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98)

5부 정묘호란 1장 다시 백척간두에서 (498)

지계최가 왕의 몽진길을 뒤쫓았다.

이서·김류·심기원·김자점·신경진·최명길·이흥립·심명세·구굉 등 정사공신(靖社功臣:인조반정 성공공신)에 책록된 중신들과 이귀의 두 아들 이시백·이시방이 왕의 몽진을 돕던 도중 한 양반의 집에서 비상회의를 열고 있었다. 지계최가 그들 앞으로 달려가 엎드려 소리쳤다.

“아뢰옵니다. 소인의 수장 정충신 장군을 병 문안차 반송방에 들렀다가 부대로 원대복귀하는 지계최이옵니다. 정충신 장군께서는 후금의 침략을 막을 방도가 있사옵니다. 빨리 장군을 불러 논의하십시오.”

“그는 병중이 아닌가.”

“병중이라도 나라를 생각하는 데는 충정이 더 간절하십니다. 부르면 만백사 제하고 나올 것이옵니다.”

“귀관이 나설 일이 아니다. 귀관은 조정에 맡기고 어서 귀대하라.”

대신들은 그를 맞상대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선전관이 볼 때는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도포자락 휘날린다고 해서 그 권위가 나라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단 한자루의 총이 필요한 시점이다. 선전관이 말을 달려 정충신의 누옥에 당도했다.

“정충신 장군은 지금 당장 관복을 차려입고 나를 따르시오.”

정충신이 뒤따르니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합강이었다. 인조와 문무백관이 그곳을 벗어나 강화도 방향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김류가 선전관과 함께 달려온 정충신에게 물었다.

“왜 여기 왔는가? 전선에 있어야 할 사람 아닌가? 장수 자리보다 백관 자리를 노리는가?”

상당히 뼈에 박힌 추궁이었다. 정충신은 정사공신 훈책 때 그의 기회주의적인 행태를 비판한 적이 있었다. 그것에 대한 앙갚음인가?

“황공하옵니다. 이런 중대한 시기에 소인이 전선 시찰 중 풍을 맞아 사가로 돌아와 요양중이었습니다. 토질병까지 걸려 병상에 누워있으니 만감이 교차하였나이다. 별장(別將)으로라도 백의종군 하겠나이다.”

장만 체찰사가 말을 달려 몽진 행재소에 들어왔다. 그가 상황을 살피더니 말했다.

“정충신이 들어왔으니 전략을 다시 짜야겠습니다.”

장만은 군교와 병사를 모아 감화도 참성단에 먼저 들어가 계곡에서 군사를 훈련시키고 있었다. 장만이 비변사(군사의 사무를 맡아보던 비상 기구, 비국) 회의를 소집했다. 비변사에서는 한결같이 재략과 유격전에서는 정충신만한 장수가 없다 하여 중용할 것을 건의했다. 이중 주도한 사람이 수찬 이여황이었다.

“현재 모든 장수들 가운데 재략이 뛰어나고 이미 시험한 바대로 능력이 출중한 장수는 정충신 만한 사람이 없소. 그가 비록 질병으로 고생하였으나 근력이 쇠약하지 않기 때문에 체찰사의 별장으로라도 나서겠다는 것이 아닌가. 신 등의 뜻은 정충신으로 하여금 팔도부원수로 삼아 서북의 관병과 삼남지장의 근왕병까지 붙여주어서 군병을 전담케 하심이 옳은 줄로 아뢰옵니다. 그릇에 맞게 임무를 부여해야 합니다.”

“당치 않소. 아무리 몽진중이라도 체계와 질서가 없을 수 없소.”

한 신료가 상을 찌푸렸다. 다른 신료도 마찬가지였다. 한갓 미천한 출신이 능력이 출중하다 해도 조선의 기존 신분질서를 뛰어넘을 수 없다. 신분사회는 엄연히 사회기강을 바로잡는 기본 틀이거늘 고작 목사관의 지인 벼슬에 있었던 자가 부원수까지? 이는 그들이 모욕을 당한 기분이었다.

장만이 호통치듯 말했다.

“나는 육십이 넘은 사람이오. 전선을 누벼도 옛같지 않소. 내 일찍이 함경도 변경에서 사위 최명길을 데리고 변경을 관리하던 정충신을 눈여겨 보았소. 그는 오랑캐를 다루는 법을 아오이다. 내가 아는 자를 등용하는 것이 아니라 적을 잘 아는 자를 등용하는 것이오.”

그러자 반대파가 나섰다.

“정충신은 친금파요. 후금은 명나라의 원수요. 그런데 어찌 그리 위험한 짓을... 강홍립과 그 휘하, 한명련의 아들 한윤, 변경의 사람들이 무시로 후금땅을 밟고 간자 노릇을 하고 있소. 정충신도 우리와 반대의 길을 가지 않는다는 법이 있소?”

정충신이 이에 개의치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소관은 모문룡부터 잡고, 후금과 협상을 끌어들이겠소.”

“뭐가 어쩌고 저째? 명 장수를 때려잡고, 후금과 협상을 한다고?”

이동행재소는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