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할머니
이성자(동화작가)

지난 1월 초였다. 행사장에 가려고 준비하던 김 여사는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내가 가는 길에 태우고 갈게, 후문으로 나와 있어.” 기분이 좋아진 김 여사는 콧노래를 불렀다.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 “바쁜 네가 웬일이니?”라고 궁금해서 물었더니, 요즈음 목감기로 일주일 동안이나 강의를 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친구 목소리가 예전 같지 않았다. “날마다 목을 쓰는 사람인데 조심해야지.” 위로하고 행사장에 도착할 때까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돌아오는 길에 김 여사는 식당에 들러 맛있는 점심을 샀다.

사흘 후, 김 여사의 목이 근질근질했다. 문득 친구 차를 얻어 탄 것이 마음에 걸려 마스크를 찾아 썼다. 딸 부부가 여행 가는 바람에 아이들 셋이 집에 와 있기 때문이다. 예감대로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해열제를 먹었지만 열은 내리지 않았다. 오후가 되니 체온이 37,9도로 올랐다. 부랴부랴 병원으로 향했다. 검사 결과 독감이었다. 응급실에서 링거를 맞으며, 목감기를 앓았으면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던 친구를 원망했다.

김 여사는 아이들 돌보는 일 때문에 입원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일단 마스크를 믿어보기로 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지금부터 마스크 할머니 곁에는 오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상황을 말하고 단단히 일렀다. 아이들 중 유치원 다니는 손녀가 “이 방은 독감환자가 있으니 들어가지 마세요.”라고 종이에 써서 김 여사의 작업실 방문 앞에 붙여두었다. 유치원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은 게 보였다.

마스크를 쓴 채 행여 전염되었을까봐, 김 여사는 두세 시간 간격으로 아이들 열 체크를 했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최대한 영양식을 제공하고 김 여사도 일부러 챙겨 먹었다. 화장실을 따로 쓰고, 밥도 아이들과 다른 시각에 먹었다. 그러고는 작업실 방에서까지 24시간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사흘이 지나자 열이 내리고 증상은 호전되었다.

열흘 만에 여행에서 돌아온 딸은 마스크를 쓰고 있는 김 여사를 걱정하기는커녕 아이들 귀에 체온계를 꽂으며 “조심하시지, 아이들 독감에 전염됐으면 어떻게 해요?” 투덜댔다. 막내 손녀가 미열이 있다며, 당장 병원에 데리고 가서 검사를 해봐야겠다고 서둘렀다. “할머니가 계속 마스크 쓰고 있었단 말이야. 예방주사도 맞았잖아!” 막내 손녀가 야무지게 쏘아붙이며 안 가겠다고 버텼다. 하루 종일 마스크 쓰고 견뎌냈던 피곤함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김 여사는 딸이 화장실에 들어간 사이에 얼른 막내 손녀 열 체크를 해보니 36.9도였다. 유별나게 구는 딸이 야속해서 두 눈이 찢어지게 화장실을 흘겨보았다.

독감 때문에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나니, 이번에는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비상이다. 경제는 물론이고 소소한 일상까지 마비되고 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조심조심 외출을 했는데, 우리나라도 갑자기 확진환자가 늘어나는 바람에 이제는 병원도 약국도 시장도 사람이 모여 있는 장소에 나가는 일이 정말로 두려워졌다. 마트에도 손님이 한 둘 뿐이고, 택배 아저씨는 죄인처럼 살짝 문 앞에 물건을 놓고 가고, 시장에서 야채 팔아서 겨우 먹고 사는 후문 할머니는 집에서 쉬고, 반가운 튀밥아저씨가 왔는데도 누구하나 가까이 가는 사람도 없고. 붕어빵 아저씨도 아예 얼굴도 안 보이고….

눈 밑에 주름살처럼 마스크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김 여사. 오늘도 콩나물을 사기위해 현관을 나서면서 마스크를 찾아 쓴다. 광주에서도 확진환자가 나왔다는 말에 자식들 걱정이 앞선다. “정말로 큰일 났다! 암튼 잘 먹고 면역력 키우는 일, 손 씻는 일, 마스크 챙겨 쓰는 일 등. 다 알고 있지?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왔으니, 혹시? 하는 생각이 들면 응급실 말고 선별진료소로 가는 거야. 이럴 때일수록 서로가 배려하는 마음으로 예민하게 대처해야만 ‘코로나19’를 몰아낼 수 있어.” 다 알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자식들 대답에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쉰다. 마스크 할머니의 목소리에 두려움이 가득 배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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