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34)

6부 2장 용골산성 전투(534)

“자식들이 많다고 해도 그 아비에게는 미치지 못하니 누가 상대해도 당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니옵니다. 수수깡 하나는 보잘것없이 쉽게 부러져도 열 개, 스무 개 모아놓으면 분지르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쉽게 부러지는 수수깡이 아닙니다. 아비를 따라 야전에서 익힌 야성과 용맹성이 있어서 각자가 일당백입니다. 그러므로 그 아비에 그 자식이옵니다.”

“내 자식들과는 다르구나.”

하긴 아비는 자식들이 언제나 어리석고 부족해보인다. 임금 입장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지나놓고 보면 자식보다 못한 왕이 얼마나 많던가. 왕이 이렇게 자식들을 업신여기니 현상을 좇는 신하들도 왕을 따라 그 자식들을 평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가 나중에 큰 코 다친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본래 중신들은 미래보다 현실주의에 익숙한 성향을 갖고 있다가 당하는 것이다.

사실 조정이 무력해진 것은 이렇게 왕의 참모라는 신료들이 나라의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현실의 권력 아래서 안주하기 때문이다. 이괄의 난을 겪으면서 그것은 더욱 노골화되었다.

인조 정권의 공신들은 빼앗길 뻔했던 권력을 어찌어찌 되찾은 뒤, 어떻게 하면 권력을 유지할 것이냐의 태도로 바뀌었다. 나라의 안보보다 권력안보에 몰입했다. 반대파를 가차없이 숙청하는 한편으로 혹 경쟁세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상 위협 아래 적게는 30-40명, 많게는 300-400명의 사병을 길렀다. 이를 위해 재력을 쌓아야 했으니 과도하게 비리가 자행되었다. 부패의 연결고리는 벼슬자리였다. 매관매직이 횡행하게 된 것이다.

광해군 정권의 핵심들을 쫓아내면서 이렇게 내부로만 부패한데다 시야마저 좁으니 거대한 외부 환경의 변화를 읽지 못했다. 의심스런 자를 기찰하는데는 철저했지만 바다 건너 왜적이나, 압록강, 두만강 변경의 오랑캐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지식이 없었다.

이러는 가운데 중신들은 경쟁적으로 명나라에 줄을 대고 있었다. 명나라 황실의 내시부는 조선 사대부의 공물과 뇌물로 유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사대부들이 명나라 조정과 선을 대고 있다면, 어느 누구도 함부로 집적대지 못하기 때문에 명나라 황실은 자기 권세와 목숨 부지하는 부적이나 다름이 없었다.

인조와 반정 공신들이 반정의 명분을 세우고, 권력 기반을 다지는 근간이 부모국인 명나라의 인정이 우선적으로 요구되었기 때문에, 조정은 거기에 모든 것을 걸었다. 인조반정의 가장 큰 명분이 광해가 명나라를 등한시하고, 대신 후금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었던 만큼, 그것은 주요한 국정철학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정적으로 내외 정세를 보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

인조 정권은 국제적 안목과 개혁 구상과는 상관없이 권력 유지만을 염두에 두고 명나라에 속절없이 끌려다녔으니, 모문룡 같은 협잡꾼에게까지 멱통을 잡힌 꼴이 되었다.

“마마, 이렇게 나가다가는 앞으로 나라에 큰 어려움이 닥칠 것입니다. 후금을 잘 지켜보아야 합니다. 후금은 본디 조선국에 원한이 없나이다.”

정충신이 내외 정세를 대충 설명하고, 이렇게 말하자 왕이 비꼬는 것인지, 꾸중을 하는 것인지 퉁을 놓았다.

“그대는 과인을 보면 후금 타령만 하는데, 후금이 대접을 잘해주던가?”

“그것이 아니옵고, 모문룡을 한번 보십시오. 그가 부모국을 볼 수 있는 거울입니다.”

“모수(毛帥)와도 원한이 있는가?”

“조정에서는 명나라 조정의 뜻을 받들기 위해 모수에게 엄청난 재정 부담까지 감내하였습니다. 지난해와 지지난해는 모문룡에게 보내는 양곡이 세입의 3분지 1에 달할 정도였습니다. 친명의 보증 표찰로 내기에는 조선국의 부담이 너무 컸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작 모수의 사복(私腹)하에 사병을 기르고 있나이다.”

“허면?”

“그의 목을 뽑겠습니다. 명의 원숭환과 후금의 아민이 잡으러 피섬(가도)에 들어가고 있나이다. 소인 역시 잡으러 가겠습니다. 석달분의 식량과 포수와 궁수 6,7천을 지원해주십시오. 그의 행악질을 멈추게 하지 않고는 관서지방이 온전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지방의 오리(汚吏)들이 서북지방을 분탕질하고 있나이다. 잘한 자는 칭송하고, 못한 자는 엄하게 다스리는 기풍을 세워야 합니다.”

“잘한 자와 못한 자의 기준은 무엇인가.”

“사례를 들겠습니다. 잘한 자는 남이흥 병사의 첩실이고, 못한 자는 평안감사이옵니다.”

“잘한 자가 죽은 남이흥 병사도 아니고 그의 첩실이라니 무슨 말이렸다? 그리고 평안감사는 또 무슨 말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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