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채 남도일보 주필의 무등을 바라보며-‘적폐’ 정치인 출판기념회는 왜 혁신되지 않는가
 

또 선거철이 다가왔는가 보다. 무슨 선거가 됐든, 선거를 앞두고 6·5·4개월 전에 줄기차게 열리는 행사가 있다. 정치인이 출판기념회(북 콘서트)를 열지 않으면 정치인이 아닌 것처럼 너도나도 출판기념회를 열고 있다. 광주·전남지역에서도 지난해 11월부터 이달까지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4월 15일) 입지자들의 출판기념회가 잇따르고 있다. 선거일 90일 전인 오는 16일까지 어지간한 입지자는 다 할 모양이다.

막바지 출판기념회를 연다고 온 사방으로 날린 초청장과 카톡·문자메시지는 스팸이다. ‘가야 하나’ ‘봉투에 얼마를 넣어야 하나’, 받는 순간 스트레스다. 저자와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면 고지서도 없는 세금을 내는 것 같은 부담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정치인의 출판기념회가 시민과의 만남의 장이고, 신인들에겐 합법적 홍보 수단이라는 긍정적 의견도 있지만 언제부턴가 세 과시와 법망을 피한 정치자금 모금 행사로 변질되고 있다. 애당초 책은 목적이 아닌 수단에 불과해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대필이나 짜집기 일색이다. 감동도 없고, 가슴에 새길 만한 것도 없다. 상당한 정성을 들여 펴낸 것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출마하기까지의 지난 과정에 의미를 부여하고 신문·잡지에 기고했던 칼럼·에세이를 모으거나 신변잡기를 쓴 자화자찬 잡문의 자서전이다. 그렇다 보니 함량 미달의 책도 많다. 애당초 읽으라고 펴내는 게 아니란 얘기다. 출판기념회에 참석하는 사람 역시 왔다갔음을 알리는 게 목적인 만큼 책엔 관심도 없다. 그저 눈도장 찍고 방명록에 서명한뒤 돈 봉투를 전달한다. 책값만 넣는 게 아니어서 3천만 원가량 들여 출판하면 1억 원에서 3억 원까지 거둔다고 한다.

현행 선거법은 출판기념회와 관련, 개최 시기만 규제하고 있을 뿐 출판물의 금액 한도, 모금액, 출판기념회 횟수 등은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모금액에 대한 영수증 처리나 내역 신고도 필요하지 않는다. 또한 세금도 낼 필요가 없다. 출마를 안해도 ‘반환의무’가 없다. 사실상 아무런 제약 없는 선거자금 모금 창구인 셈인 것이다. 이런 판국이니 평생 정치만 하면서 총선과 지방선거 ‘2년 장 대목’마다 단골손님(?)으로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에 번갈아 출마를 계속하며 무작위로 참석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민폐와 관폐, 사업자에 끼치는 부담이 엄청나다.

지난해 12월 5일 국회 헌정기념관 2층 대강당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손금주 의원의 저서 ‘손금주와 함께 가는 나주·화순 여행’ 북 콘서트에서 정가로만 책을 판매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손 의원의 북 콘서트를 찾은 사람들이 책값으로 돈 봉투를 전달하려하자 행사 관계자들은 “정가로만 판매합니다”며 2만원씩만 받았다. 대부분 책값보다 많은 금액을 전달하는 ‘관행’을 타파하기 위해서였다. 5만 원을 낸 참석자는 거스름돈 3만 원을 돌려받았고, 책값만 내고 책을 가져가지 않은 사람들에겐 쫓아가 책을 전했다. 일부 참석자들은 돈 봉투를 받지 않자 항의하기도 하고, 책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실랑이가 벌어지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손 의원이 ‘정가판매’를 통해 ‘정치자금 모금’ 수단으로 여겨졌던 출판기념회의 기존 틀을 과감히 깨 신선한 충격을 줬다는 평가다. 이처럼 ‘비정상의 정상화’를 시도한 출판기념회가 화제로 되는 것이 현주소다. 정치인들은 정가판매 하는 출판기념회를 입방아에 올리면서도 속으로는 눈먼 뭉칫돈을 포기하는 무모함에 더 놀랐을 것이다.

출판기념회는 정치인들의 ‘갑’질이다. 환절기마다 찾아오는 독감바이러스처럼 선거철마다 ‘을’의 호주머니를 턴다. 그러면서도 ‘을’을 위해 일을 하겠다고 하니 ‘양의 탈을 쓴 늑대’다. 문제는 정치인의 사고방식이다. 책을 우습게 여기고, 책을 돈 찍듯이 찍어내고, 출판기념회를 정치판으로 만들었다. 정치인들의 저술 활동은 당연하지만 책을 파는 출판기념회는 불필요하다.

출판기념회 폐해론은 오래 전부터 국회에서 제기됐다. 그러나 돈줄을 놓지 않으려는 침묵의 카르텔에 묻혀 논의는 실종됐다.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는 정치권의 대표적 ‘적폐’다. 정치발전을 위해 정치인 출판기념회는 규제나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 임기 내 1회로 횟수 제한, 정가 이상 판매 금지, 1인당 구매 한도 제한, 수입금액 정확히 공개, 정치자금 신고 등의 방안이 있을 수 있다. 21대 국회에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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