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 전남과학대 교수의 남도일보 월요아침
당연한 것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을 때
김은성(전남과학대 교수)

SNS상에서 친한 친구들과 대화를 하던 도중, 학교에 예쁘게 핀 벚꽃나무를 찍어 보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서로 만날 수는 없지만 그나마도 이런 소통의 창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사진과 함께 ‘예쁘지 않아? 그새 벚꽃이 활짝 폈어.’라고 하는 말에 한 친구가 ‘당연한거 아니야? 봄이잖아~’라고 답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긴, 매년 봄이면 피는 벚꽃인데 내가 새삼스럽게 감성적이었네.’ 만개한 벚꽃을 오롯이 반길 수 없는 상황이 빚어낸 순간적 감정이었지 싶다.

봄꽃이 앞다투어 피고,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봄 내음 풍기고, 겨우내 여미고 다녔던 겉옷의 단추도 하나둘씩 풀어지는데 우리 마음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크게 바라는 것 없이 그저 마스크 벗고 서로 웃는 모습을 나누고, 벚꽃 흐드러진 공원을 마음껏 거니는 것조차 ‘바라는 일’이 되어 버린 요즘이다. 작년 봄에는 어땠을까? 문득 출근길 신호대기 중에 바라본 길가에 핀 개나리가 유독 샛노랗게 예뻐 보였던 것은 작년에도 똑같이 피었을 개나리가 ‘봄이니까 당연히’ 피는 꽃이려니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니 나도 모르게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주변에 너무 많다는 걸 깨닫는다. 햇살 좋은 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는 것, 좋은 사람과 삼삼오오 모여 즐거운 식사를 하는 것, 오랜만에 만난 사람과 반가운 악수와 포옹을 나누는 것, 그리고 필자에게는 ‘당연’이라는 말과 함께 ‘습관‘ 같았던 강의실에서의 수업.

그 외에도 너무도 많은 것들이 ‘당연’이라는 틀 안에 갇혀 존재의 ‘그러함’을 드러내지 못했다. 하지만 세상에 당연한 건 없었다. 사전적 의미 : 일의 앞뒤 사정을 놓고 보았을 때 마땅히 그러함-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겨우내 찬바람을 잘 이기고 따뜻한 봄기운을 받아야 개나리도 활짝 피고 시간 맞춰 강의실에 앉아 수업 들을 준비를 하는 학생이 있어야 수업도 마땅히 진행되는 것이란 뜻이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백일장, 과학의 날 등을 통해 필자가 써 내려갔던 내용이 어렴풋이 생각났다. ‘우리가 마시는 깨끗한 공기와 물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당연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켜야 할 우리의 소중한 재산이다’ 대충 이런 식의 내용이었던 것 같다. 물론 그때의 어린 필자는 환경 보호에 초점을 맞춰 나름의 주장을 펼친 것이었지만 그마저도 당연하게 여기면 안되는 것이란 사실은 같은 의미이지 않겠는가.

예상치 못한 바이러스의 창궐로 전 세계적으로 침체가 불가피한 상황이 도래하니 문득 사소한 것 하나에도 감사함이 생기고 감동에 잦아든다. 불안하고 예민한 상황의 끝을 기약할 수 없어 괜한 투정 삼아 ‘네 탓’으로 여기며 내 옆의 배우자를, 내 가족을, 내 집 앞의 꽃나무를 당연시 여기진 않았는지 돌이켜본다. 지금의 상황은 ‘네 탓’도 ‘내 탓’도 아니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니 이를 직시하고 조금 더 슬기롭게 헤쳐 나갈 방법을 모색하고 함께 실천하는 것이 지금 현재로서는 ‘당연(當然)’한 의무이다. 도리(道理)상 마땅히 해야 할 일이란 것이다.

내 입장만 생각해서 혹은 내 가족만을 생각해서 하는 가벼운 행동과 안일한 생각이 우리의 당연한 평범함을 파괴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겠다. 당연한 것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을 때, 우리는 그것에서 오는 상실감에 괴로워 할 것이다. 늘 그렇듯 존재감마저 무색할 정도로 옆에 있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이상 그렇지 않음을 깨달았을 때 느끼는 감사함을 잊지 않는다면 지금의 불안한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작은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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