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41)

6부 3장 유흥치 난(541)

정충신이 유흥치군을 유의깊게 지켜보는 것은 정탐꾼이었다. 그들은 조선과 후금의 왕래 상황을 탐지하려고 세작들을 풀어 관서지방과 압록강 변경에 배치했다. 후금과 밀서라도 주고 받으면 그것을 꼬투리 삼아 압력을 가해올 요량이었다. 그것을 빌미로 양곡을 요구려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1630년 11월 유흥치의 부하 전국해(錢國海)가 등래순무(登萊巡撫:수군 방어지휘관) 손원화의 차관(차사)이라 칭하며 관서땅에 나타났다.

그는 압록강 변경에서 입수한 첩보 사항이라며 “조선과 후금과의 내통을 알고 있다. 이를 무마하려면 조선에서 군량 2만석과 전마 3천필을 유흥치 장수에게 공급하라“고 협박했다. 터무니없는 사실을 날조한 것이다. 이같은 첩보를 입수한 정충신은 그의 뒤를 쫓도록 기병부대를 보내면서 당부했다.

“전국해를 잡으면 그 자리에서 목을 베라. 잡지 못하면 궁에 먼저 가서 나의 장계를 올려라.”

그는 다음과 같이 장계를 썼다.

-동래순무 손원화의 차관이라는 전국해라는 자는 유흥치의 간악한 부하입니다. 유흥치는 그에게 위조한 자문(咨文:조선시대 중국과의 사이에 외교적인 교섭이나 통보, 조회할 일이 있을 때주고받던 공식 외교문서)을 보냈나이다. 현혹되지 마시옵소서. 유흥치는 반란을 일으켜 본국에서도 식량과 무기 공급을 중단했나이다. 그래서 조선에서 식량을 공급받기 위해 위조문서를 써서 조정에 올리는 것입니다. 일거에 거부하고, 그를 투옥하십시오.

그러나 정충신의 장계는 전국해보다 한발 늦었다. 전국해는 조정에 이르러 이렇게 외쳤다.

“유흥치 장수는 공을 세우고 싶지만 식량과 전마가 부족하여 이웃에 의지해야만 한다. 듣건대 조선이 후금을 돕고 한인들을 많이 죽였다는 소문이 있다. 그 대표 인물이 정충신이다. 백보 양보해서 조선이 부득이하게 후금에게 머리를 숙인 것은 이해하지만, 조선이 명에 대한 충성심을 버리지 않았는지의 여부는 곡식과 전마를 제공하는가에 달려 있다. 즉시 전마 3천필과 쌀 2만석을 가도로 보내고, 더이상 한인들을 핍박하지 말라”

이 보고를 받고 조정은 당장 방방 떴다. 정충신이 일을 그르쳤다고 떠들썩했다.

“정충신 그자는 부모국을 배신하고, 오랑캐의 똘마니가 되기로 작정했구먼? 이게 장수인가?”

조정은 기존의 고정관념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유흥치는 정충신이 후금과의 교섭을 약점으로 몰아 군량과 전마를 뜯어내려는 수작인데, 이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정충신은 호란의 뒷치다꺼리를 하기 위해 때로는 힘으로, 때로는 협상력으로 강온 양면 작전을 쓰고 있었다.

“정충신은 역도이니 당장 파면하시오.”

“맞소, 데려다 참수해야 할 것이오. 지엄하신 성상을 괴롭히는 자는 3족을 멸해야 할 것이오!”

“그건 안될 말이오.”

부제학 최명길이 나섰다. 최명길은 정충신과 함께 백사 이항복의 문하였고, 도원수 장만의 사위였다. 그는 정충신이 함경도 북변을 지키고 있을 때, 장인 장만 장군의 막영지를 방문했다가 정충신을 찾아 한동안 북방의 매서운 추위를 함께 견딘 사이였다. 이때 두사람은 나라의 장래에 대해 많은 토론을 벌였다. 그중 큰 바탕은 나라의 힘을 기르고, 그 힘을 바탕으로 유연한 외교력을 발휘해 외해와 대록을 넓히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최명길은 정치적 위기에 몰려있었다. 인조반정을 성공으로 이끈 핵심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주화파의 선두주자라는 것이 비판의 표적이 되었다. 인조 5년 정묘호란이 터지자 북변의 요충지가 힘없이 함락되고, 왕이 강화도로 도망간 상황에서 후금과의 화친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했다. 그러나 수구세력들은 오랑캐와의 협상을 금수(禽獸)와 악수한다고 반대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명길은 이귀, 정충신과 함께 강화가 불가피하다며 후금과의 화친을 성사시켰다. 이렇게해서 조선은 후금의 아우가 되었는데, 대신 피해를 줄이고 전쟁을 끝낸 상황이었다. 시간을 번 만큼 남은 시간에 국력을 키우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구세력(척화파)들의 집중적인 공격이 시작되었다.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주화파(협상파, 혹은 개화파)를 몰아붙여 매장하려 했다.

“오랑캐에게 나라를 통째로 헌납하자는 수작은 매국노다!”

“명을 배격하고 후금을 떠받든다는 것, 그게 군자의 길인가?”

윤집, 오달제 등 척화파들은 최명길을 연일 오랑캐와 내통하는 간신이라고 비난했다. 그중 변경에 나가있는 정충신이 정보를 잘못 준 탓이라고 그를 잡아들여야 한다고 압박했다.

“정충신을 잡아들이라. 그자가 국정을 우롱하고 있다!”

“뭐가 중한디?”

최명길이 탄식했지만 조정에서는 정충신에게 긴급 호출 명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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