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55)

6부 3장 유흥치 난(555)

1630년 윤 6월 초, 주사원수(舟師元帥) 정충신이 광량만으로부터 물러나 덕도에 들어갔다. 덕도는 황해도 송화군 풍해 앞바다에 있는 조그만 섬인데, 초도와 연결되어 있어서 피항 군사요충지로 안성맞춤인 섬이었다. 넓은 간석지는 수군들이 훈련하기 좋은 곳이었다.

섬에는 호남의 배들이 들어와 있었다. 전선이 200척이요, 군사는 12,000을 헤아렸다. 정충신이 이들을 점열(點閱:사열과 점호)하는데 군병들이 사기가 올라 있었으나 먼 바닷길 파도를 노저어 오느라 상당수는 지친 모습이었다.

그중 수십 명이 이질에 걸려 신음하고 있었다. 이질은 전염성이 강한 병이었다. 자고 나면 곁의 병사가 병이 옮겨 쓰러졌다. 고열과 구토, 경련성 복통, 심한 경우는 하루 종일 물똥을 싸고, 대변에 피가 섞여나오는 증상으로 사람을 기진맥진하게 하는 병이었다.

정충신이 부장을 대동하고 전선을 순시하는데 배 밑창에 쓰러져있는 수병들을 발견했다.

“웬 환자들이냐.”

“습한 날씨에다가 긴 여로에 지친 나머지 식사도 마땅치 못해서 병사들이 계속 물똥을 싸고 있습니다.”

“섬에 들어와서 무얼 먹었느냐.”

“널려있는 것이 바지락, 백합조개, 석화(굴)잉개 고걸 배불리 먹었습니다. 주변 해역에는 조기 민어 새우 꽃기(게)도 천지더랑개요.”

“안된다.”

정충신이 단호히 명을 내리고, 간석지에서 갖는 군사훈련을 중지시켰다. 이질에는 날것은 절대로 안되는 것이다. 정충신은 덕도 일원은 물론 간조때 연결되는 석도로 군사를 풀었다.

“해안선에 이질풀이 널려있을 것이다. 연한 홍색의 꽃이 원줄기 끝에 네다섯개씩 달리는데 이것들을 줄기까지 베어오너라. 마을에 들어가서는 고추장과 마늘을 징발해오라.”

정충신은 왜군들이 이질에 걸리면 꼼짝없이 나가떨어지는 광경을 보았다. 조선 사람들이 매운 고추와 마늘을 즐겨먹는 탓에 이질에 잘 걸리지 않는데 반해 싱겁게 먹는 그들은 쉽게 이질에 걸려 죽어나갔다. 식단의 차이가 이질에 내성이 있고 없고를 판별하는 기준이 되었다.

군사들이 나가더니 한참만에 이질풀을 각자 한소쿠리씩 베어왔다. 다른 군병들은 마늘과 고추장을 가져 왔다.

정충신은 취사병을 시켜 이질풀을 가마솥에 볶도록 하고, 마늘도 굽도록 했다. 이질풀은 말려야 하는데 시간이 없으니 이렇게 볶아서 환자들에게 먹였다. 정충신은 천문학, 한의학에 조예가 깊었다. 전적(典籍)을 통한 독학이었지만, 군사를 통솔하면서 경험적으로 익힌 지식들이었다. 시들시들하던 병사들이 하나 둘 일어나더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광량만 해안으로 들어온 지계최 부장(副將)이 찾아왔다.

“장군 나리, 연락을 받고 찾아왔습니다. 이 얼마만입니까.”

그러고 보니 2년의 세월이 흘렀다.

“전공을 세웠다는 말을 들었으나 워낙 내 일이 급박한지라 안부를 살필 겨를이 없었군.”

“장군 나리께서 선정을 베푸신다는 소문이 황해도 일원에 파다하더랑개요. 무당집 딸을 구해주신 공에다가 병사들 병을 고쳐주고, 먹을 것도 함꾸네 차별없이 먹고, 그래서 장군 나리 진중으로 들어오겠다는 병사들이 많다는 말을 들었고만요. 조상님들이 훌륭하싱개 그리 되는가비요.”

“하긴 얼마전에 9대조 정렬공의 꿈을 꾸었네.”

그는 정렬공 정지 장군이 장검을 주며 나아갈 바를 가르쳐준 꿈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선몽은 어진 이에게 오는 것이지라우. 도척 같은 자에게는 어림도 없지요. 그런디 도척은 천수를 누렸단 말씀입니다.”

“천수?”

“그러지라우. 풀만 먹고 양심을 지키며 살았던 백이숙제는 천수를 누리지 못했지만 천하에 둘도 없는 살인도적 도척은 천수를 다 누렸당개요.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도척은 중국 춘추시대 부하 9천 명을 거느리고 태산 기슭에서 사람의 간을 회로 썰어먹었다는 잔인무도한 도적이었다. 지계최는 이런 비유로 불만을 표출했다. 야전군으로서 전선을 누볐지만, 공적은 궁궐에 묻혀서 값진 요리, 값진 비단 옷, 물찬 제비같은 기생들과 놀아나며 자자손손 권세를 누리는 사대부들과 대비되어 탄식하는 것이다.

“한가한 소리를 할 때가 아니오. 가도를 정탐한 내용이나 말해보시게.”

“접반사와 척후장이 적정을 살피고 왔는 바, 가도의 북쪽 산봉우리에 화약고가 저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화약고가 폭발하면 섬이 통째로 날아가버린다네요. 나가 폭파시켜버려얄랑개비요.”

“섬 전체가 날아가면 주민은 어떡하고? 적병 죽이자고 주민들까지 다 죽여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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