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40)

6부 3장 유흥치 난(540)

그러나 조정 신료들은 정충신의 파견을 반대하고, 이서를 토벌사령관으로 임명할 것을 주장했다. 어떻게든 과오는 상대방에 전가하고, 공적은 독식하는 것이 조정의 생리였으니 유흥치 정도는 쉽게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그들은 한사코 변방의 장수인 정충신이 공을 세우는 것을 배격하려는 것이었다. 이서가 말했다.

“상감마마, 청하옵건대 신이 정충신, 유응동, 이일원 중에서 어느 한사람과 함께 출병하는 것을 윤허하여 주십시오.”

마음에 드는 장수를 선택하겠다는 의도였다. 배경이 없는 정충신이 제외될 것은 빤했다. 왕이 정충신을 향해 물었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신이 국난을 감당하겠나이다.”

정충신이 거칠 것없이 대뜸 말하자 이서가 흠칫하면서 왕의 눈치를 살폈다.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적임자다. 정충신은 수군을 거느리고, 이서는 바다 대신 육상에서 보병을 거느리라. 이서는 총융사(摠戎使)로, 정충신은 주사원수(舟師元帥)로 임명한다.”

총융사는 총융청의 우두머리로 5군영의 하나다. 남양·수원·장단 등 3진(鎭)의 군무를 관장했으며, 주사원수는 군선을 지휘하는 수군총사령관이다. 가도로 진출하는 것은 해상전이니 결국 이서는 상징적인 자리에 앉은 셈이고, 실질적인 야전책임자는 정충신이 되었다.

“정충신은 경렬공의 후손이렸다?” 왕이 갑자기 물었다.

“그렇습니다.”

경렬공은 바다의 전설적 영웅 정지 장군의 작호(爵號)다. 왕은 그 후예인 정충신을 알아보고 있었다.

정지 장군은 고려 말 1381년 해도원수가 되어 서남해에서 왜구를 소탕하여 전공을 세운 인물이다. 1383년 5월에는 왜선 120척이 침입해 온다는 급보를 받고 경상도 앞바다로 나가 관음포(남해군 고현면 포구. 일명 이락포)에서 왜군 선봉선 17척을 대파했다. 1384년 전라 경상도 조전원수(助戰元帥:도원수, 상원수를 대리해 나가 싸우는 야전군사령관)가 되어 왜구를 무찌르는 한편으로 근원적인 방왜책(防倭策)으로 왜구의 소굴인 쓰시마(대마도)와 이키섬(壹岐島) 정벌에 나섰다.

정지는 최영 장군의 노선을 걸었다. 1388년 최영 장군 지휘 아래 요동정벌이 추진되자 우군도통사로 최일선에 섰다. 그러나 이성계 휘하에 예속된 관계로 위화도 회군에 동참해 북벌이 좌절되었다. 그는 이를 늘 후회했다. 회군 대신 북벌에 나서야 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왜적의 소굴 대마도와 이키섬 정벌에 나설 기회가 주어졌다. 그는 양광전라경상도도절제체찰사가 되어 적을 밀어붙이면서 대마도와 이키섬으로 진출했다. 그런데 왜군의 반격을 우려하여 조정 신료들이 제동을 걸어왔다. 임진왜란 이후 모처럼 남해 바다가 잠잠해진 것을 들끓게 할 수 없다 하여 정벌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조정은 나아가 이듬해 우왕의 복위를 모의한 김저·변안열 사건에 연루시켜 정지를 파직하고 경주·횡천으로 유배시켜버렸다.

정충신은 할아버지의 좌절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역시 정지 장군과 마찬가지로 시기의 대상이 되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사대부의 문벌 안에 들어야만 사람 행세하는 기득권의 사회였다. 그나마 왕이 알아주면 자리를 보전할 수 있고, 외면하면 졸지에 사라지는 것이 배경없는 자의 운명이었다.

“개자식들, 지네들 편에 편입되지 않으면 무조건 밟아버리니 숨을 쉴 수 있나.”

1630년 8월 유흥치가 차사 이매를 한양으로 보내왔다. 이매가 가지고 온 서찰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귀국의 정충신이 가도 사람들이 배 만들고 숯 굽는 것을 방해했다. 본관의 예하 추적군을 체포하고, 한인(漢人:중국인)들을 살해했다. 본관은 섬 안의 훼방꾼들을 제거했는데 조선이 나를 공격한 까닭이 무엇이냐. 조선이 천조(天朝:명나라)를 범하는 오랑캐는 토벌하지 않으면서 천조의 장수를 향해 무기를 들이대는 까닭이 무엇이냐? 부모국의 군사를 이렇게 모욕해도 되는가? 정충신을 징계하지 않으면 조선이 명나라에 반기를 드는 것으로 알겠다.

조정은 대번에 방방 뜨기 시작했다.

“정충신, 그 새끼가 호랑이 코털을 뽑고 말았어. 함부로 나서지 말랬더니 화를 불렀어! 당장 감옥에 쳐넣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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