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19)

6부 2장 용골산성 전투(519)

전투에서 돌아온 다이샨은 사촌동생의 잘린 머리를 보더니 소리를 질렀다.

“이게 무슨 짓이냐,”

“조선의 정충신 부원수로부터 효수와 함깨 밀서가 왔습니다.”

부장이 그에게 밀서를 내밀었다. 겉봉을 뜯어 편지를 읽던 다이샨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면 수긍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홍타이지가 방방 떴다. 다혈질의 성질 그대로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가만두지 않겠다 해. 우리 형제의 동무라고 해도 우리 가문의 명예에 흠집을 냈다 해. 용서할 수 없다 해. 당장 말의 안장을 가져오라. 정예 기병 이백을 차출하라.”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본영 연병장에 먼지를 뽀얗게 일으키며 기병부대가 들이닥쳤다. 기병들이 연병장을 돌며 와우와우! 이상한 함성을 질렀다. 홍타이지가 이들에게 출병의 이유를 설명하고 외쳤다.

“나를 따르라!”

홍차이지가 전복을 입고, 투구를 쓰고 말에 올랐다. 이때 다이샨이 홍타이지를 향해 말했다.

“멈추라!”

“아니, 조선군이 우리 가문을 끌탕내지 않았소?”

“우리 군이 화약을 맺고 후퇴중이야. 그런 가운데 탐악질을 한다는 말이 파다하다. 이런 때 기병을 끌고 공격하면 화약을 깨자는 것이지. 양반의 나라에서 우리를 어떻게 보겠나? 아우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구만?”

그 말은 맞았다. 그러나 홍타이지는 모욕을 당한 기분으로 대꾸했다.

“복수하고 오겠소.“

“아니다. 영원성으로 가라. 명의 국경선 영원성으로 가라. 정충신 부원수의 깊은 뜻이 있다는 걸 헤아리라. 지금은 조선과 화약을 지킬 때지 확전할 때가 아니다. 패륵의 명이니 따르라.”

그러나 홍타이지는 명을 거역하고 조선으로 출병했다. 의주에 주둔하고 있던 후금군과 압록강을 건너온 후금의 정예 기병부대가 합류해 영변의 검산산성으로 달려들었다. 후금의 돌격기병의 위세가 산골짜기를 쩌렁쩌렁 울렸다.

정충신은 북병사(北兵使) 윤숙과 산성의 목 지점에 진을 쳤다. 군사들을 산 위로 올려보내 방어선을 배치했다. 일전을 위해 성을 사주방어(四周防禦)하여 적을 응징할 태세를 갖추었다. 방어의 주력은 적의 공격 방향에 배치하고, 어느 방향으로부터의 적의 위협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사방에 방어 편성을 한 것이다. 이는 높은 산 지형을 선점해 수행하는 병법이었다. 그때 초소장이 본진으로 급히 뛰어 들어왔다.

“ 정충신 부원수 영감의 일가붙이라는 분이 찾아왔습니다.”

초소장에게 이끌려온 사람은 활과 칼을 어깨에 멘 장정이었다. 장정이 정충신 앞에 읍하고 고했다.

“소인은 영산현감을 지낸 정봉수입니다. 영감께서 고군분투 중이라는 말을 듣고 달려왔습니다. 소인의 휘하에는 의병 2백이 있습니다.”

정봉수는 은퇴해 향리에 눌러앉아 있었으나 후금 군대가 후퇴하긴 커녕 응원부대까지 동원되어 일합을 겨루기 위해 검산산성에 결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을 일으켜 달려온 것이었다. 그가 특히 득달같이 달려온 것은 정충신이 하동정씨 종친이라는 연분도 있었다.

“소인은 정지 장군과 정충신 장군의 높은 기개를 큰 자부심으로 알고 살아왔습니다. 그 정신을 받들고자 만백사 제하고 달려왔소이다. 정충신 부원수 나리는 항렬로는 저의 조카뻘이지만, 군 직책상 최고의 사령관이니 깍듯이 어른으로 모시겠습니다. 언제든지 명을 내려 주십시오. 소인은 이 고을이 고향인지라 이곳 지형과 지세에 대해서는 안마당이나 다름없습니다.”

정충신이 한달음에 달려가 정봉수를 굳게 안았다.

“대부께서 오시니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입니다. 저의 본관은 금성정씨이나 하동정씨 중시조 어른께서 나라에 큰 공을 세워 금성군이란 작호를 받은 이래 금성정씨로 변성(變姓)했습니다. 그러나 본 줄기는 하동정씨지요. 어서 윗 단으로 올라오십시오. 인사 올리겠습니다.”

정충신은 정봉수를 윗 단으로 오르도록 하고 정중히 예를 취했다.

“지금 급합니다. 모두 전투대형으로 갖춰야 합니다.”

아닌게 아니라 후금 군사들은 동이 트는 새벽녘 일제히 공격해왔다. 기병부대를 앞세워 들이닥치자 천지가 진동하는 듯했다. 적들은 기름솜방망이에 불을 붙여 성안에 던졌다. 여기저기 성안의 집들에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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