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44)

6부 3장 유흥치 난(544)

유흥치 군이 자신들의 배로 달려갈 때, 이미 선내에 들어와있던 아군들이 꼼짝없이 당할 위기에 처했다.

“우리 배에 적병이 있다 해. 죽여라 해!”

일시에 유흥치 군사들이 배가 조선군에게 빼앗겼다는 것을 알고 총을 쏘며 달려들었다. 갑판에 얼쩡거리던 아군 병사 둘이 쓰러졌다. 정충신은 후속 군사력을 배치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되었다. 그의 공격부대가 배에 도달하기까지는 한마장쯤의 거리지만, 그 사이 강의 지류가 가로놓여 있었다. 배에 도달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사이 조선군이 전멸될 위기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런데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건너편 해변의 산모퉁이에서 아군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말을 달려오고 있었다. 해안 마을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그대로 적선을 향해 달려온 것이었다. 이들은 아군과 적병이 육탄전을 벌이고 있는 배로 뛰어들어 적의 목을 베었다.

“빠짐없이 우회해 내를 건너 돌진하라!”

정충신이 명하고 선봉에 섰다. 수심이 얕은 곳으로 우회하여 적선의 후면을 기습해 뱃전에 이르자 이를 본 아군들이 함성을 지르며 더 기세좋게 싸웠다. 정충신 부대도 육탄전에 가세했다. 세갈래의 군사가 협공하니 전투는 싱겁게 끝났다. 적병 서른명을 죽인 뒤 적장을 사로잡았다. 아군 역시 열댓 명의 인적 손실을 가져왔다. 정충신이 용맹성을 보인 응원부대를 보고 물었다.

“어느 부대인가.”

“전라도 첨방군입니다. 소관은 신두원 중군장이옵고, 해안선과 육지를 방어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장하다.”

“승리의 기념으로 적장을 소관이 처단하겠습니다.”

잠시 생각하던 정충신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것 없다. 장수도 명예가 있는 법, 스스로 죽거나 살기를 원하면 팔을 하나 잘라서 보내도록 하라.”

그러자 신두원 중군장이 적장에게 물었다.

“자결하겠느냐. 살아 돌아가겠느냐.”

두말없이 적장이 살아 돌아가겠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신두원이 순식간에 적의 오른팔을 칼로 내려쳤다. 그의 팔이 떨어져나가 물고기처럼 바닥에서 한동안 파닥이더니 잠잠해졌다. 적장이 기절했으나 얼마후 의식을 회복하고 섧게 울었다.

“지혈을 시킨 다음 팔을 싸매주고 석방하라. 군중에 돌아가면 이 자는 우리의 전과를 알리고, 복수를 하자고 간청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원하는 바다. 우리는 세를 확보했고, 후금군대에도 밀지를 보내면 유흥치는 독안에 든 쥐다.”

정충신은 여유만만했다. 조선군은 적선을 수습해 깃발을 바꿔달고, 전선의 진용을 새로 갖추었다. 해안 마을에서 사람들이 술과 밥을 해가지고 왔다.

“나리님, 우리가 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 군대는 한번도 오지 않았지요. 하지만 보복이 걱정됩니다요.”

해안 마을의 노장 어른이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우리가 그동안 보살피지 못한 것이 미안한 일이오. 앞으로는 걱정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적도들이 겁을 먹고 당분간 쳐내려오지 못할 터이니까요. 용맹한 우리 군대가 앞으로 옹진반도를 철통같이 지켜드릴 것입니다.”

정충신은 마을 사람들을 안심시켜 돌려보내고, 부관에게 솔상을 보아오도록 한 뒤 첨방군 대장을 불렀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데, 왜 아직껏 고향에 돌아가지 않았소?”

보아하니 정충신과 비슷한 연배였다.

“시방 쉰 넷이고만이라우. 전선을 쫓아댕김서 맬겁시 나이만 묵어부렀소. 고향은 흥양(고흥) 두원인디, 싸움터로 나돌다 봉개 가솔들이 다 흩어져부렀소. 마누라와 아들은 바다에 빠져 죽고, 딸은 굶어죽었다 안하요. 고향에 가봐야 반겨줄 이가 없는디, 무슨 낯으로 가겠소?”

“임진란도 참전했소?”

“물론이제라우. 임진왜란, 정유재란 두 난의 한복판에 있었지라우. 신군안 의병장이 집안이오. 전사하셨는디, 그를 따라댕기다 여기까지 와부렀소. 나는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은 사람이요.”

정충신은 잘 되었다 싶어서 그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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