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50)

6부 3장 유흥치 난(550)

초도와 석도까지 유흥치 잔당이 쳐들어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철산군의 가도와 탄도, 대화도, 신미도 큰 섬에 남아있어도 먹고 지내는 데 어려움이 없었을 텐데 이백오십리 밖 초도와 석도까지 내려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만큼 그들은 탐욕적이었던 것이다.

“한번 붙어불세.”

새벽이 되자 전라도 수군이 장연과 은율 사이 작은 포구로 말없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숨겨둔 병선을 한일자로 세워 배치하더니 동이 터오르자 모두 승선해 일제히 큰 바다로 노저어 나갔다. 선단은 20척이었다. 노꾼과 격군(格軍)의 팔뚝은 한결같이 구릿빛으로 빛났고, 팔뚝의 근육들이 억센 나무 장작 같았다. 거문도 출신이라는 홍가가 소리쳤다.

“주먹이 꼴리는디 와지끈 뽀사불세! 오지게 한번 붙어보장개!”

그러면서 뱃노래를 선창했다. 노래를 먹이자 사공(노꾼)과 곁에서 돕는 격군들이 받았다.

어야디야 어야디야

어기여차 어서 가보세 어야디야

앞산은 무장 가까와지고 어야디야

뒷산은 무장 멀어만 가네 어야디야

여보소 노좆부러지게 힘차게 저어불소

힘차게 저어부러 여편네 자지러지네

어기여차뒤여 어기여차뒤여 환장해부러

노래가 우렁차게 바다로 울려퍼지자 다른 병선에도 그대로 옮겨져 떼창이 이루어졌다. 그 여세로 반나절쯤 노를 저었을까, 초도의 산이 아슴프레 보였다. 섬주위에는 옅은 안개가 깔려있었다. 병선이 소리없이 진군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섬은 동양화처럼 아름다웠다. 이 땅이 뙤놈에게 점령당해 주민들이 신음을 하고 있다는 것이 현실 같지가 않았다.

섬을 향해 노를 젓다 말고 노군장(노꾼의 지휘관) 박가가 지휘하는 신두원에게 놀라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워매, 허벌나요. 적선이 오십척도 넘어보인당개!”

만 한쪽 어항에 유흥치 군사의 배 20여척이 닻을 내리고 오색 깃발을 펄럭이며 조을 듯이 정박해 있었다. 이것을 발견한 것이다.

“조용.”

신두원이 주의를 주었다. 첨방군들이 미리 흥분해 설치다 싸움에서 망해버린 일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인자부텀 조심해야 항개, 입들 다물더라고. 모두들 나한티 주목하고, 쓸데없는 행동은 자제하랑개. 그리고 정신을 집중하란 말이시!”

그의 말을 따라 모두들 숨죽이며 만으로 들어갔다. 신두원은 배에 타고 있는 포수와 궁수, 창병을 하나하나 점검하고, 기라병의 기를 뽑아들어 따르는 곁의 병선들에게 수기(手旗)로 상륙 준비를 알렸다.

“후미의 병선은 양쪽에서 공격해 들어가서 적선을 불태우라.”

적선 가까이 다가갈 때까지 적병은 보이지 않았다. 모두 섬으로 들어가 온갖 토색질과 주색잡기에 빠졌을 것이다. 이렇게 그들은 무방비 상태가 되어있는 것이다.

“조선의 군사를 좆으로 알아버린 것이여.” 신두원이 코웃음을 쳤다.

“그렁개 마음놓고 섬으로 들어가 개지랄 했을 것잉마.”

병선의 군사들이 소리없이 상륙했다. 언덕빼기쯤에 먼저 와 기다리고 있던 주사원수(舟師元帥) 정충신 이들을 맞았다. 그는 야음을 틈타 초도에 미리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군사들이 모두 상륙했느냐?”

“네. 상륙했습니다. 대신 적선 양쪽에서 공격하도록 두척씩 네척은 항구에 두었습니다.”

신두원이 답했다.

“잘했다. 상륙병은 1,2진으로 나누어 안골과 해안마을로 군사를 이동하라. 이동할 시 바다에 남아있는 군사들은 적선에 불을 놓아라.”

신두원이 바다 쪽으로 나가 수기로 적선 공격을 알렸다. 이윽고 적선 양쪽에서 불이 붙고 그것은 삽시간에 배 전체로 옮겨붙었다. 육지의 군사들이 와-, 함성을 지르며 안골과 해안마을로 돌격했다. 이때 부두에서 수기를 흔들던 신두원이 퍽 앞으로 고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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