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84)

6부 4장 귀양

정충신은 나라의 흥망을 좌우하는 일이 생겼는데 나랏일을 감정대로 가볍게 처리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서둘러 최명길에게 편지를 썼다. 그는 무엇보다 모함을 받고 있다는 것이 괴로웠다.

-나는 3년동안 북방의 병권(兵權)을 잡고 국토방위에 전념하고 있습니다만, 앓고 있는 신병이 악화되어 요즘에는 정신이 혼미해지고 있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정을 정탐하는데 오랑캐들이 언제 다시 쳐들어올지 몰라 이곳 국경지대의 백성들은 나날이 불안합니다. 오랑캐들에 대한 동태와 의견을 말씀드리면, 오랑캐들은 정묘난 때 수만 리 먼 길을 침략했다가 돌아간 후 군대의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물자 때문입니다. 후금국은 이웃 서달과는 길이 막혔고. 요동은 본래 황막하여 포화(布貨)가 생산되지 않습니다. 식량은 비록 스스로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입을 옷은 어쩔 수 없이 우리나라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랑캐 두목 고예아가 요구한 것을 세폐의 기준으로 하고, 소두리가 와서 급히 서두른 것은 은연중에 긴장감을 조성하여 세폐를 증액하려는 수작입니다. 후금국을 다녀온 사람의 말에 의하면 들어가는 사람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하니 저들의 뜻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회답사가 첨수(?水:만주 서남쪽 강)에 이르렀을 때 저들은 이미 요구한 예물이 소두리가 요구한 것과 같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여기까지 쓰다 말고 잠시 한숨 돌린 그는 오해를 받는 마당이라면 병이 깊은 것을 이유로 부원수 직을 그만둘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신의 평안을 얻고자 하는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편지를 이어나갔다.

-이웃 나라와 강화하는 도리로 말하면 남쪽의 왜인이나 북쪽의 오랑캐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소두리가 요구한 바가 왜인에게 주는 것에 절반이나 되겠습니까. 그러니 대감께서 힘을 다하여 국가의 안전보장과 평화를 위해 노력해주십시오. 본인이 사태의 위급함을 알면서도 많은 군병을 요청하지 않은 것은 병사들이 공기나 안개를 먹고 사는 것이 아니기에 비축된 군량이 없으니 어찌합니까. 그간 힘을 다하여 둔전에서 수확한 곡식도 다만 일만 명 군사가 석달 먹을 양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벌써 굶주린 백성도 구제해야지요. 청천강 이북의 각 창고에 있는 식량은 천여 명 군졸의 석달 식량도 공급할 수 없습니다. 만약 군병을 출동시켜 방어에 임한다면 각 성이 다투어 식량을 청할 것인데 모르긴 하지만 식량 공급을 맡은 군관이 과연 소하(蕭何:한고조가 군사를 일으켜 한과 초가 맞섰을 때, 진중에서 군수공급을 잘 수행하여 승리한 장수)의 수단과 같을지 걱정입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군사 삼천 명만을 요청하여 안주에 주둔하도록 한 것입니다. 안주의 경우는 비록 타도의 군병을 보태지 않아도 본인의 잘 훈련된 군사로 하여금 지키면 끄떡없을 것입니다. 그물을 쳐 새를 잡고 쥐구멍을 파 쥐를 잡아먹어야 하는 긴급한 지경에 이르지 않는다면 안주를 굳게 지켜 적에게 빼앗기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말을 듣고 있지만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것입니다. 영상 대감에게 이런 충신의 뜻을 알려주었으면 합니다.

1633년 2월 7일 왕사(王使:상감의 사신) 김대건이 국서를 가지고 후금국 심양을 가는 도중에 안주에 도착했다. 국서에는 후금국에서 요구하는 세폐를 따르기 어렵다는 점을 천명하고, 필요하다면 외교관계도 끊겠다는 단호한 뜻이 담겨 있었다.

정충신이 앞의 차사의 길을 막았는데 또다시 사신을 보내 후금을 배척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정충신의 처사를 부정하는 조치였다. 실력도 없이 호랑이 코털을 뽑겠다는 무모한 짓을 조정은 벌이고 있었다. 비변사에서는 길을 떠나는 김대건에게 이렇게 일렀다.

“후금에게 분명히 전하라. 천조(天朝:명의 황실)와의 관계는 곧 부자의 사이인데 우리의 배를 빌려 명나라를 치겠다는 말을 어찌 할 수 있으며, 금과 은, 궁각은 조선국에서 생산되지 않는데, 조선국이 감당하지 못할 것을 뻔히 알면서 이와같이 무리한 요구를 하였으니 맹약을 변경할 마음이 아니고 무엇이냐. 우리는 단호히 귀국의 무뢰한 태도를 거부하고, 귀국이 원한다면 단교도 서슴지 않을 것임을 선언한다.”

정충신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김대건을 바라보았다.

“이것은 전쟁하자는 것 아닌가? 예단을 감량하자는 것도 아니고, 대번에 단교라니?”

“조정에서는 ‘예단을 감량하여 주면 허락하겠느냐’고 후금국이 묻거든 ‘요즈음 조선국은 성지를 수축하고 병기를 수선하며, 변란에 대비하고 있으니 어느 여가에 예단의 증감 문제를 다시 생각하겠느냐. 어림없는 말이다’라고 응답하라고 했소.”

말은 시웠으나 그것은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배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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