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학교는 살아 있다

김 홍 식(광주 국·공립중등교장회장·일동중 교장)

하얀 목련이 서둘러 우리곁에 왔다. 이 좋은 봄날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작은 위안이라도 주려는 듯이 말이다. 그래서 반가운 약속처럼 더욱 눈부시다. 그렇다. 일상을 빼앗긴 우리곁에도 분명 봄빛은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목련꽃 그늘 아래서 ‘4월의 노래’를 듣는 감성마저도 병상에서 절박하게 코로나19 병마와 싸우고 있는 환자와 의료진들의 숨가쁜 호흡 앞에서는 감히 입 밖에 내는 것조차 예의가 아니다.

지금은 모두가 아프다. 학교도 예외가 아니다. 학교에 당연히 있어야 할 주인공들이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교 밖에서는 학생이 없으면 학교에 아무 할 일이 없는 줄 아는 사람들도 있다. 얼마 전 모 교육감이 “사실 학교에는 ‘일 안 해도 월급을 받는 그룹’과 ‘일 안 하면 월급 받지 못하는 그룹’이 있다”고 해서 큰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한 지역의 보통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수장이라고 하니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본인의 해명처럼 ‘소외되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 글’이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이런 문제의식이 있었다면 학교 안 사회적 약자분들의 근무 여건이나 처우 개선을 위해 평소에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노력했어야 옳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객관적인 표현이 주는 의미 자체는 매우 불쾌하고 모욕적이다. 말과 글은 화자와 필자의 품에서 떠나는 순간에 세상 모든 청자와 독자의 것이 되고 만다. 한 번 떠난 말과 글은 결코 주워 담을 수도 없다. 취소한다고 해서 그 자체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말과 글은 어법에 맞지 않게 표현된 내용을 보완하고 수정할 수는 있어도 세상 사람들이 공유하는 문법으로 열이면 열 모두 동일하게 해석되는 의미를 다른 뜻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이때는 어떤 해명을 하면 할수록 더욱 구차해질 뿐이다.

말과 글은 곧 마음속의 생각이다. 평소에 그런 생각이 없었다면 그런 말이 나올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흔히 어떤 말을 했다가 물의가 빚어지면 본의가 아니었다거나 진의가 왜곡되었다고 하는 사람들의 코미디 같은 회견을 줄곧 많이 봐 오지 않았는가. 어디 그런 해명이나 변명으로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되기나 하던가.

‘오해를 촉발하는 표현’이라는 말도 정직하지 않다. 더구나 ‘오해’라는 말 자체가 화자의 표현은 아무 문제 없는데 청자나 독자가 잘못 이해했다는 것 아닌가. 이는 자신의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려는 위험한 말이다. 이게 어디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큼 어려운 표현인가? 아니면 문제가 될 수 있는 표현만 쓰지 않고 속마음만 들키지 않으면 괜찮다는 말인가?

재택근무를 하도록 권장해도 할 일을 찾아 학교에 나오는 교직원들이 많다. 개학이 자꾸만 연기되는 상황에서 학생들과 소통하며 온라인 학습과 생활교육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EBS 온라인 강의 수강 여부를 확인하고 학교 차원에서 내준 과제를 점검하면서 따뜻한 격려와 당부를 하느라 교사들의 봄날 하루가 짧기만 하다.

교과서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담임교사들이 학년별로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찾는다. 도서관에 쌓여 있는 교과서를 분류하고, 학생, 학부모님이 가능한 시간을 전화로 일일이 확인한다. 한꺼번에 몰리지 않도록 학년별, 학급별 시차를 두고 정리해 보니 출근길에 오시는 학부모님부터 시작해서 점심시간을 활용하시는 분, 일과 중에 잠깐 시간을 내서 학생과 함께 오시는 분, 퇴근길에 오시는 분 등 각자 사정에 따라 시간대도 다양하다. 마치 노점상처럼 교문 앞에서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간단한 인적사항만 확인하고 눈인사와 함께 교과서 묶음을 건네는 선생님들의 손길에 따스함이 가득 배어있다. 밤 8시가 되어서야 겨우 끝나고 돌아서는 선생님들이 미안하고 고맙기 그지 그지없다. 누가 강요한 일도 아닌데 오직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 하나로 해낸 일이다. 정녕 ‘일 안 해도 되는 사람’들이라면 어찌 이런 일을 애써 하겠는가?

개학해서 부족한 마스크와 소독제 등을 어떻게 확보할까, 어떻게 하면 원격학습을 좀더 내실 있게 할 수 있을까 등을 고민하고 연구하면서 이런저런 준비로 학교는 더 힘들고 바쁘다. 하루속히 교정이 봄꽃보다 더 예쁜 우리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넘쳐났으면 좋겠다. 또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분들이 언행에 유의하면서 모두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진중한 리더십을 발휘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