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33)

6부 2장 용골산성 전투(533)

정충신이 잠시 생각을 가다듬다가 다시 붓을 휘갈겼다.

-지금 군사를 풀어 야전에 씨를 뿌려 자급자족 하도록 할 계획이나 수확할 때까지가 연명이 어렵습니다. 석달분의 식량을 지원해주십시오. 주둔군은 군사훈련을 받는 사이 자체 식량 생산으로 자급자족할 것입니다. 오랑캐의 노략질과 행패에 못견뎌 도망간 군사들이 많은 바, 이들의 죄를 용서하여 사면해주면 돌아올 것이니 자연 군사력이 확보됩니다. 그렇게 행하는 소관의 지휘를 책망하지 말아주십시오.

정충신 부원수의 장계를 받은 임금은 정충신의 요구대로 할 것을 결재했다. 산중으로, 바다로 도망간 군사들이 소식을 듣고 돌아오니 벌써 3000의 군사로 불어났다.

어느날 연락병이 기라병을 앞세우고 부원수 진영으로 달려왔다.

“상감마마의 서신입니다.”

정충신의 장계에 대한 답신이었다. 답신에는 즉시 한양으로 들어오라는 명령이 담겨 있었다. 정충신은 연락군관을 대동하고 급히 한양으로 말을 몰았다. 이윽고 궁에 이르러 왕 앞에서 무릎을 꿇자 왕이 물었다.

“군사를 먹이기 위해 직접 농사를 짓는 것은 옳은 일이다. 정 공은 오랑캐 나라와 교분이 두텁고, 화친도 늘 염원해왔다. 이번 화의 협약에 정 공의 힘이 컸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모문룡을 가도로 몰아버린 것은 실책 아닌가?”

“실책이 아닙니다. 그 자를 잡아 몰아붙여두어야 서북지방의 민심이 진정되고, 후금에게도 신의를 얻게 됩니다.”

“오랑캐에게 신임을 얻는다?”

“그렇습니다. 그는 명나라 장수입니다.”

“명나라 장수라면 조선의 부모국 장수 아닌가.”

“명나라에서도 그를 역도로 보고 있습니다. 사병(私兵)을 키워서 자국을 괴롭히고 있사옵니다. 요동의 병부시랑(兵部侍?) 겸 요동순무(遼東巡撫) 원숭환에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소신이 모문룡의 거처지를 원숭환에게 제보해 모문룡을 잡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후금 실권자에게도 알려서 화의 조건의 하나인 모문룡 제거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후금의 다이샨 패륵이 이를 받아들여 조선에 들어온 동생들에게 후퇴 명령을 내리게 한 것이옵니다.”

“오랑캐의 추장은 어떤 사람이던가.”

정충신은 알고 묻는 것인지, 모르고 묻는 것인지, 순간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해 임금은 후금의 속살까지 상세하게 알고, 외교 군사에 대비했는데,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는데도 후금의 실권자가 누구고, 권력 지형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알지 못한다. 광해와 반대되는 정책을 폈으니 신료들은 명나라만을 따르고, 명나라 내시부와 선을 대려고 별별 뇌물을 갖다 바치고 있었다.

내시들은 왕의 측근에서 왕명을 전달하기도 하고 궁녀들을 관리하기도 했기 때문에 궁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나라가 어지럽거나 정치적 격변기에는 궁궐의 정보를 독점하는 신분으로 권력의 중심에 섰고, 이때 뇌물을 받고 왕의 알현도 좌지우지하였다. 그런데 대개는 악행의 전형이었다. 명나라는 이들로 인해 이미 썩어문드러져서 망국의 길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조선의 대신들은 어떻게 하든 이런 내시들에게 선을 대려고 안간힘이었다. 서로 경쟁을 하니 뇌물 가격만 올려주는 꼴이었다.

그런데 후금에 대해서는 너무도 모른다. 후금은 벌써 누르하치와 그 아들 여덟이 영원성, 산해관, 북변의 만리장성까지 진격해 베이징을 넘보고 있는데, 여전히 산에서 호랑이나 늑대 사냥으로 연명하는 부족으로 알고 있는 정도다. 왕도 예외가 아니다.

“마마, 지금 후금의 지배층은 그 아비에 못미친 것은 사실입니다마는 형제가 많으니 아비의 위력을 앞설 수도 있습니다.”

“노추(奴酋:누르하치의 이름)는 죽었다지?”

“영원성 전투에서 싸우다가 부사당한 후유증으로 여덟달 앓다가 죽었습니다.”

“그러면 보잘 것 없는 것돌 아닌가?”

“아닙니다. 노추가 가니 또다른 여덟명의 노추가 생긴 것입니다. 더욱 번창할 것입니다.”

“노추는 사내 아이 열여섯을 두었다고 하는데 왜 여덟인가.”

“진실로 싸우는 전사는 열여섯 중 여덟입니다. 나머지는 상업에 눈을 뜨거나 풍악에 소질이 있거나 시를 짓는 자들입니다. 나머지는 용맹한 무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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