교환하지 않고 국교를 단절하려 하는가. 어찌 천시(天時)를 살피지 아니하고 감히 우리나라와 철천지 원수가 되려 하는가. 우리와 그대들의 나라는 원래 형제국이었다. 전왕(광해)은 우리와 친교가 있었고, 그 휘하에는 정충신 등 대화파가 있어 우리와 관계가 돈독했다. 대금 황제의 자식들과도 친교가 있었다. 나는 정충신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 정신만은 높이 산다. 외교는 싸우지 않고 평화를 사는 전쟁이다. 그래서 본인 역시 오늘 여기까지 온 이상 싸워야 하지만, 최후로 너희에게 명하노니, 수에서 밀리고 군사력에서 밀리니 조용히 항복하기를 바란다. 나는 너희와 싸우기를 원하지 않는다. 항복을 따르지 않으면 모조리 안주성을 태울 것이다.”

남이흥은 이괄의 부대가 모두 사라져버린 것을 통탄했다. 그의 군대 1만8000은 모두 잘 훈련된 정예병이었. 그런데 이괄의 난이 평정되고 이들 대부분 죽고, 주력은 섬으로, 산으로 들어가 숨어버렸다. 이런 마당에 그들을 불러들인들 원수의 전쟁에 참여할 리가 없을 것이다.

이런 때 정충신은 어땠을까를 그는 생각했다. 그는 어떻게든지 사발통문을 넣어서 이괄군을 끌어모았을 것이다. 그런데 남이흥은 그들과 아무런 연이 없었다. 남이흥이 어디서 얼핏 들은 것이 생각나서 안주목사 김준에게 물었다.

“적은 삼만이요, 우리는 삼천이오. 그것도 우리는 오합지졸이오. 듣자하니 김준 목사가 관북지방의 군사력이 미약함을 보고 승병 천명을 모집하여 군사훈련을 시켰다고 하는데 그 승병들은 어떻게 되었소이까.”

“조정 제신(諸臣)들의 명령으로 해체한 것이 한달 전이오. 서북방 국방대책에 깊은 생각이 없는 그들은 태평성대에 승병을 양성하여 민폐를 끼치는 것이 아니냐 하여 해체를 명했나이다.”

“옛기 개새끼들.” 남이흥이 벼락같이 욕을 퍼부었다. 김준이 물었다.

“지금 아민이 묻지 않소이까. 항복하라고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걸 말이라고 하오? 목사는 충의지심이 없소이까?”

“빨리 응답하라잖소.”

“충원 병력을 생각하고 있소. 대답이 늦으면 어떻소?”

남이흥이 머뭇거리자 아민이 재차 소리쳤다.

“우리 대금 황제가 그대들의 일에 화를 내어 그대들을 토벌하라고 군사를 보내셨다. 그대들은 어찌하여 호패법을 만들어 백성을 괴롭히면서 이웃나라인 우리나라와 사절 교환을 하지 않고 국교를 단절하려 하느냐. 그리고 3리에 불과한 작은 성안에 수만 백성이 무슨 죄가 있다고 가두어 헛되게 항거하여 모든 백성을 어육이 되게 하려느냐. 청천강은 지금 꽁꽁 얼어붙었다. 시체를 강물에 띄워보내지도 못하고 얼음 위에 굴러다닐텐데, 그러면 늑대 범, 여우, 오소리, 독수리가 죽은 시체의 눈알을 뽑아먹고 살을 찢어 내장을 입에 물고 온 산천을 갈고 다닐 것이다. 이런 모습을 조상님께 보여야 되겠느냐. 남이흥은 빨리 나와 항복하고 우리와 화친할 것을 명하노라.”

그때 두말 없이 남이흥이 박명룡의 포군에게 명령했다.

“쏘아라!”

포를 쏜 것으로 응답한 것이었다. 기습 공격에 후금군 수십명이 고꾸라졌다(이상 남균우 저 ‘역사상 유례가 없는 남이흥의 비장한 순국’ 중 일부 인용).

기습 대응은 적군에게 일부 사상자를 냈다. 아민 군대가 주춤 후퇴하는 듯하더니 적병들을 북문을 터 집중 투입시켰다. 북문으로 아군이 몰려들어 방어하자 이번에는 남문, 서문에서 적병들이 사다리를 타고 넘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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