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도시를 만드는 도구들
이민철((사)광주마당 이사장)

활동가로 살다 보면 왜 이런 일을 하는지 질문을 자주 받게 된다. 친한 분들이 진지하게 질문을 던져올 땐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게 된다.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이루려 하는 것일까?’ 철들고 생각이 자랄 즈음부터 ‘잘 살아야겠다.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30여년을 그 길에서 좌충우돌하고 있다.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잘 살 수 있는가?’, ‘좋은 세상은 어떤 세상이고,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

지금은 서로가 서로를 키우고 살리는 상생과 공존을 중요한 가치로 생활하고, 그런 생활인들이 생태계를 이루어 사회를 구성해가는 방법이 좋은 길이라고 생각하며 일하고 있다. 이전보다 생활에 가치와 무게를 더 두고 있는데, 직접 몸으로 행동하고 살아야 사회와 세상을 바꾸는 에너지도 더 커진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설사 세상이 바뀌지 않더라도 적어도 내 인생만큼은 뜻하는 삶을 살 수 있으니 거기서 얻는 기쁨과 보람도 크고, 세상일에 더 여유가 생겨서 좋다. 나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더 관대해진다.

좋은 사회, 좋은 도시들은 좋은 도구를 가지고 있다. 아름다운 공원과 넓은 민주주의 광장, 도서관이나 독특한 배움의 시스템, 자전거와 대중교통 중심의 도로 시스템, 예술을 창작하고 시민들이 함께 즐기는 제도, 시민이 직접 도시 정책을 결정하는 제도, 쓰레기 수거와 재활용 시스템, 공공 의료 시스템, 아름다운 보행로와 색깔있는 가게들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도구들이 도시를 구성한다. 그 중 어떤 도구들이 서로를 살리고, 지속가능한 공존을 위한 것들인가? 또 그렇지 않은 도구는 무엇이 있는가? 잘 사는 삶과 더 나은 사회는 좋은 도구를 찾고, 만들고, 사용하고, 더 많은 시민들로 퍼지는 과정에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 필요한 인프라를 깔고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시민활동과 정치의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요 몇 년 동안 시민정치를 말하고 일해 왔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민심’이고, ‘민심’을 만드는 중요한 동력이 시민정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직 세상은 출마와 선출직의 대의 정치, 관료 정부에 익숙하지만 점차 시민정치, 시민정부, 플랫폼 정치, 플랫폼 정부 영역이 커질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숙의의 과정, 의사결정과 자원 분배의 과정들이 더 정교하게 성장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더 좋은 도구들이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요즈음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대중교통을 타고 다닌 지 1년쯤 되었는데, 이제 자전거가 생활의 중요한 도구가 되고 있다. 이반 일리치는 자전거를 인류가 만든 도구 중에 공생공락을 위한 가장 대표적인 도구라고 이야기했는데, 자신의 에너지로 빠른 시간에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대단한 발명임에 분명하다. 덴마크의 코펜하겐은 가장 많은 시민들이 자전거를 이용한다. 국회의원들도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코펜하겐에서 자전거는 다른 이동 수단들에 비해 가장 빠르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물론 코펜하겐에도 대중교통과 자가용 승용차가 함께 다닌다. 중요한 것은 도시가 어떤 도구를 우선한 공공의 도구로 선택하는지이다.

광주는 자전거 타기 겁나는 도시다. 보행로에 줄을 그어 만들어놓은 자전거 도로는 불편하고 도로를 달리기엔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하다. 광주는 코펜하겐처럼 평평해서 자전거 타기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많은 시민들이 자전거를 이용한다면 도시 브랜드가 바뀌고, 더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도시가 된다. 교통 정체도 줄어들고, 공기도 깨끗해지고, 시민들의 몸과 마음도 건강해진다. 이렇게 좋은데 왜 변화가 없을까? 알만한 시민들은 정치와 행정을 탓하고, 정치와 행정은 시민의 의식을 탓한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알만한 시민들이 더 적극적으로 자전거를 타고, 시민들과 정치권에 말을 걸고, 또 정치와 행정이 적극적으로 길을 찾는다면 어떨까? 서로 요구하고 탓하기보다 협력하면 어떨까? 자전거 뿐이 아니다. 식의주, 교통, 복지, 문화, 의료, 여가 등 모든 영역에서 자전거와 같은 도구를 찾고, 만들고, 더 많은 시민들이 사용하게 된다면, 우리는 광주라는 도시 하나가 아니라 대한민국과 세계를 바꿀 수 있을지 모른다.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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