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97)

5부 정묘호란 1장 다시 백척간두에서 (497)

부인 남원 양씨가 주안상을 내왔다. 막걸리 한 됫박에 안주라는 것이 김치와 총각무 뿐이었지만, 지계최는 감복했다. 이런 누추한 생활인데도 고향의 부하를 위해 술 한잔으로 맞아주니 진수성찬보다 더 값지다고 생각했다.

정충신도 모처럼 고향의 부하를 만나니 감회가 없을 수 없었다. 그 점 부인 남원 양씨도 알았다. 남원양씨는 남편이 전선에서 후송되어올 때 산 송장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다행히도 지금은 술 몇잔 할 정도로 기력이 회복되고, 틀어진 입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풍에 좋다는 약을 백방으로 구해 달여먹인 효험이지만, 정충신 또한 회복하려고 무진 애를 쓴 결과였다.

“장군, 오랑캐가 수시로 변경을 드나들고 있습니다. 안방 드나들 듯이 하구만이요.”

“왜 그러는지 모르시는가.”

“조정이 엉뚱한 장수들을 보내니 전선이 해이되어서 그 모양이지요. 개판이구만이요.”

“후금에 투항자들이 속출하잖나. 강홍립, 한윤 등 그자들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야. 우리의 자원인데 말일세.”

“적도들 아닙니까?”

“한 사람이 귀한데 이리 쪼개고, 저리 박살내면 뭐가 남겠나.”

“배금친명을 명분으로 집권한 현 집권 세력인데, 어떻게 후금과 소통할 수 있습니까.”

“그럴수록 적을 내 편으로 만드는 지혜가 필요하지. 내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네.”

광해의 중립외교가 성공적일 수 있었던 배경은 친조선파인 누르하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아들들이 조선 정벌을 주장했으나 누르하치는 부모국이니 형제의 연을 맺어야 한다고 반대했고, 정충신이 그 아들 다이샨, 홍타이지와 인연을 맺고 있었으니 조선의 평화는 유지되었다. 변경 사람들이 서로 오가며 호피와 양고기와 쌀과 보리, 인삼과 삼베를 서로 바꾸어 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후금을 반대하고 명나라를 따르는 무리들이 인조반정을 일으켜 정권을 잡으니 후금으로서는 그동안 공들인 선린과 우호가 하루 아침에 무너져버렸다. 두 아들 다이샨과 홍타이지가 배신당했다고 분개했다.

“광해를 부수더니 우리와도 원수지려고 하고 있군. 우린 강홍립도 받아들였는데 말이야.”

그들은 이괄의 난으로 정권이 흔들리자 반군을 지원하려고 했다. 형제처럼 지내는 정충신에 의해 이괄이 무너지자 다이샨은 정충신을 믿고 여러 가지 나쁜 첩보 사항을 지워버렸다. 다이샨은 조선을 치자는 홍타이지를 달래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전선을 넓힐 때가 아니야. 한쪽으로 집중시켜야 돼. 그리고 조선의 국내 사정까지 간섭할 수 없다. 우리의 국력이 확장될 때까지는 주위와 갈등을 일으키면 안돼. 그러니 정충신과 같은 연이 닿아있는 것만으로 우리의 자산으로 여겨야 한다. 그와 연을 살리도톡 하자.”

정충신 역시 후금을 생각하는 것이 조정 대신들과 관점이 사뭇 달랐다.

“후금과의 직통 통신망이 무너져 버렸다. 국교 단절까지 가면 우리나라는 존망의 기로에 선다. 후금 군대를 조정 신료들은 잘 몰라.”

후금은 명을 치기 위해 영원성 전투를 준비중이었다. 그러나 후방 전선이 흔들리면 영원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없다. 이런 때 그들의 후방을 안정시켜 주면 조선과 후금간에 우호 관계가 성립될 수 있다.

“장군, 한번 나서 보실랑가요.?

“생각하는 바가 있네. 피도(皮島), 즉 가도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모문룡을 잡아야 하네.”

“모문룡을 잡아야 한다고요? 그 간나구 새끼를 잡아서 뭐하게요? 우리 조정도 그놈 등쌀에 못살 판인디 말이요.”

“그 자는 후금을 치러 나온 명나라 장수 아닌가.”

“그렇지요. 그런데도 우리땅을 드나들면서 못된 짓을 다하는 놈이지라우.”

“그러니 하는 말일세. 그자가 우리도 괴롭히지만 후금의 뒤통수를 치고 있단 말일세. 그리고 지 나나라로부터도 신임받지 못하고 있어. 명의 요양 총독 원숭환한테 배척받고 있어.”

“하도 간나구짓 항개 그러겠지라이. 그러니 그 잡것을 잡아불면 조선도 좋고, 명나라도 좋고, 후금도 좋다 이 말이제라우?”

“그래, 일석삼조지.”

“그러면 나가 병조로 달려가서 말하리다. 돌 한 개로 새 세 마리를 잡아버리는 전략, 기가 맥힌 것이 있다고요.”

“지 장수는 지체 말고 어서 전선으로 가시게.” 정충신이 간단히 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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